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5.17 청소년 행동에 대한 후기+소감 (사실 나는 볼테르이고 싶진 않다.)

공현 2008. 5. 20. 16:04

*

5.17 청소년 행동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이것이 일종의 정치적 외도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마치 내가 볼테르 추종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 볼테르 (프랑스 계몽사상가)


나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최근의 주류적인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싸우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가?




*

오, 그래서 나는 "미친소"라는 표현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타협을 지어야 했다.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라고 무대 현수막을 걸어야 했다. 전단지와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소수 의견은 "소가 아니라 축산업이 미쳤다"라거나 "소와 인간 모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같은 피켓 문구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일날 나눠줄 전단지의 표현 몇 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타협 속에 이 집회를 준비했다.




*

희망 때문에 길고 지지부진한 토론을 해야 했을 때, 그래서 나는 그다지 우리가 주도해야 하는 판에 대해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크게 타협하고 들어간 준비 판이었다. 여기에서 희망과 우리가 과연 얼마만큼 다르단 말인가?


ㅂ은 희망의 판이 아니라 우리의 판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목소리를 17일 당일 현장에서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 없었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지만, 과연 우리가 진행한 한 것과 희망이 진행한 것 사이에 크게 다른 점이 있었나?

많은 사람들이 발언 속에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내재하고 있었고,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해 다른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초록정치연대라거나 공연한 분들을 빼면, 자유발언에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히 많이 나왔지만, 그럼 희망 집회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안 나왔나?


내가 무대 진행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녀서 듣지 못한 것인가?




*

17일 당일 행동은 그럭저럭 끝났고, 그 결과가 실패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렸다.


불복종 행동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리고 당일날 집회에 왔던 사람들 상당수가,

그 집회는 "광우병에 관한 청소년들의 집회"라고 알고 왔을 것이며,

주된 관심사도 그것이었다.


그것이 내게 일종의 정치적 외도였다면,

그 사람들을 다시 조직화하고 인권운동에 참여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나 동기를 내가 제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광우병 문제 등에 대해 더 래디컬한 내용(검역주권이니 굴욕적 협상 왈가왈부가 아닌)의 토론회라도 조그맣게 열어봐야 할까?

혹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볼테르처럼 발언해야 하나?

그도 아니라면 원래 계획대로 소수의견으로서 전단지 등을 만들어서 선전/홍보 활동에 나서야 하나?




*

준비 과정에서의 서울 중심성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http://go517.kr 싸이트를 개설하는 과정이라거나

언론 홍보 과정 등에서 아무래도 서울 중심성이 두드러졌다.

웹자보나 홍보물에는 다른 지역 일정 등도 계속 들어갔지만...

급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 홍보 일이나 온라인 부분을 맡은 지부에서 충분한 소통 없이 일을 처리해버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급하게 준비하는 것은 싫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