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교복폐지 반대에 대한 반대

공현 2009. 12. 10. 02:28




  학생들은 흔히 '두발규제'에 대해서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 두발자유를 외치곤 하지만, (물론 이 두발자유 또한 염색, 파마 같은 거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으나) 중고등학교에서의 복장규제 - 가장 대표적으로 교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반감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덜해지는 것 같다.(뭐 그렇다고 해도 학생 10명 중 최소한 4-5명은 교복을 싫어하는 거 같지만)

  왜 학생들은 교복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한 반감을 가지는 것일까?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니 제복 특유의 '멋있음'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사이비 심리 분석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굳이 그런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게 생산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건 전문가 분들이 잘 연구해주실 테니까.
  이 글에서는 그저 교복폐지(또는 교복 강제 폐지)를 반대할 때 맨날 나오는 몇몇 이야기들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교복 없는 중고등학교'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의 감정, 생각을 돌아보길 바란다



1. '학생다움'

  교복은 최소한의 학생다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국 두발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학생다움'이라는 걸 대체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두발복장에 대한 규제, 외모에 대한 규제를 하면서 들먹이는 '학생다움'이라는 것은 결국 일부 꼰대스런 어른들(다수일까 소수일까?), 그리고 이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이 폭력을 동원해가면서 옹호될 만한 가치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자신이 원하는 나 자신을 표현할 권리, 두발이나 복장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는 굉장히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필요하다. 학생다운 모습으로 교장선생님과 일부 지역주민(어른)들의 눈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할 만큼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인가?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여기서 공공질서란 모호하고 폭넓은 개념이 아니라 굉장히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질서만을 뜻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거나, 폭력에 대한 예방이라거나...)를 위해 교복을 강제로 입힐 필요가 있는가? "학생다움"이라는 이유는, 개인이 추구하는 취향이나 가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 모두의 인권을 제한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사실 옷을 홀라당 벗고 나체로 다니거나 타인에 대한 명백한 심리적, 신체적 침해의 위험이 있지 않는 한 (이 경우 성폭력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복장규제 자체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학생다움을 위해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이런 소리다. "누군가 힘 있는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람들이 단정하다고 생각하는 제복을 모두 똑같이 입어야 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우리는 광고에 놀아나는 의류자본의 바비인형어서도 안 되겠지만, 꼰대들의 폭력에 놀아나는 학교의 바비인형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통일성

  교복을 입히는 게 그 학교 학생들에게 통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군지 언뜻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참으로 획일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왜 '통일성'이 필요하지? 모두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단정하게 있는 게 보기 좋으니까? 누군가의 눈에 보기 좋아보이는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서 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 결국 이것도 학생다움과 비슷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만다.

  교복을 강제하는 이유로 '통일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오히려 학생들을 모두 획일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은 폐지되어야 마땅함을 시인하는 꼴이다. 학교는 군대도 아니고 반드시 통일된 제복을 입어야 할 실용적 필요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획일적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과 두발규제는 다양성과 인권을 억압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복장규제만 사라져도 학교 분위기가 좀 더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한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그래야 통제/관리하기 쉽다.'라는 말이 숨어있다. 교복만 보고도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있어야 그 학생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복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더욱 없어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을 잘 교육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의식과 판단력을 심어주기보다는 교복이라는 장치로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이념인가? 만일 소풍 같은 것을 가서 학생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 따로 통일된 뱃지를 단다든지 손수건을 가진다든지 아주 작은 공통의 표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특별한 의식(장례식이라거나?)이 있을 때만 통일된 복장을 문화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규정과 폭력을 통해 통일된 복장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괴악한 일이다.


3. 경제적 차별

  교복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난관은 아마도 경제적인 차별의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교복을 폐지하게 되면, 옷에서부터 빈부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빈곤한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복을 아무리 입혀도 가방, 외투, 평소의 소비, 성적 등등의 부분들에서 이미 빈부격차는 뻔히 드러나고 있으며 교복이 그런 부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건 교복이 빈부격차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조금은 있다고 쳐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뭔가 이상하다. 학교는 사실 성적이나 옷차림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자유와 평등과 개성과 공공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내용의 교육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교복을 입혀서 겉으로 확 드러나는 경제력 차이만 좀 숨기겠다고?

