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빵꾸똥꾸’도 못하게 하는 더러운 세상

공현 2010. 1. 18. 12:22

‘빵꾸똥꾸’도 못하게 하는 더러운 세상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9호 '밥보다 문화'

권경우(문화평론가)  / 2010년01월18일 9시58분



얼마 전, 그러니까 벌써 지난해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빵꾸똥꾸’라는 단어가 갑자기회자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는 줄창 나왔으니 갑자기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이 단어를 시트콤의 애청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앞으로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였다. 방통심의위는2009년 12월 22일 등장인물 ‘해리’가 ‘빵꾸똥꾸’라는 표현을 일삼는 등 버릇없는 행동을 반복한다고 해서 <지붕뚫고하이킥!>에 ‘권고조치’를 내렸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경징계라고는 하지만, MBC 제작진은 “극의 수정 없이 그대로 나갈것”이라며 위원회의 규제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제 ‘빵꾸똥꾸’는 2009년 최고의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해리’는 자기 맘에 안 드는 상황이나 사람한테 내지르는 말이다.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해리가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주로 어른이다. 세대간 갈등이 나타나는지점이다. 논란 직후 12월 23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이 CBS 라디오 <시사자키>에 출연해서 ‘해리’를 가리켜‘정신분열증’이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가열되었다. 최 의원은 “늘 인상을 쓰고,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며,어른에겐 지독한 욕설을 퍼붓는다”면서 “주인공을 이런 식으로 설정하는 게 정상적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내가아는 상식으로는 이런 프로그램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실명을거론하면서까지 막말하는 개그맨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여기서 약간 헷갈리게 되는데, 어린이가 어른한테 막말을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비난하는 것이든)말을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인지 사실 명확하지 않다. 전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른이 잘못해도 어린이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것일까? 투표권이 없어서? 미성년자라서? 그렇다면 지금부터 민증을 깐 후 비판이나 충고를 해야 할 판이다. 그건 아닐 것이다.문제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행위를 하는 어른이다. 후자의 측면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이나 사회, 국가의 현실이 너무나폭력적이고 외설적임에도 너는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 막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막말이 나오는 맥락을먼저 살펴봐야 한다.

방통심의위에 해당 프로그램의 문제점의 민원을 제기한 시청자는 “극중 해리라는 어린이의 지나치게 버릇없는 언행이 반복적으로 묘사돼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긴하지만, 그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퇴출시킬 목록이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막장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가요프로그램에 나와 선정적인 모습으로 뭇남성들과 뭇여성들을 설레게 하는 ‘걸그룹’과 ‘짐승돌’은 모두 출연 정지시켜야 한다.또한, 사실을 전달한다는 뉴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통령의 거짓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에서 카메라를 향해 욕을 하는장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하, 그들은 어른이라서 괜찮은 걸까?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런 사람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빵꾸똥꾸’는 아주 중요하거나 의미가 있는 단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되바라진 한 어린이의 투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단어는 의미를 획득한 사건이 되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이 도래할것이다.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