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광우병 대안이 한우 먹자?

공현 2008. 5. 3. 03:19


광우병 대안이 한국 거 먹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 대한 불만



- 우선, "미친 소"라는 말에서 저는 한 번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사실 광우병이라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축산업이 만들어낸 질병입니다.
그런데 "미친소를 막자"라고 한다면 마치 소들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즉, "잘못된 소"인 "미친 소"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특별히 생명존중사상을 펼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비록 고기를 먹지 않고 있더라도 좀 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이유에 가깝고)
솔직히 말하면, 열악하고 비위생적이고 약물투성이인 환경에서 '생산'되어서 살해당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미친 소"라고 마치 그게 자기 잘못인 양 이름이 붙은 소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입니다.




- 두 번째로, 광우병의 위협이 미국산 쇠고기에만 있을 거라는 왜곡된 인식입니다.
특히 그런 인식은 "한우 먹자"를 비롯해서, 일종의 국가주의/민족주의적인 이야기들과 연결되기 쉽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라구요?
한국에서 만드는 쇠고기도 많은 경우에 육골분 동물성 사료를 먹입니다.(방목하고 여물만 먹이는 소도 있지만)
소로 만든 사료는 안 먹인다지만,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지요.
(참고로 닭과 돼지한테는 소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소한테는 그 닭과 돼지로 만든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교차감염 위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보통 좀 더 '산업적'인 방식으로 축산업이 이루어지고 약물이라거나 뭐 그런 것도 더 많이 먹인다고들 하지만, 과연 한국과 미국의 축산업에, 광우병 발병 위험이라는 걸로 볼 때, 얼마만큼 큰 차이가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광우병이 아직까지 발병하지 않았다, 라고들하지만 광우병의 잠복기가 제법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글쎄요? ^^;

광우병이라는 병은, 인간의 자본주의적 축산업과 자연 착취 자체가 낳은 질병이지,
미국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축산업 구조는, 한국의 소나 닭 등도 그에 못지 않지요.

만약에 "죽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 논리로 이야기하려면, 한국의 많은 쇠고기들도 반대해주시렵니까?

현재의 축산업, 자본주의적인 자연 착취 자체에 문제제기해주시렵니까?





-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 최소한 2만명 정도가 모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드는 생각은,
글쎄요.
사람들은 대개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심하고" "웃으며" 먹어왔던 고기와 음식들이 갑자기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음식으로 변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심하고" "웃으며" 먹어왔던 고기와 음식들도 충분히 위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아 물론 그건, 아무리 환경/생태 단체 등등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와도 그런 걸 이슈화하거나 하지 않는 언론이라거나 과학계라거나 기타 등등 사회 기관들의 문제도 있지만요.)

사람들은
당연시되어 왔던 것들에 문제제기하고, 바꾸자고 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하지만,
지금까지 자리잡아온 여러 가지 것들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근본부터 바꾸는 것은 "불가능", "비현실", "이상, "공상"이란 말로 가로막지만,
당연시되어 오지 않은 어떤 '변화'가 '위험'하다고 하면 그걸 막기 위해서는 충분히 나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런 '대중적인' 분위기와 행동들은,
어쩌면 이명박-한나라당 정부 자체를 무너뜨리는 걸로 나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런 게 더 나아가서 뭐 생태주의적인 변화라거나,
다른 사회복지의 문제라거나,
양극화나 노동착취의 문제라거나,
비인간적 교육의 문제라거나,
기타 등등 그런 이야기까지 나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2002~2004년의 미군장갑차 살인 사건에 대한 촛불집회,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집회, 탄핵 반대 촛불집회 등에서 우리는 그런 것이 결코 쉽지도 않고 오히려 많이 어렵다는 걸 봐왔습니다.


실제로 그런 류의 움직임들이, 다른 영역의 문제들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이 별로 클 것 같지도 않구요.



웬만한 홍보, 웬만한 조직화 없이는,
방어적인 그리고 기존의 체제옹호적인 여러 논리들에 편승하는 움직임들에서는,
좀 더 나아가는 의제의 발전이라거나 요구, 주장, 변화의 확장은 그렇게 많이 일어나기는 어렵습니다.





- 특히 이번 촛불집회에도 애국가를 부르고 했다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현재 다수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적, 때로는 반인권적인 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

"대중적인" 집회나 "대중적인" 주장이나 "대중적인" 방식이라는 건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기 어렵다는 생각,

저 같은 다소 래디컬한 인권운동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럼 어떤 틈새를 파고들어서 그 동의의 영역을 넓힐 것인가, 하는 생각 등등.




- 여하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집회가 최소한 한국산 소고기나 축산업 구조 자체에 대한 생태주의적 이야기까지 포함하지 않는 한은, 별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마치 전반적인 상품화와 노동착취의 문제를 죄다 미제국주의 탓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