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용산, 전철연, 비타협성과 전투성

공현 2009. 1. 27. 03:42

용산에서 6명이 돌아가신 일을 두고, 주위가 시끌시끌하다.
같이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이랑 회의 시간도 조정해야 하고, 지난 주에는 7시 이후면 다들 집회 가느라 뭘 같이 일하지도 못했고, 전날 밤 늦게까지 용산 집회에 있다가 온 사람들이 회의나 다른 토론 자리에서 졸거나, 몸살이 나서 못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집회를 한 번 참가했고....

하지만 어쨌건 난 청소년인권활동가 포지션에 스스로를 두려 노력하고 있고, 철거민 문제에 관해서 청소년인권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발언해야 할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서 그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주거권' 문제로 접근하면 할 말이야 많고, 철거민 중에 청소년 분들도 있겠지만,

'용산 참사'와 같은 구체적인 사건(특히 경찰폭력과 용역깡패업체들의 폭력, 철거 정책 등이 핵심이 되는)에 대해서는 뭐라 발언해야 할지... 할 말이야 있지만 식상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차피 말할 것 같고,,, 그러다보니 좀 뒤늦게 글을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다......



아, 그래... 일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거.

이 건에 대해서 "과잉진압"이 문제다, 라고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식의 "철거"와 "진압"이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50며칠만에 진압한 것과 27시간 만에 진압한 것 등등을 비교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집회에서도 그런 피켓도 많이 보이고)
50며칠만에 강제진압하면 되는 건지... 거참;; 그동안 협상과 대화를 했다, 라는 식으로 하지만 거기서 협상과 대화라는 게 어떤 내용이었을지 -_-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평택 대추리 투쟁에 대해 생각해보면... 글쎄... 회의적으로 보인달까; -_-

사실 영구임대아파트나 가수용단지가 그렇게나 수용 못할 요구일까 싶다. 아, 가수용단지는 몰라도 영구임대아파트는 자본주의적인 토지-주거 정책을 뒤흔들 수도 있나, 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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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책임소재라는 녀석을 따지면,
'용산 참사'에서의 인명피해는 99%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19일 밤 당시 상황으로 가봐도 그렇고,
제도와 정책, 그 이전에 보인 태도의 문제를 따져봐도 그렇다.
그리고 또 관련 법안을 개정하지 않은 국회의 책임도 있겠지.

농성자들에게 잘못을 돌리거나 책임을 물으려는 모습들을 보면 좀 압박스럽다...

애초에 누가 잘못이 있냐, 누가 책임이 있냐, 를 묻는 것은 다분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이고,
사태의 원인 중 일부가 농성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원인'과 '책임'은 다르다.)

그러나 애초에 그 원인이 어떻게 형성된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참사'로까지 이어졌나 하는 걸 짚어보면,
어떤 충돌이 있더라도 목숨을 잃지는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 압박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고,
물리적 충돌로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용산구청이나 서울시, 정부 등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역 깡패들을 동원하는 기업과 정부의 관행적 악행도 빼놓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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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또, '용산 참사' 자체 뿐 아니라 운동에 대한 생각도 든다.

전철연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고...

전철연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뭐 비리가 있네 없네 하는 이야기는 관련된 증거나 좀 더 분명한 사실확인이 없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고...

전철연이 그 투쟁의 역사 속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온 단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거기에는 철거민들의 절박한 상황도 한몫 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철연의 투쟁 방식에 대한 고민들도 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많이 죽어야 하는지... 좀이라도 더 줄일 방법은 없었는지...





전철연이 철거민을 계급적으로 보고 사회변혁의 주체, 기층 민중, 노동자계급으로 본다는 글을 여기저기서 읽었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철거민 중 상당수가 자영업자이고 어찌 보면 프티부르주아로 분류되겠지만, 한국의 경제 구조로 볼 때 소자영업자는 프롤레타리아트에 가깝겠지.)

하지만,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도, 모든 노동자들은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고 사회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리고 될 수 있다는, 소망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철거민은 사회변혁의 주체이고 투쟁적인 민중이다, 라고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철거민들이 배수진을 치고 투쟁하는 건 철거민의 계급적 성격상 당연하다, 라고 말하는 건 오류이고, 철거민들의 구체적인 삶들을 너무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철연이 만약에, 정말 만약에, 비타협적 노선을 이유로 그 지역 철거민들의 직접 결정이 아닌 전철연 조직의 결정을 우선시하고 있다면, 협상 과정도 전철연 조직이 직접 맡고 있다면, 그런 점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주의가 100%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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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사회 운동 안에서, 또는 운동의 역사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더 비타협적인 내용을 주장하고 더 폭력적으로 투쟁할수록  더 급진적이고 올바른 운동/단체인 것처럼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일지...

물론 유의미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원칙적인 근거나 논리가 없이 적당한 상식 선에서만 이야기되는 주장은 의미도 없고 힘도 없다.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원칙적 입장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원칙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게 반드시 비타협적인 운동을 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원칙 속에서도 우리는 맥락과 상황에 맞춰서 어느 정도 유연하게 주장을 조정할 수 있다.
우리의 현재 역량과 상황,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해서 가시적 성과로 따내는 지점은 그때그때 조정될 수밖에 없다.


비타협성과 전투성은, 멋있어 보이거나, 때로는 필요할지 몰라도,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