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며, 따위를 대체 왜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써놔야지, 싶어서

공현 2008. 9. 17. 18:43




  이 글은 분량이나 내용의 깊이에 비해 손이 좀 많이 간 글이다.
  뭐 이래저래 돈 벌랴 수업 들으랴 일하랴 바쁘기도 하고 해서 이 글을 짬짬이 쓰는 동안 다른 답덧글이나 글도 전혀 안 썼고... (사실 블로그에를 잘 안 들어왔...)


  이 글에 손이 많이 간 건, 내가 이 글을 양쪽 (민주노동당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민주노동당에 내가 가입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글이 다소 장황한 것도 그 때문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 편의상, 경칭은 생략한다.


  우선은 애초에 내가 민주노동당에 가입(입당)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인권운동을 아주 잠시 같이 했던 친구 한 명이 대학에 와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석이 나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가입 대상으로 추천했고, 그래서 2006년 3월에 민주노동당 ㅅ대 학생위원회 위원장이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추천한 그 녀석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에 회의를 느껴서 활동을 때려 친 상태다. -_-)

  당시 나는 정당에 얽매이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내가 정당 활동과도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민주노동당 가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학생위원장은 거의 1시간에 이르는 끈질긴 권유 끝에 나에게서 ― 어쩐지 CMS 받아가는 느낌으로 ― 입당신청서를 받아내고 말았다.

  이처럼 입당 과정에 어느 정도는 강권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게 단순한 변명으로 들리지는 않길 바란다. 나도 당시에 민주노동당의 정치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에서 가입을 해야 하나, 하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부담을 속으로는 가지고 있었고, 그런 부담감을 끝내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가입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여하간 처음 입당했을 당시 내 심정은, 인권운동사랑방에 월 10000원씩 후원을 하듯이 민주노동당에 월 5000원씩 후원을 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내 본업인 청소년인권운동과 민주노동당 문제가 엮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말인가, 2007년인가에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던 사람이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할 것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여러 단체의 연석회의 같은 성격이 좀 있었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청소년문화예술센터,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사람들이 모두 들어와서 각 단체들의 활동이나 입장을 공유하고 조율한다고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의 조직이라고 할 만한 게 위원장 빼고는 없는 상태였다.(위원장도 희망 출신이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는 듯했고 여러 단체들을 조율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 청소년인권운동 쪽 입장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던 활동가가 나에게 들어와서 같이 할 것을 제안했고,
  2006년~2007년에 학생인권법 입법 운동 등 때문에 민주노동당 측과 연계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나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을 어영부영 시작했다.



  한 가지 말해둬야 하는 것은, 활동을 시작했던 시점에서도 나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언제 그만두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진보정치’라거나 ‘진보운동’을 한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포괄적인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을 생각해야 하는 정당 활동과는 맞지 않았다.  ㄹㄹㄹ

  (그리고 당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위원장도 이런 내 사고방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나에게 청소년인권운동 입장에서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7년 하반기에는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좀 구체화되었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사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오히려 새로 기틀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청소년 당원들에게 연락을 하고 새로 조직을 하고 기타 등등등...
  2007년에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이런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우선은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학생인권법 운동도 2007년 하반기에는 정리되어 가고 있었고,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도 준비위원회의 (준)자를 떼고 정식 출범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2008년 초에 위원장 등등도 바뀔 예정이라서, 나는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에 그만 둬야지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대선이 끝나고 분당 논의가 계속되고 대량 탈당이 이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이런 상황에서 탈당하면 나도 민주노동당에 실망해서 탈당하는 걸로 오해받겠군, 하는 생각에 탈당이니 분당이니 소란이 좀 잦아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한 5월이나 6월 쯤에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 그만둔다고 밝히고 탈당하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재구성이 또 늦어져서 기다렸다.
  그 이후에는 내가 탈당하려면 당원번호를 알아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의 내 아이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이를 처리하느라 또 늦어져서, 9월에야 탈당을 하게 되었다. (민노당 홈피는 자체 에러 때문에 비밀번호 재발급이 안 된다. 따로 전화해서 처리해야 한다. 지금은 고쳤으려나?)


