어설픈꿈

시 - 하얀 털을 따라가는

공현 2008. 3. 17. 09:34


하얀 털을 따라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꽉 조여진
샌달끈을 풀고서 어두워진
오르막을 올라가면 까매진
아스팔트, 발자국이 없는

가로등 불빛이 휘어진
모퉁이에 점점이 흩어진
하얀 털,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는

긁힌 자국 같은 털을 따라
눈물의 낙차가 변해온 시간만큼
구겨진 공기 속을 헤집으면
전봇대 밑에 소심하게 찢어진 쓰레기봉투
수거되지 못한 오래된 쓰레기봉투

푯말 하나 없이 집으로 가는 밤
집은 없고 찢어진 봉투만 있는 밤
하얀 털을 따라가는, 까만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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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가다듬고 정말 아주 느린 걸음으로 명상을 실천할 때,
집에 오는 밤길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 털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감정, 기억, 털갈이의 흔적.
그걸 본 순간 집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