   나는 학교가 학생들의 눈을 현실에서 돌리게 하는 눈 가리개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교복 입힌다고 얼마나 가릴 수 있을지도 다소 의문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과연 그 하늘을 가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이 든다. 학교는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하며,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가 입고 있는 옷의 가격이나 삐까번쩍함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런 교육을 하려고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교복이라도 입힙시다..."도 아니고 자기 본래의 역할은 전혀 수행하지 않으면서 교복 입히는 핑계로만 경제적 불평등을 대고 있다.

  백보양보하여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때문에 복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귀금속 악세서리'나 '수십만원 넘는 메이커 티 팍팍 나는 옷'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규정을 두고, 빈곤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복지를 보장하여 좋은 의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굳이 교복처럼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인권을 제한해야 할 때도 필요최소한만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장의 자유가 인권인 이상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또한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인권적 교육을 하면서 복장규제가 불필요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 그리고, 빈부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불공평한 빈부격차를 해소하자고 주장한다. 실제의 격차는 그대로 둔 채 백만장자건 서민이건 옷만 같은 거 입고 차 같은 거 타고 다니게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4. 귀차니즘

  사실 학생들이 교복폐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장 흔하게 하는 이야기가 이것인 것 같다. 교복을 강제로 입고 다녀야 할 때는 교복 그냥 입고 다니면 됐는데, 교복 강제가 없어지면 아침마다 무슨 옷 입을지 골라야 할 것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교복의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것조차 귀찮아 하고, 남이 강제해주는 옷을 수동적으로 입는 '노예' 상태에 익숙해져있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정 그렇게 귀찮으시면 당신만의 교복을 한 벌이나 두 벌 정해서 그 옷만 줄창 입고 다니시면 된다. 그게 교복처럼 한 종류의 옷만 강제로 모든 학생들이 입고 다녀야 할 이유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강제로 교복을 입게 하는 게 사라지고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이내 이런 귀차니즘 소리는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옷을 골라 입고 다니는 것,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많은 어른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직장에 제복 안 입고 가도 되는) 어른들이 귀찮으니까 교복/제복/국민복 같은 걸 만들자고 하지는 않더라.




  교복은 사라져야 한다.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중고등학교의 문화는 두발규제보다 더 획일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짓누르고 학생들을 길들이고 순응시키고 있다. 교복은 두발규제와 함께 여/남 성역할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여성은 치마 교복, 남자는 바지 교복 등등) 교복이 없는 학교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있으며, 한국에도 많은 대안학교들이(대안학교 아닌 학교들도 소수 있다.) 대부분 교복이 없는데도 잘 돌아간다. 교복이 없고 두발규제가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유토피아'까진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학교 모습일 것이다.




추신 : 경제적 차이를 은폐하려고 교복을 입힌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다, 라는 주장을 놓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그럼 성적도 공개해야겠네. 엄연히 존재하는 성적 차이를 왜 숨기려고 하나."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성적 문제와 교복 문제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첫째, 교복을 없애고 복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매우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성적을 공개하는 것에는 이처럼 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학교간 학생간 성적 경쟁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즉, 교복폐지에는 경제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정적 효과보다 더 앞서는 긍정적 가치가 존재하는 데 비해, 성적 공개에는 그러한 긍정적 가치가 별로 없다.

둘째, 성적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서열화, 차별 시스템이다. 학교 교육은 마치 성적이 그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나타내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이는 학력/학벌에 대한 차별로 구체화된다.(능력주의 신화) 경제력의 차이는 학교 밖에서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며 학교가 대처해야 할 외부 요인이지만, 성적은 학교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소인 것이다.





- 옛날에 쓴 '교복폐지론'의 후속작일까 보완작일까 뭐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