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공현 2009. 6. 30. 11:28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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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근대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때때로 전근대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예컨대 최근에는 많이 감소한 추세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나 감옥 안에서는 구타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도 완전히 근절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공교육 공간인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두발규제, 용의복장 단속등도, 이처럼 근대적인 곳에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형을 연상해주세요.)

  어째서 이처럼 상반된 듯한 요소가 공존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근대적인 통제와 규율의 입장에서 볼 때 전근대적인 통제 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쓸 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근대적인 통제의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그 수단으로 전근대적인 방식을 차용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가 국제적으로 선언된 ‘세계인권선언’이나 다른 여러 기준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라고 해도, 여하간 체벌로 직접 고통을 주는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의 교육적 효과가 어쨌든, 근대적인 공간인 학교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체벌이 계속 존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같은 요인도 분명히 한 몫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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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기본법 제2조를 보면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홍익인간을 실현토록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인 교육의 도입은, 이런 민주시민의 문제나 인품 도야가 직접적인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공교육을 도입한 것(영국의 경우 1870년대)은 노동자들이 너무 무식하여 일을 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 외부로부터 노동력 제공이 감소하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챙겨주기 시작했지요. “자 이 기계를 돌려서 일해라.”라고 말하면서 설명서를 건네줘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돌리거나 명령을 서류로 받거나 하는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돈이나 상품의 수량계산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덧셈뺄셈 계산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엄수나 규율에 순종하는 습관이 몸에 밴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했고 의무교육은 더욱 강력하게 도입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선택할 권리여야 할 “교육권”이, “의무교육”이라는 것 때문에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모호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 이런 근대적 교육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옮겨오면서 별첨 : 아, 다른 한 이면에는 의무교육이 아동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방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도 있음.)

 


  아까 저는 근대가 전근대적 요소를 차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정말 직접적이고 잔인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것은 전근대적 요소입니다. 두발규제, 용의복장검사, 체벌 등등... 그리고 그것들은 즉각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자극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신체의 자유와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인권감수성이란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매로 인식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폭력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느끼는 소수를 묵살하고 무시해도 좋을까요?) 그러나 인권감수성의 차원에서 지극히 근대적인 억압을 인식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억압의 경우보다 좀 더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억압은 주로 경쟁체제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편입하게 만듦으로써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학생들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느끼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근대적 억압이 비록 가시적으로 인권을 침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그 전근대적 억압을 차용하는 근대적 교육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대 교육과 결합한 전근대적 억압을 인권감수성 차원에서 인식하고, 그 인식을 결국 의식적인 차원에서 근대 교육의 문제점, 예를 들어 입시경쟁체제의 문제점과 같은 것을 비판하는 데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만을 인권의 원칙과 체계적인 비판으로까지 승화시킬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무주푸른꿈고에서 청소년인권강의한다고 2006년인가에 끄적인 글인데... (인권운동사랑방 개굴 쫓아갔음)

실제로 가보니 이딴 딱딱한 내용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내 경험 위주로 갔다지요-_- 결국 이 글은 그냥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