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일다]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공현 2008. 1. 8. 13:42
이런 기사들을 써주기 때문에,
일다를 좋아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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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박희정 기자
2008-01-04 00:20:15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규제하거나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십대들이 거리에 나와 ‘십대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십대 인권을 보장하라’고 집회를 열었을 때, 이를 취재하던 중에 집회를 지켜보던 한 십대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다 거쳐야 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는 두발규제와 체벌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인권침해’가 아닌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규정하고 있었다.

순간,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이 십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니, 십대들의 의견을 일축해버리는 어른들의 주장이 아닌가.


사실 십대인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십대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또 다른 십대는 ‘십대의 집회’에 대해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데 거리에 나와서 한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면서도, “학생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십대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머리 길이를 규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의견에 대해 “학생은 교복에 깔끔한 모습이 제일 예쁘다”거나 “나도 두발규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만, 학생이 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자유가 학생신분을 망각할 수준이면 안 된다” 등의 주장을 펴는 십대들도 많다.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십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무시할 없는 수의 십대들이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그저 십대들의 ‘다양한 가치관’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십대들로 하여금 한 개인으로서, 주체로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방통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넌 커서 뭐가 되라’고 말하는 부모와 교사, 어른들은 ‘내가 너에게 어떤 어른(부모, 교사)이 돼주면 좋겠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일방통행 식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십대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에 대해 배우기 이전에 순응할 것을 요구 받는다. 어른은 무조건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고,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다. “말대꾸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말대꾸 했다고 맞아도, 어른이 때리는 것이니까 맞아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싫은지, 좋은지,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혼자 힘으로 이리 끙, 저리 끙 궁리할 겨를이 없다. 고민을 했다가는 혼이 난다. 가르쳐주는 것을 외우고, 시키는 일을 하고, 그래야 별 탈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착하다” 소리를 들으면 안심이다.

이 ‘착한 아이들’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골절상을 입힐 정도로 심각한 폭력을 휘두른 교사에 대해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건 잘못이지만 선생님한테 함부로 하는 애들도 많아요” 라며 옹호론을 편다. 두들겨 맞아도, 머리카락이 잘려도, 다 ‘성장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인내하는 ‘착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이 바로 나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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