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사회학은 예언을 해선 안 된다 - 부르디외를 인용하면

공현 2009. 9. 25. 17:56

 모든 사회학자는 대중이 그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예언자에 맞서 자기 안에서 싸워야 한다……. 예언적 사회학이 누구나 체험을 통해 무질서하게 마주치게 되는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해 자연 발생적 사회학이 제시하는 해답들을 허위로 체계화하는 데 만족할 경우, 그것은 자연히 상식이 제시하는 설명의 논리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텔레비전만큼이나 친숙한 현상들 속에서 '전세계의 변동'에 대한 설명 원칙을 구하는 예언적 사회학자들에 의해 아주 단순한 설명들, 순진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하게 되는 그러한 설명들이 매우 빈번하게 내세워진다.

(P. 부르디외, J. -C. 샹보르동, J. -C. 파세롱, 『사회학자라는 직업』 中

파트리스 보네위츠 지음, 문경자 옮김,『부르디외 사회학 입문』동문선, 에서 재인용)

 

위의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풀어 쓰자면,

모든 사회학자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적인 '예언'을 해주길 바란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려 들면 안 된다.

일상 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연히 등장하게 되는 지식들을, 대중들이 원하는 그런 예언을 해주려는 목적으로 엉터리로 체계화시키게 되면 그것은 자연히 '상식'에 연결된다.

(부연하자면 부르디외는 상식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과학적 인식에 장애가 되는 위험한 것이므로 사회학자는 상식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예언적 사회학자'들은 순진하고도 소박하고 또 상식적인 사람들이 내세우는, 그런 식의 단순하고 허위적인 설명을 지껄이게 된다.

 

사회학적 예언자가 되는 것은, 반드시 사회학적이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파트리스 보네위츠,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 동문선 中)

 

 

그렇다면,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사회학은 철학이나 정치학과는 달리 사회적인 것의 기능 논리를 규정하려 한다기보다 그것을 묘사하고자 한다. (중략) 그 매커니즘을 기술함으로써 사회학자는 자신의 과학적 작업에 몰두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학자는 투사도 사회철학자도 아니다.

(중략)

 설령 사회학이 행동이 아니라 인식을 제1의 목적으로 삼는다 할지라도, 사회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행위자들로 하여금 모든 지배 형태에 대항하여 ― 이 지배 형태들은 지배에 대한 부정 자체에 근거해 있는 만큼 더욱 효과적인데 ― 투쟁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이해의 수단들을 제공한다.

(출처는 상동)

 

"모든 과학은 다양한 현상들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의 일을 예측해야 할 의무가 있다."

라는 것도 편견이 아닐는지. -_-

적어도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사회와 그 저변의 메커니즘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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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시간이 나는대로 공부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부르디외의 사회학 텍스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