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5. 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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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봤던 기사인데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사가 있다.

 문화부가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3"이 한국의 교육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해당 한겨레기사)

그때 그걸 보면서 든 생각 두 가지.


(1) "고3"이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현실인 걸 알긴 아는구나. 그렇게 나쁜 줄 알면 입시 문제 좀 바꾸지? 고3만 문화상징에서 제외하면 되는 건가?
(2) 문화상징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좋아보이는 환상들로 치장할 생각만 하는 거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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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명박 씨가 어린이날 행사에 와서 "정부는 어린이들이 너무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저 기사가 생각났었다.

현실의 암울함에 대해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일제고사니 국제중이니 학교자율화니 해서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으면서,
말로는 공부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느니 어쩌느니...
그래 행사장에서 말 몇마디 하는 거야 참 쉬운 일이지... 그래.

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다. 그럴 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경제가 살아날 거라느니,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느니, 녹색 성장이라느니, 선택과 다양성이라느니 하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정책의 현실은 오히려 사람들의 자유를 축소시키고, 돈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기회들을 축소시키는 것들.

시장에 나가서 퍼런 목도리를 선물하고 물건을 사주지만,
고환율에 대기업이나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 등등으로 물가는 치솟고 먹고 살긴 팍팍하다.

명박 씨가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불러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요즘도
요즘 중고등학교들에서는 강제야자나 0교시가 부활했다는 소문과, 상벌점제 시행으로 퇴학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소문들이 계속 들려온다... 마침 중간고사가 끝날 시점이라서, 시험 성적 때문에 우울해하는 목소리들도 계속 들려온다.


강제야자를 빠져서, 100대가 넘는 체벌을 당하고 목숨을 끊는 학생이 나오는가 하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치마를 벗기는 체벌을 당하는 학생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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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현실과 환상은 어떤가.

청소년들의 현실은 암울한데,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입니다"라고 서울역에 서있던 입간판이 얼마나 허울 좋은 거짓말로 보이던지.
청소년은 언제쯤 미래의 희망, 꿈나무가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인간, 현재의 존재-인격체로 존중받을까.
'아동'은 언제쯤 순수와 미성숙의 환상을 벗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세상에 설 것인가.


5월 말에, 어김없이 '청소년박람회'가 있다.
청소년박람회는 올해로 5회 째인데, 청소년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세계의 주역으로 청소년을 이끌고 나가는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1회부터 5회까지 프로그램들을 보니까 거의 대부분이 동아리 공연이나 CEO 강연 등으로만 채워져 있어서
이게 어디를 봐서 "청소년박람회"인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노동시장에서, 빈부격차 속에서, 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겪는 여러 문제와 현실들을 직시하고 그런 청소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몇몇 제도화된 문화적 활동들과, 좀 말랑말랑한 캠페인들을 배치한 행사.(성교육, 장애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 학교폭력 예방 교육 등은 의미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사 전체적 배치를 볼 때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얼마나 담보되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냥 적당히 무난하니까 넣은 거라는 느낌?)
그러면서 현란한 '칼라풀'을 내세우는 행사.

청소년들의 삶이 어둡기만 하다거나, 암울하기만 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청소년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실력을 연마해온 많은 청소년 동아리들에게는 이 박람회가 중요한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청소년들의 많은 현실들을 외면하고 누락시키면서 "청소년박람회"라고 내세우는 게 적절한 건가.
청소년들에 대한 환상을 소비하라고 진열해놓는 진열장일 뿐은 아닌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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