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혹시 어른들만을 위한 교육감 선거?

공현 2008. 7. 24. 12:21
민들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다음호에 실릴 거예용 ~_~






혹시 어른들만을 위한 교육감 선거?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인권활동가 emptyyoon@naver.com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끝나버린 다른 여러 지역의 교육감 선거와 달리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는 특별하게 주목을 받고 있다. 수도권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시설, 경제, 정치 등이 밀집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지만 좀 씁쓸하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가 주목을 받아서가 아니라, 다른 지방의 교육감 선거들이 주목을 받지 못해서 말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분명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가 가지게 된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에 대한 중간 심판이라는 시기적 의미는 우선 제쳐두더라도 교육감을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비민주적인 이 교육 체계 속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 어째서 비민주적이냐는 이야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교육감이라도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은 이런 교육의 비민주성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물론 몇 년에 한 번 직접 투표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래 우리 사회 ‘꼬라지’를 보면서 충분히 학습해왔지만, 적어도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 민주화의 한 걸음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거 과정에서 지금까지 잘 검증되지 않아왔던 여러 교육정책들에 대한 토론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교육의 제 1주체이자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에게 더욱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이 교육은, 그냥 비민주적인 게 아니라 ‘지독하게’ 비민주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은 학급에서부터 큰 교육정책까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청소년들의 참여는 봉쇄되어 있다. 공직선거법을 참고하자면, 청소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고 선거운동 할 권리도 없다.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도 없고, 투표권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다른 기구나 절차조차 없다.

사실 교육감 선거에는 학부모나 교사가 아닌 시민들에게도 투표권이 있는데, 그런 시민들보다는 교육감의 영향을 훨씬 직접적으로 받을 (공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조차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청소년들이 지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배제되거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교육감 후보들이 달아놓고 붙여놓은 현수막과 벽보를 보라. 아이들은 살려야 하며, 쉬게 해줘야 한다....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호소는 정작 그 아이들에 하는 말이 아니라,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에게 하는 말이다. 심지어 시민후보라고 말하며 가장 나아 보이는 청소년 인권 보장 공약을 들고 나온 후보조차 현수막에는 “어머님, 힘드시죠? 주경복이 덜어드리겠습니다.”라고 썼으니, 말 다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기호 0번 ‘청소년’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청소년단체들이 만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들의 선거운동을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정책 평가 등을 해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활동이 있지만, 청소년들이 후보 출마를 선언한 것은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서는 10세의 청소년이 후보 출마를 선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요구를 알린 적이 있긴 하지만.

청소년 후보는 출마의 변에서 “청소년은 유령이다. 사람들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교육감 선거를 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제쳐두고 성인들한테만 ‘뽑아줍쇼’ 할 리가 없다. 우리가 안 보이나? 아니면, 이거 혹시 어른들만을 위한 교육감 선거?”라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 이것은 실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투쟁이고, 어른들만의 기만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깽판이다.

“캐발랄 젊은 후보”를 표방한 청소년 후보는 선관위에서 붙인 공식 선거 벽보들 옆에 자신의 포스터를 붙이고 거리유세를 하며, 교육감 선거에서 청소년들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식블로그(http://csn08.tistory.com)에 올려놓은 정책 공약과 주장들은 다른 교육감 후보들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청소년 후보가 내세운 공약은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차별금지, 가정환경조사서 폐지 등을 비롯한 청소년인권 보장, 입시경쟁교육 중단, 학교운영부터 교육정책까지 청소년 참여 보장, 탈학교 청소년 지원 강화 등이다. 민감한 문제인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는, 소통과 변화를 기본으로 한 ‘교사소환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에게 선거연령을 몇 살로 낮추자는 것이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기호 0번으로 출마했다는 것은, 이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뛰어넘어서 단숨에 피선거권을 실천으로 요구하는 것 아닌가? 지금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선거 연령을 몇 살로 하건 그 선거 연령보다 적은 나이의 사람들은 배제될 것이고, 미성숙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호 0번으로 출마한 청소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금 같은 대의제와 비민주적인 교육 시스템을 넘어선 더 많은 민주주의이며 더 민주적인 교육이다.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많은 청소년들이 현재의 교육 속에서 학습하는 것은 거대한 무력감과 체념이다. 어찌해볼 수 없는 경쟁, 폭력, 학교, 그리고 교육 시스템 그 자체. 학칙 하나 개정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말을 그저 청소를 할 때나 듣게 된다. 그나마 이런 무력감에 덜 중독되어 있는 것은 몇몇 대안적 교육 속에 있는 소수의 청소년들뿐일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교육감 선거에서도,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가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비민주적인 교육이 더 민주적인 교육으로 변화하는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단, 그 민주주의는 청소년을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미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