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실태조사'라는 사업 방식에 대한 단상

공현 2009. 9. 9. 00:50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가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면 마지막으로 꼭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 "지금 현재 여전히 강제적으로 급식당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어디입니까? 그 학교를 밝혀주십시오. 학교급식 실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를 폐지한 이후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나는 이러한 당혹스러운 질문을 접할 때마다 현재 사회운동이 얼마나 NGO의 역할을 넘어서는 위태로운 경계에 있는가를 실감한다. 현재 시민 단체들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통계자료를 만들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며) 정부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대행하고 있다. 그 일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해도 국가가 해야 할 업무를 나서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NGO의 역할이란 가령 화재가 나서 피해를 입기 쉬운 곳이 있다면 그 위기 상황을 알리고 공론화시켜 국가가 이후 소방 대책을 정확히 세울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업무인 소방 대책까지 NGO에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소방 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화재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NGO가 국가 업무까지 대신하다 보니, 그 안에는 작은 국가 공무원 조직을 능가하는 유능한 인력과 더불어 그 인원이 활동할 넓은 공간도 필요하게 된다. 넓은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려면 사무실 관리비용과 활동가들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늘어나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재정 사업이 주요 사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중략)...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은 학교 실태 파악이나 일상적인 감시 감독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일들은 국가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주은(2007).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pp.40-42에서.
1장 비난과 낙인의 피해의식. #05 경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둘러싼 고민과 실천.





저는 예전부터 설문조사, 실태조사, 의견조사, 이런 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제가 활동하는 단체들 안에서 누누히 말해온 적이 있습니다.

일단은 여기 인용한 조주은 씨의 글과 같은 이유가 가장 크지요.

사실 교육정책을 시행하면서, 그리고 학생들의 현재 인권 상황에 대해서 먼저 점검하고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은 정부입니다. 그런데 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한다는 게 기분이 나쁜 것도 있구요.(사례 수집 정도라면 신고를 받고 대응하면서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라는 게 말이죠.)

그리고 이 양적 조사 사업이라는 게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갑니다. 설문지 인쇄하고, 보내고, 수합하고, 코딩하고, 값입력하고, 분석하고...
(질적 조사도 능동적으로 긴 시간 하게 되면 돈 많이 드는 건 똑같지만요)

아수나로처럼 돈도 없고 일손도 없는 단체에게 어울리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설문조사나 의견조사를 해서 그걸 발표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건 뭐랄까요-
"우리는 대중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의 운동이잖아요?
근데 영 그런 건 성격에 안 맞아서 -_-;;;
그냥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게 청소년인권운동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런 우리의 생각들이 얼마나 잘 전달되게 적절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야 뭐 있지만요.

설문조사를 해서 뭐 지금 청소년들이 가장 바꾸고 싶어하는 문제는 이거다... 라는 식으로 발표하는 운동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솔직히.
단 한 사람이라도 인권침해에 문제제기한다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런 방식의 운동이 청소년들을 설문조사나 의견조사에 답하는 것 정도로 의사표현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도 있고.






사실 지금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 실태조사 사업은 좀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제안한 거지만;)
2006년 이후로 사실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라고는 전교조 지부 등에서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조사한 것밖에 없고...(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참교육연구소가 시행한 학생인권 실태조사도 2006년이더라구요?)

지금 시점에서 학생인권 상황이 어떤가 궁금하긴 한데
그리고 이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에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궁금한데
그걸 조사해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잖아요.
교육부나 교육청이 해줄 것 같지도 않고.... 뷁뷁
희망에서도 사실 학생의 날 맞아서 제일 바라는 게 뭐냐, 이 정도로만 조사하지 학생인권 실태 전반을 알아본단 식으로는 조사를 잘 안하니까.

또, 2006년에 교육전략21인가 하는 데서 인권위 프로젝트 받아서 조사한 조사는
대체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체벌을 경험한 학생이 6%밖에 없다고 나오고.(이게 가능한 수치인지 -_-;;;)
조사 항목 같은 것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뭐 교칙 전반에 대한 수용 정도나 징계 방식에 대한 의견이나 그런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표적인 학생인권 침해라고 꼽히는 것들에 대해 꼼꼼하고 명확하게 질문을 제대로 안했더라구요.


어쨌건, 그래서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정부가 도저히 하지를 않고, 그렇다고 다른 데서 제대로 해주는 곳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

뭐 학자-연구자적 느낌으로 접근하면 재미있게 분석하고 보고서 써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건 손이 많이 가는 실태조사 진행하면서 그냥 투덜투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