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촛불세대? 도전과 자살 사이

공현 2009. 6. 16. 10:22
촛불세대? 도전과 자살 사이
[김용민 교수 비판] 계급을 말하지 않는 촛불세대 찬양론



최 근 잘못된 교육제도로 인한 10대들의 자살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고, 그 유형도 참 다양한 편이다. 가장 최근에는 5월 28일,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거짓말을 해 부모의 꾸지람을 들은 중학생 자매가 자살하였고, 그 외 성적비관으로 고교생이 투신자살, 학교에서 체벌 110대를 맞은 후 자살, 무단 조퇴 후 투신자살 등등.

어쩌면 10대들의 각종 자살 소식은 일상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전 대통령의 '서거'에 비해선 주목해야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근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정리한 청소년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6년에 하루 평균 1.8명의 청소년이 자살하였다고 하니,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정말로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안타까운 자살과는 정반대 방향으로의 이슈도 끊이질 않는 다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시사평론가이자 한양대 겸임 교수인 김용민씨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충대신문> 6. 8)」는 제목의 칼럼이 그 대표적 사례인데, 촛불시위 초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의식을 형성한 10대가 대학생이 되거나, 혹은 투표권을 얻게 되면 사회가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에 눈뜬 10대 여학생들’…?

사실 이런 류의 주장은 반복되어 제기되어 왔는데, ‘10대 여학생들이 정치에 눈뜨게 되었다’거나 ‘때 묻지 않는 세대의 발랄함’, ‘10대의 정치적 각성’이라는 현상을 봤을 때 이들이 성인이 되면 무엇인가 사회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 서울광장의 촛불소녀들 (사진=손기영 기자)

사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가장 중요했던 이슈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반대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입시경쟁을 강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 또한 중요한 이슈였다.

이번 촛불시위에 참여한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설문조사나 연구결과를 봐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가 촛불시위에 참가하게 된 주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촛불시위의 아이콘은 다름아닌 ‘촛불소녀’였는데, 중요한 것은 수백만 명이 참가한 거대한 직접행동이 있고 나서도 여전히 그 주역인 10대들의 억압적인 일상생활은 그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의문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10대들이 “대학에 들어올 내년 또는 내후년쯤이면 아마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인데 이들 소위 촛불세대들이 대학을 바꾸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만한 이들이라면 왜 당장 자신이 다니는 중고등학교, 아르바이트 현장을 바꾸거나 개선하지 못 하고 자살을 선택하느냐이다.

촛불… 바뀐 게 없다

물론 안타깝게 자살을 선택한 10대들은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학과 사회를 변화시킬 위대한 세대가 왜 자신이 당장 속한 교육환경을 바꾸지 못할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실 프랑스 68혁명 사례만 봐도, 10대들이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대학평준화 및 국유화가 이루어진 것 아닌가?

나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현상이 ‘촛불시위’를 ‘세대론’의 프레임으로 이해하려는 잘못된 시도의 결과이며, ‘세대’라는 개념이 ‘계급’을 대체한 사회분석의 단위가 된 것의 귀결이자, 보수화된 민주화운동 세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선 ‘촛불시위’에 대한 세대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2002년으로 돌아가보면 이 문제는 명백해진다. 사실 2002년에는 ‘촛불세대’가 아니라 ‘광장세대’라는 명칭이 붙었고, 10대와 20대의 정치적 의식과 집단적 경험을 분리하지도 않았다.

월드컵 응원과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한 촛불시위로 인해 광장문화에 익숙해진 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투표권을 얻으면 공공적 관심과 토론이 증대할 것이라는 내용이 그 당시 ‘광장세대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바로 그 광장세대가 현재 ‘아무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뭘 해도 늦은’ 88만원세대 혹은 IMF세대가 되어버렸다.

소위 촛불세대론의 문제는 현 ‘촛불세대’와 전 ‘광장세대’의 차이 및 다른 결과를 예상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광장세대’의 부모들은 70년대 학번의 특권적 세대였고, ‘촛불세대’의 부모들은 386세대였다는 설명은 마치 부모세대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물려받거나, 자식이 순응하는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이 있는데, 과연 386세대의 부모님들은 어떤 정치성향이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설명으로는 현 ‘촛불세대’는 우열반 등장, 0교시 부활 등 억압적 경쟁이 정치적 신자유주의에서 파생된 것이고 이것이 미친 소와도 연계되어 있음을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반해, ‘광장세대’는 억울하게 깔려 죽은 두 여중생과 무죄판결난 미군과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분노 등으로 참여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즉 ‘광장세대’는 즉자적 의식을, ‘촛불세대’는 대자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인데, 자신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모순과의 관계를 깨닫는 계급의식적 자각이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일 뿐더러, ‘광장세대’는 그러한 계급의식적 자각을 왜 하지 못 하였고, ‘촛불세대’는 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광장세대와 촛불세대를 가르는 어거지

만약 ‘촛불세대’가 그런 계급의식적 자각을 할 수 있었다면, ‘광장세대’도 그런 계급의식적 자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수단을 사고하고 주목해야지 현 20대들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세대 간 갈등과 분열 조장은 그야말로 오래되고 낡은 계급적 단결 만큼의 유용한 함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분석으로서의 ‘세대’ 개념, 촛불세대론이 20대에게 퍼붓는 비난과 조롱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의 보수화, 386 및 민주화 운동세대의 보수화라는 맥락과 관련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과연 그들은 20대 때 ‘계급’ 아니라 ‘세대’를 사회분석의 기본단위로서 사고하였는지, 혹은 ‘계급’을 ‘세대’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에게 공통된 ‘계급에 대해서 말하기 않기’는 역설적으로 기득권화된 그들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촛불세대 찬양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위대한 촛불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면, 혹은 투표권을 획득하면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것인데 왜 그들이 대학에 입학해야 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건지, 왜 투표권이 없는 당장, 지금의 청소년으로 사회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없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촛불세대 찬양론은 마치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므로, 지금 당장은 인권을 유예당하고 공부에 매진해야 되는 존재로 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68혁명을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에 거리로 나온 10대들은 대학생도 아니었고, 투표권도 없었으나 대학생, 노동자와 연대하며 교육제도와 사회를 바꾸어 냈다.

어른 돼서 하라고요?

지금 촛불세대 찬양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68세대의 용기와 담대함, 상상력은 잊어버리고 보수화되어버린 채로 촛불세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시기를, 그들이 투표권을 얻는 시기를 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16살 때부터 꾸준히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오며, 20대 중반인 지금까지 내가 만든 청소년인권단체의 회원인 내 입장에선 촛불세대는 ‘기대’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연대’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촛불세대에 판돈을 걸겠다고 하지만, 과연 어떤 연대를 하였는지, 정말로 판돈을 걸어본 적은 있는지 궁금하다.

‘기대’하며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장 죽음을 선택하는 10대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다른 민중열사처럼 ‘열사’라는 칭호도 얻지 못 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처럼 추모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나는 ‘촛불세대’를 마냥 찬양하지 못 하겠다.

대신 노동자, 철거민,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도 전직 대통령의 서거만큼 추모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면서, 위대한 촛불세대의 서거를 추모하겠다.


2009년 06월 15일 (월) 09:59:18 무직인꿈틀이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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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이가 현재 아수나로 회원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ㅎㅎ 활동을 안 한 지 어언 1년이 넘었기에.
뭐 여하간 글 내용에 대해 아수나로 내에서 큰 반대가 없다면 굳이 태클 걸 이유는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