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국민 광장’의 조건은

공현 2009. 8. 26. 11:51




  ‘광장’이라는 말을 딱 들었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 공통’이라고 할 법한 ‘준거 광장’이 존재할까? 즉 “광장이라면 ~~같은 것” 또는 더 간략하게 줄이면 “광장? 아, 이런 거?”라고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인지도 높은 광장이 있냐는 것이다.

  ‘국민 여동생’, ‘국민 애창곡’ 등등처럼 ‘국민’자 붙이기 좋아하는 습성을 패러디하자면, ‘국민 광장’이라고 불릴 만한 곳. 모두가 큰 부담 없이 이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광장. 그런 곳이 한국에는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국민”자 붙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인민 광장’, ‘인민 여동생’이라고 했다가는 친북인사로 찍힐 테니, 설렁설렁 넘어가자.)


  ‘국민 광장’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한 후보는 시청 광장인 것 같다.
  스케일은 좀 작지만, 몇 년 사이에 또 다른 ‘국민 광장’ 후보로 청계 광장이 치고 올라왔다.
  서울역 광장도 하나의 후보겠지만, 서울역은 KTX 개통 이후 역사가 신축되면서 공간 배치가 많이 바뀌었고, 사실 서울역 앞의 공간은 그냥 사람들이 오가는 넓은 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최근 새로 만들어진 광화문 광장도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시청 광장이 ‘국민 광장’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설? 시청 광장에 있는 거라곤 잔디밭이랑 분수 정도라서 상당히 인상이 흐릿하다. 시설로만 치면 이건 잔디구장이나 축구장에 가까운 느낌이다. 요즘에 시청에서 가장 많이 본 건 전경이랑 차벽인 것 같기는 한데, 살벌한 차벽과 전경부대들은 광장의 이미지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플러스가 되진 않는다.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 분수는 한여름 물놀이용은 될지언정 ‘광장’의 속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뭐, 서론이 길었는데, 시청 광장과 청계 광장 등이 ‘국민 광장’의 유력한 후보일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시설 때문은 아니다. 광장에 기본적인 시설이야 갖춰져야 하지만, 사람들이 광장을 찾는 이유는 시설 때문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곳이 ‘국민 광장’일 수 있는 것은 그곳을 사람들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야기하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호헌철폐 독재타도, 2002년 월드컵, 2002년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에 대한 촛불집회, 2003년 대통령 탄핵 반대, 2008년 이명박 반대 촛불집회… 사람들이 시청 광장에서 있어온 그 모든 역사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계 광장이 ‘뜬’ 것도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였다.

  꼭 저런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집회들을 열거하지 않아도 좋다.
  여하간 광장은 자유롭게 모여서 얘기도 할 수 있고, 캠페인도 할 수 있고, 소풍을 할 수도 있고, 노점을 할 수도 있고, 공연을 할 수도 있고, 전시를 할 수도 있는 곳이어야 한다. 적당한 구경거리나 예술작품이 있는 게 나쁠 건 없지만 그게 광장의 본래 기능일 수는 없다.



(광화문 '공원')



  광화문 광장에 얼마 전에 가봤다. 분수와 꽃밭, 벤치 등으로 가득 찬 ‘광화문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웠다.
  그뿐인가. 광화문 광장이 개방되자마자 그 광장에서 집시법 위반이라며 연행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정도면 시설 뿐 아니라 경찰의 통제도 잔디를 깔아놓고 ‘무단 사용’ 때마다 돈을 받아가고 툭 하면 차벽으로 둘러싸기 일쑤인 시청 광장보다도 더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쯤 모두가 부담 없이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국민 광장’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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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쪽에서 써달라고 해서 좀 대충 휘갈겨 쓴 글;   
퀄리티가 그리 높진 않다 ㅡㅡ;;



아래 그림은 마찬가지로 문화연대에서 부탁해서 같이 활동하는 청소년활동가인 '공기'가 그린 그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