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옛날 일기를 들춰보고...

공현 2009. 6. 20. 22:14

간간이 이렇게 옛날 블로그에서 글을 발견해 올립니다.
2005년 3월초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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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기를 봤습니다.

매 주 수요일치 일기마다 눈에 띄는 빨간 글씨.

"글씨를 예쁘게 씁시다."

......

선생님, 너무해요. 어떻게 매번 그 말만...

 

 

맞춤법 틀린 게 눈에 띄어서 이런이런.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써주신 "정성드려 씁시다"가 눈에 띄어서 웃었습니다.

 

 

외롭다거나 슬프다는 말이 곳곳에 써있습니다. 이 때에도 그랬나. 하긴. 이 때가 더 그랬을지도 몰라.

강아지가 아프다. 나도 아프다.

강아지가 아프다. 그런데 엄마가 서울에 들를 일이 있으셔서 병원에 맡기고 가야 한다.

강아지가 죽어서 슬프다.

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강아지 한 마리를 다른 사람 주게 되었다. 밤마다 또 외로울텐데.

아빠가 아프셔서 슬프다.

엄마가 아프셔서 슬프다.

아빠가 앓아 누우셨는데 나는 한숨만 나온다.

선생님이 공부를 못했다고 화가 나셔서 때리셨다.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난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인데, 그전까지 일기에는 외롭다거나 하는 말이 없다가 부모님이 어디 가신다거나 강아지가 없어지거나 하는 일에는 "또" 외로울텐데. 하는 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으응, 그런 녀석이었어, 그러고보면. 지금도 그런 녀석인가.

 

 

그러고보니,

4월부터 9월까지. 무려 등장한 강아지가 4마리.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빗자루조각으로 칼싸움한 이야기. 그걸 보고 전교1등짜리 여자애(-_-)가 유치하다고 한 이야기 등등. 그래도 그 빗자루 조각들을 모아서 창틀 청소에 활용했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그 아이는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래도 웃기는 일이라거나 즐거운 일 같은 것들도 써있습니다.

이를테면 의자를 기울여가며 탁자 위의 뭔가를 잡으려다가 넘어져서 의자 등받이에 목을 찍혔는데 놀라서 벌떡 일어서다가 탁자에 머리를 또 찧어서 울었다는 이야기.(지금이야 웃기지만 그 당시에는 재밌지 않았다구.)

바닷가에서 즐겁게 논 이야기.

짜장밥이 맛없다는 이야기.

기차 안에서 배고파서 운 이야기.

샘을 내는 사촌동생이 귀엽다는 이야기.

운동(줄넘기)을 잘 하고 싶다는 이야기.

실내화가 없어져서 곤란하게 보낸 하루.

책 대여점에 마법진 구루구루 1권이 없어서 충격 받은 날.

0.12489141888970399918 * 100100100 이라는, 옆자리 애가 낸 괴악스런 문제를 겨우 풀어서 기뻐한 이야기.

생전 처음으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졌다고 써놓은 것. 

재미없고 덥게 보낸 어린이날 이야기...

 

 

훑어보던 도중에 엄마가 우연히 강아지 죽은 때 근처에, 일기를 보고 써놓으신 글(글씨를 너무 잘 썼잖아...)을 보고 담담하게 넘기기도 하고 말이죠. "미안하다"라...

 

 

 

초등학교 4학년 때 것은 예전에 봤는데, 5학년 때 것은 구석에서 이번에 우연히 발견했네요.

나름대로,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