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오승희 10호 커져버린스토리]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공현 2009. 4. 9. 15:06
오답 승리의 희망 10호에 편집진 부분에 쓴 글.






[커져버린스토리]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개학’을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방학’이다. 방학 없인 개학이 있을 수 없고 개학 없인 방학이 있을 수 없으니, 오호 돌고 도는 음양의 원리(??)로구나!
  그런데 한국이 아닌 외국에도 방학이 있을까? 아마 있겠지? 그런데 그 방학은 한국의 방학이랑 같은 방식일까? 이런 궁금증에 영국 아이들의 일반적이고 평온한 학교 생활을 묘사한 유명서적인 『해리 포터』를 들춰보니까 영국의 학교들은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주 긴 여름방학과, 2주 정도 되는 크리스마스 방학. 아하 영국은 여름방학이 길고 겨울방학이 짧구나-_- 이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방학의 형태는 다르지만 방학 제도는 학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있는 것 같다는 게 요지다.
  방학은 세계적으로 학교가 있다면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제도일 거다, 아마. 왜 그럴까? 어쩌면 ‘방학’이라는 게 그냥 여름이랑 겨울에 너무 덥고 추워서 수업하기 힘드니까 학교 나오지 말아라, 하는 게 아니고 교육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안 그러면 일 년 내내 적당히 쾌적한 날씨이거나 날씨가 비슷한 지역에선 방학 없이 365일 수업만 하게?

  이렇게 질러놓고 보니 “방학의 교육적 효과” 같은 논문이라도 대령해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찾지 못했다. 교사들이 방학 중에 연수도 받고 연구도 하고 수업 준비도 하고 평가 업무도 하면서 많은 일을 하기에 방학 기간이 필요하다는 글은 찾을 수 있었지만, 교사들 이야기는 「우리교육」이나 「교육희망」이나 「교육신문」 같은 뭐 그런데서 다룰 테니까 굳이 오승희에서 그 이야길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교사들도 방학이 필요하구나, 방학 때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는 건 아니구나, 정도만 머릿속에 넣어두자.


쉴 권리, 놀 권리!

  쉬고 노는 것은 중요한 인간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는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나와 있고,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적함한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청소년인권단체가 발표한 2008청소년인권선언에도 “방학, 휴가, 공휴일이나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하며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고 써있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 시간이자 여가 시간으로서 방학은 보장되어야 한다. 입시경쟁이라는 괴물이 탐욕스레 입을 벌리고 방학기간 중에도 보충수업과 사교육에 찌들어 살라고 외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봉사시간 뭐 그런 규정들은 방학 중에도 강제적인 자원봉사 노동(‘강제자율학습’과 비슷하게 들리는?)으로 청소년들을 내몬다.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이건 뭐….
  방학이 방학다워야 하긴 하는데, 또 한편으로, 그것도 과연 바람직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애들이 공부 빡세게 오랫동안 한다면서 미국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데, 오바 하지 마시라. 미국 청소년들 다 잡을 셈인가. 한국이 OECD 국가 중에 평균노동시간과 공부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한다. 만약 방학이 방학다워진다고 해도, 학기 중에는 이렇게 빡세게 입시지옥 속을 구르다가 방학 중에는 쉰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지 않나.
  그러니까, 좀 일상적으로 쉴 권리 놀 권리가 보장되면 좋겠다는 거다. 반강제적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하고 강제로든 자발적으로든(?) 입시공부와 취업준비에 매진할 것을 강요당하는 학교. 그 속에선 동아리든 취미 활동이든 정치 활동이든 입시경쟁과 좀 거리가 있는 걸 하려면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가 홀로 그런 체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낙오자’나 ‘날라리’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방학을 방학답게 만드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쉬고 싶을 땐 봐가면서 쉬엄쉬엄 할 수 있는 교육. 아침7시부터 밤10시까지 잡혀있지 않아도 되는 학교. 강제로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일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방학에도 쉬고 방학 아닐 때도 여가가 있는 그런 삶….


방학의 ‘교육적’ 의미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방학이 그냥 쉬는 기간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교육과 학교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학교를 쉬는 것 = 교육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방학’ 때 학교를 안 나간다고 해서 교육을 않는 것은 아니다.
  이반 일리히 같은 삐딱한 학자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게 대부분 교사나 학교로부터 배운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며, 잘 보면 학교 정규교육과정 외에 다양한 경험들이나 다른 경로로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교육이 학교(또는 학원 등)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단 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다. 심지어 학교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바보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학교 없는 사회』(이반 일리히), 『바보만들기』(존 테일러 게토) 등을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방학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고 학교를 다니는 학기는 훼이크라고. 학기 수업이 완전 훼이크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방학 기간 또한 굉장히 유의미한 교육 과정일 수 있다는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는 사회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킨다. 학교에서도 물론 또래들/교사들과 부대끼면서 사회 생활을 익혀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협소한 학교 교육과정은 실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들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학교에서 주는 지식들은 ‘죽은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과 체험들을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건 캠프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다른 활동일 수도 있다. 그냥 친구들이랑 뛰어노는 것일 수도 있다.학교에서 받는 것만 교육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보자.

  그러나 이런 방학의 의미가 실현되는 일은 멀게만 보인다. 우리는 방학 중에도 입시교육에 찌들어 살기 십상이고, 청소년들에게 적절하고 저렴한 놀이 문화나 대안적인 교육 컨텐츠들은 부족하기만 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외쳐본다. “방학이 방학다워야 방학이지!!!”





방학이 싫고 개학이 좋을 수도 있다!
  이번 커져버린스토리에서는 대부분 청소년들이 방학을 좋아하고 개학을 싫어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게 됐지만,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방학 때 연락해서 만날 것이지 방학 때는 잘 안 만나다가 “개학하면 친구들 보니까 좋아요.”라고 하는 성격 파탄자들은 제껴두더라도 말이다.
  우선 대한민국의 허술한 복지제도 때문에 원치 않게 기아체험을 하고 있는 결식 청소년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학교 급식 외에는 안정적으로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방학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좀 제대로 식사권, 생존권을 보장해라!
  그리고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치 않는 방학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 1989년에 중고등학생들이 한창 학교민주화, 전교조 교사 복직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학교 점거하고 했을 때는 학교들이 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일찌감치 강제로 방학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이런 방학에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