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5월 2일 청소년 집회 후기, 그리고 신뢰와 책임

공현 2009. 5. 5. 03:28


5월 2일 후기...를 쓰기 전에, 5월 2일 이전의 상황에 대한 후기를 쓰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 같지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뭐,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대외적으로는 권리에 대해 말할 일이 더 많긴 합니다만, 사실 저는 대내적으로는 책임에 대해 더 말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아 그 책임이라는 게 뭐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 류의 '사이비 권리론'은 아니구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났다거나 특출나게 선민적이라거나 선도적이라거나,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뭐랄까요, 포괄적인 의미에서 동료랄까요- 네. 여하간 그런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덕목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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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2008년 촛불의 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냥 촛불1주년이란 말은 좀 부정확합니다. 대중적인 촛불집회가 등장한 건 2000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날, 청소년 집회가 있었죠.
그러나 그 청소년 집회는 원래부터 준비되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대충 내막을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청소년 집회는 5월 2일 1시에 청계광장에서 촛불1주년을 맞아서 '전국청소년대회'를 하자는 문자가 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소문을 현실로'라거나 '문자가 돌아서 청소년단체들이 움직였다.'라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서술하시던데,
저는 도저히 긍정적으로 말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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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17일에 '휴교시위' 문자가 돌았었죠. 당시 문자메시지는 몇시까지 어디로 모여라,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학교 가지 않는 걸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한창 촛불이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타오르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를 타고 많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5월 17일 등교거부 행동 - 휴교시위를 현실로 만들려고 청소년단체들이 개입해서 집회를 준비하고 기자회견을 잡았더랬지요.

그 당시에도 준비를 하면서  참 많이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문자 메시지 처음 돌린 사람을 데려와서 집회 준비시켜야 한다고... -_-;;



그런데, 이번에 5월 2일 촛불 1주년 '전국청소년대회'라는 문자는, 일단 활동하는 사람들 쪽에 먼저 돌았던 것 같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이는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또, 5.17 휴교시위 문자 만큼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이게 참, 정작 알아보니까 5월 2일 1시에 청계광장에서 뭘 준비하는 청소년 단체가 아무곳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모로 당황했습니다.

잠시 후에 전청련 게시판에 '청혁대'라는 이름으로 기획안이 올라왔는데,
기획안이 내용 면에서도 별 고민이 없는 것 같았지만,
정작 그런 기획안에서 주최로 지목된 전청련에서는 전청련이 주최하는 걸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지, 또 그 다음에 '청혁대' 분들이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지도 않지...

이래저래 혼란 속에서 보낸 일주일이었습니다-_-;

어쨌건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회의 결과 최소한 문자를 받고서 오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헛걸음 하지 않도록 집회를 준비하기로 결정을 해서, '급'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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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참, 말도 안 되는 '급' 준비 속에,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머리를 싸매면서, 5월 2일 집회가 마련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모이는 건지, 어떤 요구를 갖고 모이는 건지조차 불분명했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다른 여러 단체들에 손을 내밀어도 보고, '청혁대' 측과 연결도 계속 시도해봤지만(당일날 행사가 겹치면 또 난감하니까요)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5월 2일 집회 준비에 달라 붙었던 사람들은 아수나로 사람들과 say no에서 같이 활동했었던 개인 활동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이름으로, 여러 단체들이 촛불1주년 행사를 하려고,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이름으로 청계광장에 집회신고를 내놨다고 해서 거기에 빌붙기로 했습니다 -_-
(워낙 급 준비한 거라서 집회신고 낼 겨를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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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준비가 어느 정도 되기 전에 홍보를 하지도 말아야 할 일일 뿐더러,
만약에 홍보를 이미 어느 정도 해버렸다면 거기에 책임을 지고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면, 여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면,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공지라도 해야 하는 게 최소한의 책임 아닐까요.
자기가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을, 누가 대신 책임을 떠맡아서 준비를 하겠다고 나서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거기에 협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며칠 어디에서 집회한다, 모여라, 이런 문자 메시지들이, 정말로 '괴문자'들이 떠돌아서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 문자 메시지를 보고 집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텅빈 광장만 보게 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인다면
우리는 오히려 중요한 홍보 수단 하나를 잃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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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당일에 경찰들의 참 치사하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한 압박에 이리 쫓겨 다니고 저리 쫓겨 다니고, 신고한 장소에 도착했는데도 경찰들이 둘러싸고 막아서는, 그런 상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헤매면서, 비를 쫄딱 맞아가며 앰프 케이블 구하러 다니면서, 진짜로 "내가 여기서 왜 이런 걸 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작 처음에 판을 벌린 걸로 추정되는 '청혁대'라는 분들은 준비나 운영에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는데 말이죠.
저희가 무슨 뒤치닥거리 전문 단체도 아니고 말입니다.

또 황당한 건, 그날 집회가 대충 끝나고 4시 서울역에서 집회로 합류할 즈음해서 "5월 16일에 휴교시위"라는 문자가 또 왔다는 겁니다.
'청혁대'라는 게 대체 어느 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만약에 5월 16일 휴교시위 문자도 청혁대 분들이 준비하는 거라면, 문자를 보낸 이상 책임지고 준비를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 5월 16일 문자는 청혁대 분들이 보낸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건 5월 2일 문자에도 해당되는 겁니다.)
먼저 움직이고 같이 준비할 수 있는 단체들에 상의나 협조 요청도 전혀 구하지 않고 보낸 사람 없는 문자메시지부터 보내고 보는 그런 방식으로 얼마나 협력을 구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군요.


무책임하고 신뢰를 잃는 방식으로 하는 운동은 어쨌건 길게 가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죽어 있는 촛불을, 그런 문자메시지로 강제로 살려내려고 하는 억지스러운 게 무효하거나 길게 가지 못하기도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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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5월 2일에는 청소년들 30~40명 정도가 모여서 집회를 그럭저럭 진행했습니다.
비도 오고 경찰에서는 계속 압박하고,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말이죠.
세상에 신고된 집회 장소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모여 있다고 가두려고 하고, 그래서 이동한다고 하니까 계속 쫓아오고, 집회 장소를 결국 지나쳐서 시청역까지 쫓겨갔었습니다. 그러다가 신고된 집회 장소에 다시 모여서 하려고 하니까 경찰들이 온 사방을 둘러싸고 계속 좁혀오더군요.
미신고 집회가 어쩌구 집회 불허가 어쩌구 하는 허가제 집회 제도도 안습이지만,
신고한 집회도 막는 게 경찰들이 하는 일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