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버스에서의 '성폭력'

공현 2008. 6. 28. 15:55
며칠 전에 신도림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역곡으로 가는데-
원래 밤에는 88번 버스에 사람이 좀 많다 - 1호선이 좀 일찍 끊어지는 편이라 그런지 어떤지;

그런데 내 뒤에 탄 어떤 사람이 자꾸 내 오른팔을 더듬었다.
처음엔 하도 사람이 많아서 잡을 데가 없어서 그러나, 싶어서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그냥 계속 팔을 뿌리치기만 하고 특별한 행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숨 막히게 사람이 많았던 탓에 고개를 돌려서 이게 누구 손인지 확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뿌리쳐도 뿌리쳐도 자꾸 팔을 더듬는 거에 기분이 좀 나빠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손이 등에 맨 가방 사이로 들어와서 옆구리를 더듬었다.
몸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옆구리를 더듬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누르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고 온갖 생각들을 머리에서 굴리면서 계속 몸을 빼서 다른 데로 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써 곁눈질로 보니까 술에 취한 거 같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아저씨였다.

소리를 지르거나 성폭행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런 적 없다고 하거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하거나 하면 더 시끄러워질 거 같았고... 혹시 술에 취했는데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진 않을까 무서웠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그 아저씨의 손은 급기야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열도 받긴 받았지만 앞서 한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어중간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죄송하지만 손 좀 치워주실래요? 자꾸 닿아서..."
이렇게 말하니까 다행히 그 아저씨가 죄송하다고, 모르고 그랬다고 하면서 손을 치웠는데

그 다음에 내가 내릴 때까지도 계속 입속으로 뭘 웅얼웅얼거려서 무서웠다. 나한테 욕하는 건 아닌가...

어지간히 술에 취했는지 막 그 비좁은 버스 안에서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맨발을 의자에 올려놓고 -; 다른 사람들도 다 막 피하던데 그 아저씨

아휴 ㅠㅠ 끔찍한 느낌.


한 번 당하고 나니까,
일생에 걸쳐서 이런 성폭력 경험 한 번 없는  '대한민국' 여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달까---- (심지어 나는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 여성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