  여기까지는 내가 탈당하게 된 것을 시간 순서로 늘어놓은 설명이고...
  탈당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글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음...

  우선은 청소년인권운동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은, 청소년인권운동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민주노동당 자체의 조직적인 문제(정당이라는 점 +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 조직화 문제)도 있고 또 청소년 정치 운동(또는 청소년 진보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별로 관심이 없거나 굳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활동도 일부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내가 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정리했는가에 대한 해설은 될지 몰라도, 내가 왜 ‘탈당’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활동’만 그만두고 그저 조용히 때 되면 투표하고 당비나 꼬박꼬박 내는 ‘어느 당원’으로 있으면 될 일 아닌가?



  금전적인 압박은 무시할 수 없다. 매달 1만원씩 나가는 당비 + 기관지비는, 다른 단체들 CMS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압박이 탈당의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다. 부담스러운 금액, 이긴 하지만 절대 낼 수 없는 금액 또한 아니다.
  대의제에 대한 나의 정치적인 불신, 심리적인 회의감이나 무력감 등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회의 등등을 가지고도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잘 안 되는 조직 구성과 내 부족한 능력에 허덕이면서도, 그러면서도 운동은 또 하지 않는가? 이것도 큰 부분이긴 하지만 결정적이거나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성격이랄까 적성이랄까 그런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긍정적인 선전과 투표 권유 등을 ‘의무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물론 누가 이런 의무를 나에게 강제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글쎄, 선거(대선, 총선, 당내 선거 모두 포함) 때마다 지겹도록 ARS나 지역위, 학생위 등에서 전화가 오고 나한테도 지인들에게 (투표하라는) 연락을 하라는 압박이 들어오는 것 등등이면 충분히 의무스럽다.
  그리고 나도 이런 것이 ‘당원의 의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강제한다. 문제는, 내가 이것이 ‘당원의 의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도무지 적성에 맞지를 않는다.


  게다가 당원이란, 민주노동당이 그렇게 강조하는 ‘진성당원’이란, 어느 정도 민주노동당 안의 정치적인 관계 등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당 내의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런 관심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참여하는 존재여야 했다. (이건 어느 정도 자기 강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다가 당내 선거 때에 제시되는 간단한 프로필이나 주변 사람들의 몇 마디 말에 http://vote.kdlp.org에 들어가서 투표율만 높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당 안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발언을 할 만큼 민주노동당에 애정이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별로 민주노동당이 굴러가는 것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전략, 방향, 운동, 정치들에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고, 내 주장이나 사고방식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 학생위원장이나 청소년위원장이나 등등등? ― 에게 일상적인 회의나 회화 속에서 몇 마디 내 생각을 흘려본 적은 있는데,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입장이고 어떤 생각인지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하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귀찮은 일일뿐더러, 내 사고방식은 확실히 정당운동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피차 난감한 일이다.  마치 커피를 젓가락으로 마시려는 것과 같은 부조화랄까...)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면 나는 그 신분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으로 이런 당원의 역할을 하기 싫어하는 욕망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은 별로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어쩌면 완벽주의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탈당을 하는 이유는 정당 활동이 적성에 맞지 않고, 또 제대로 된 당원이 될 수 없어서이다.

  물론 당원 수 몇 명, 당비 납무 얼마, 이런 숫자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에서는 아마도 내가 ‘제대로 된 당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탈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당비를 내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민주노동당에서 원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탈당계를 관악구 지역위원회에 보냈는데 잘 접수된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내 신분은 당원으로 뜬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하나 싶다.

  민주노동당 ㅅ대 학생위원장(이제는 전 학생위원장이다.)이 얼마 전에 투표하라고 전화를 했다가 내가 탈당계를 내서 투표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언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청소년위원회에는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그만둔다는 말을 수차례 했지만 탈당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다.


  이런 일만 처리하면 이제 탈당도 끝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글은 하나의 마침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