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공현 2008. 4. 28. 13:42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 학교자율화를 밀어낼 인권의 물결을 꿈꾸며-



   교육과학기술부(너무 기니까 ‘교과부’)가 4월 15일에 발표한 '학교자율화 계획'에 대해 말이 많다. '학교자율화 계획'을 통해 교과부는 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분권하겠다고 한다.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했던 소리가 구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하간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교육청과 학교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을 정해둔 교과부의 지침들이 폐지된다. 그럼으로써 0교시, 우열반, 사설모의고사, 종교교육, 현장실습, ‘촌지’ 등등등에 대한 전국적으로 통용되던 규제는 사라지게 되며, 각 교육청에서 지침을 다시 정하고 그 외의 부분은 학교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아 뭐 물론 각 지역 교육청에서 원래 교과부가 갖고 있던 지침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조치는 기본적으로 학교(정확히는 학교장이나 이사장 등)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할 때, 강제 종교교육 전면 허용이나 촌지 전면 허용 같은 아스트랄한 소리를 할 교육청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교육청에서 지침을 새롭게 정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부분 “학교자율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런 발표를 하자, 언론들은 “0교시 우열반 허용하나” 같은 약간은 낚시성 표제를 달고 기사를 내보냈으며, 여러 곳에서 학교자율화 계획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명박이가 교육을 망친다는 위기의식과, “나는 찍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유행어 등도 눈에 띈다. 그러나 단순히 명박이 교과부의 '학교자율화' 정책에만 모든 문제점을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0교시를 보자. 0교시(1교시 시작 전 아침 보충수업)를 하지 못하게 교육부에서 지침을 정해뒀다고는 해도, 여러 학교들에서 0교시나 아침강제학습을 실시하던 것은 일상적 풍경이었다. 대놓고 0교시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 학교들은 1교시 시간을 앞당겨 시작하고 오후에 보충수업을 더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을 더 빡세게 공부시키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뭐, 0교시 같은 경우야 교육청에서 허용할지 말지 모르겠지만… 다른 규제 같은 경우도 별 다를 건 없다. 이번 학교자율화는 암묵적으로 시행되던 것들을 좀 더 학교들이 노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눈치 보면서 하던 곳들도 대놓고 0교시 같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조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학교자율화 조치는 학교-학생 관계에서 약자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효성은 크진 않았지만) 정해져 있던 선언적 지침들도 중앙정부에서는 없애고, 학교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을 재량권(말하자면 횡포권?)을 조금씩 더 넓혀주겠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현재 입시경쟁의 틀 속에서 학교간 경쟁을 조금 더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뭐, 그걸로도 문제라면 충분히 문제긴 하다만.

  지금의 교육체제 속에서 이미 학생의 인권은 침해받고 있는지 오래였고, 따라서 현재 발표된 학교자율화에 대한 수동적 비판으로는 현실 문제를 수정하기 어렵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주장과 행동이 필요하고,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학교자율화’라는 간판을 단 물결이 밀려들어오는데, 그 물결을 막기 위해 둑을 더 쌓는 걸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있던 둑 안에서 물은 썩어가고 있었고 그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결, 더 강한 물결로 ‘학교자율화’ 물결을 밀어내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학교의 민주적 운영과 동시에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회의 권한 강화나 수업시간과 공부량 줄이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가, 학교 안에서의 언론활동 보장 등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다양한 지원들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내부에서 벌어지는 강제학습, 소지품검사 및 강탈, 두발복장규제와 체벌 등의 수많은 인권침해를 없애야 한다. 교과부나 교육청들은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학생인권을 지지하지만 그런 건 학교 자율로 알아서 하셈” 같은 메롱한 입장을 취해왔다.(이미 학교자율화가 실천되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상대적 약자이고 입시경쟁 속에서 짓밟히기 십상인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교과부는 국가인권위와 협력하여 만든다던 학생인권 가이드라인을 인권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발표하고 이를 강력한 감독을 통해 학교단위에 강제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학교 현장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인권문제들을 정당화하고, 더욱 강화시키는 입시경쟁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명 박이나 한나라당은 뭐 더 경쟁시키고 더 줄 세우는 게 청소년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고 교육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건 그럴 듯한 사기일 뿐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도 경쟁적 교육이 발달권이나 교육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국에 공식적으로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성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평등하게 대할 때 보장되는 것이지 성적에 따라 줄 세우고 차별할 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대학서열체제나 취업시장과 연계되어 존재하고 있는 빡센 입시경쟁은 온갖 청소년인권 침해들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단순히 0교시나 보충수업 등을 강제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 넘어, 입시경쟁교육 자체가 사라져야만 청소년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But! 또 한편으로, 이러한 외침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통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몇 년만 버티면 된다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한 태도는 도피에 불과하다. 또한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행동하여 인권을 지켜내려고 해야,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이번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들 중에 다수가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을까? 이 사회는, 학교는 “그건 허황된 꿈이고 이상론일 뿐이다.”라면서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라는 소리인데, 우리는 감히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를 넘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2008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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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돌 이름으로 몇몇 언론(1318virus와 참세상)에 기고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토론을 거쳐 나온 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