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공동체성, 조직성, 포용력

공현 2009. 4. 28. 13:47



- '조직'과 '공동체'를 구별한다는 개념 규정을 받아들이고 시작합니다. 단순화시키면 '조직'은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 모임이고,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을 우선적 목적으로 두는 모임입니다. 여기에서 공동체는 좀 더 특별하게 대안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염두에 두도록 합시다.

- 대개의 모임, 관계는 물론 '조직'성과 '공동체'성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100% '공동체'는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100% '조직'은 아마 있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섞여 있는 배합 비율의 문제... 그러니까 공동체성과 조직성 중 어디에 얼만큼 비중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충분히 다른 견해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 '약자들의 연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와 거리가 제법 멀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사회적으로 이미 '약자'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에 따라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기존의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스스로를 '약자'로든 '강자'로든 생각지 않는 사람들만이 온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약자들의 연대'는 물론 공동체성이 강한 모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자들의 연대'라고 해서 특별히 더 그렇진 않습니다. '약자들의 연대'가 공동체가 가능해지기 위한 전단계의 모임이나 조건 중 하나일 수는 있겠습니다.

- 사실 저는 현재 사회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공동체'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조금 더 사회가 '공동체'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가도록, '공동체'가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도록 하려는 것이 사회운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정작 그 사회운동하는 모임들은 공동체여야 하는가, 라고 하면- 저는 그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모임은 일단 그 성격상 본질은 '조직'이기도 하고, 공동체가 형성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공동체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에 대한 몰이해요 일방적 희생이나 강제의 요구입니다.

-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동체에 대해, 흔히 '포용'은 여유가 있는 것 폭이 넓은 것 품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포용은 그런 '여백'이라기보다는 포용력 - 즉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사용되는 힘에 가깝습니다. 누군가가 감정노동을 하건 시간과 돈과 힘을 쏟건. 따라서 포용력 있는 공동체라는 건 충분한 여유와 역량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 인간이 수단이냐 도구냐 뭐 그런 논의에 대해서도 나중에 한 번 다룰 텐데,
우선 그 논의의 일부가 될 이야기만 따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충돌할 때, 한 사람의 어떤 이익 추구가 다른 사람의 이익에 반할 때, 그들 서로는 서로 갈등하고 충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기 위해, 또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 타인과 그렇게 충돌하는 순간에 타인의 이익을 누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요.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누군가의 행복 추구가 다른 사람의 행복 추구와 가능한 한 충돌하지 않고 상보적인 작용을 하는 사회이지, 이런 충돌을 할 때 '도덕적'으로 서로가 양보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 물론 이익이 서로 충돌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인데, 협상과 배제입니다. 그러나 협상을 시도해도 협상이 계속해서 결렬될 때, 저는 어느 일방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누가 양보해야 하는지 누가 정하겠습니까? 다만 주장하고 투쟁할 뿐이지요.

- 저는 제가 살기 위해서, 또는 저의 이익-행복-가능성을 심각하게 감소시키는 요인을 줄이기 위해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누군가와 싸우거나 누군가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협상하려고 시도했으나 결렬되어왔고 더 이상 협상하는 것이 저에게 힘든 일일 땐 말이지요.
슬픈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요.  (물론, 타인이 저를 배제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저의 시도 또한 인정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저는 아수나로가 '조직'성이 '공동체'성보다 더 강하다고 또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설령 '공동체'로 그것을 이야기하더라도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일방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포용은 말했다시피 그냥 품을 좀 넓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여력과 역량을 희생하는 일입니다.

- 공동체라거나 모두를 위한 뭐 이런 걸 이야기하면서 포용을 말하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자기 모순이거나 일부 현실의 누락입니다. 제대로 된 공동체라면 일방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 조직성과 공동체성 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견해를 밝히고 그에 따라 모임이 운영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정되어야 할 자유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반박하는 것도 인정되어야 할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설득력을 가지고 받아들여지는 주장에 따라서 모임이 운영될 때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습니다.(그것이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모임을 나가는 게 맞겠지요.)
(그리고 저는 사실 조직성과 공동체성에 대해서 제가 어느 정도 신념을 가진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서, 지금보다 공동체성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요구도 좀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에 상당 부분 동의하거나 수용할 수 있습니다. -_-;;) 그런데 공동체성보다 조직성이 더 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덕적으로든 '상식'에 기반해서든, '도덕적 비난'을 받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