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창틀 위의 시집 - 김행숙 『사춘기』

공현 2010. 1. 19. 01:30





2007년 11월에 썼던 글. 비평이라기엔 좀 덜 본격적이지만...........
미완성 교향곡 등등 지금도 읽으면 좋다.







창틀 위의 시집 - 김행숙 『사춘기』


  저번 주말에 결국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를 샀다. 사기 위해서 이 서점 저 서점을 돌아다녀봤지만 도무지 없고 어디에는 '절판'이라고 떠서 좌절하다가 5번째로 찾아간 서점에서 겨우 발견한 것이었다. 찾아 헤매던 책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음 그렇게 크거나 격렬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자꾸만 히죽거리게 되는, 뭐 그런 거랄까나. 우훗.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는, 고2 때 전북대에서 열린 어느 작은 백일장에서 가작을 받으면서 그 부상으로 내게 찾아왔다. 사실 그때 다른 약속 때문에 수필을 써서 휙 내놓고 직접 시상식 참가하지도 않고 다른 친구한테 혹시라도 받게 되면 대신 받아달라고 부탁해놓고 나와버렸기에, 처음으로 글을 써서 받은 책이라서 애착이 간다느니 하는 감정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그때 받았던 시집을 내기에 져서 다른 친구에게 줬을 때도(소중한 것 하나씩을 건 내기였다.) 그렇게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나보다. 다만 시를 쓰다가 막막한 느낌이 들 때면, 정말 간절히 이 『사춘기』를 펴고서 시들을 읽고만 싶었다. 그런 갈증이 내가 시집 하나를 찾아서 서점들을 돌게 만든 거겠지.

  <문학과 지성>에서 나온 278번 번호가 붙은 이 『사춘기』가 내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으면, 글쎄…. 내가 여러 시집들을 문득 사모으는 계기가 되었고, 또 고1 내내 100편이 넘게 써오던 습작 시들의 표현이 얼마나 유치하고 조악한지 깨닫고 새로운 조탁에 골몰하게 해준 책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다.
  예컨대 시적 표현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는 아이」라는 시에서 "표면으로 올라온 물방울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어요.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 봐요. 애들이 너무 오래 물속에서 놀고 있어요."라고 표현된 행은 내가 시를 쓰다가 막힐 때마다 떠오르는 부분이다. 내가 저렇게 쓸 수 있다거나 저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인상깊은 느낌을 주는 표현을 한 번 빚어보고 싶다는 감정이랄까. 하지만 『사춘기』의 의미는 그런 표현기법 상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기법을 배우고 싶다면 시중에 몇 안 되지만 나와있는 시창작에 대한 교과서(?)들을 보면 될 일이다. 거기에는 더 다양한 시들의 다양하고 인상깊은 표현들이 인용되어 있을 것 아닌가.

  말하자면, 정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밤에도」라거나, 「입맞춤-사춘기2」라거나, 「친구들-사춘기6」이라거나,「천국의 아이들1」이라거나, 「미완성 교향악」 같은 시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느낌이 좋았다. 그건 분열하고 있었고 때로는 집착하고 있었고 여하간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양 붕 떠있었으며 여기저기로 튀어 나가는 삶과 같은 느낌이었다. 자살하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완성되지 않았고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불안해하면서, 그래 그것은 '냉정'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cool하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그렇지만 cool함의 요소도 있는, 그러면서도 집착하고 흔들리고 메마른─ 어떻게 말하면 '문득'이란 말이 참 어울리고, 또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부서져 있는 흐름들.



 미완성 교향악

  소풍 가서 보여줄게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네가 좋아

  상쾌하지
  미친 듯이 창문들이 열려 있는 건물이야
  계단이 공중에서 끊어지지
  건물이 웃지
  네가 좋아
  포르르 새똥이 자주 떨어지지
  자주 남자애들이 싸우러 오지
  불을 피운 자국이 있지
  2층이 없지
  자의식이 없지
  홀에 우리는 보자기를 깔고

  음식 냄새를 풍길 거야
  소풍 가서 보여줄게
  건물이 웃었어
 
  뒷문으로 나가볼래?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음악처럼

 



 오늘밤에도

  오늘밤에도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에도 하늘은 푸르스름하고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소년들 소녀들 오늘밤에도 총총하다.
  낮에 소년과 소녀는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은 햇빛에 녹지 않고, 오늘밤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달콤하다.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12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소년은 전화를 한다. 난 달리지 않을 거야. 달려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덜컥,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오토바이족을 동경하지도 않고 여자애를 엉덩이에 붙이고 싶지도 않아. 나는 무섭게 세상을 쏘아보지 않지. 그런 눈빛은 이제 아주 지겨워. 몇 명의 소년 소녀 오늘밤에도 머리를 너풀거리며 추락하고,
  그 몇 초에 대해 오늘밤에도 명상하는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도 쉽게 깊어진다. 우리는 어디서도 만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면 항상 오늘밤이 아주 달콤해지지.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친구들
 - 사춘기 6

  주소록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어요.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없고 저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내가 없고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정말 시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우린 모두 일목요연해지려고 모였다구.

  우리에겐 특별한 날이잖아.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로 해. 우린 모두 지쳤기 때문에 동의했어요. 무섭게 조용해졌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 이해해. 우린 너무 많아졌으니까.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중이야. 지옥행을 시도했거든.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폭신한 침대에 내가 누워 있고 지옥문 앞에 내가 있고 다시 약국에 내가 있고 엄마 손에 잡혀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고 꽃잎이 떨어져서…… 근데 절대 시 쓰진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얘들아, 우린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모레에는 기차를 탈 거야. 가끔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야. 우린 천천히 조용해졌어요.



 
  실로 그런 것들이 내 길디 긴 사춘기(=인생)의 단면들과 공조하고 있기에, 나는 그 시집을 사랑한다. 김행숙 시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의 시들을 사랑한다. 문득 김행숙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은 사춘기 아닌가요?>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사춘기라고 얘기하던데요."라고 한 게 생각난다.

  최근에 김행숙 시인이 새로 낸 『이별의 능력』을 읽어보았다. 이 시집에서도 김행숙 시인의 표현 능력이라거나 시에 반영된 정서의 흐름 같은 것은 그대로 살아있다. 하지만 그 시집은 『사춘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밀고 간 시들의 느낌이 난다. 비유하자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폴라리스 랩소디』 중에 『폴라리스 랩소디』가 이영도의 초기 판타지 소설에서 그 구성이나 내용 전개로 볼 때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음에도, 독자들에게는 『드래곤 라자』가 더 인기있는 그런 것? 하긴, 항상 같은 느낌 같은 어조 같은 색깔의 시집만을 낼 수 있는 시인이란 건 얼마나 재미 없을지.


  나한테 앞으로 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사춘기』를 주고 싶다. 그게 이해하기 쉽든, 이해하기 어렵든 간에. 『사춘기』를 구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제본이라도 해둘까?









한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그 리고 2003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위기'니 '죽음'이란 말은 '이동'과 '탄생'을 우울하고 과격하게 예언한다. 문학이 사라지는 곳에서, 문학은 새로운 육체로 또 다른 생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의 운명과 더불어 나의 생을 실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흔들리는 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위기'와 '죽음'의 징후만을 드러내는 데서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죽음' 쪽으로 나는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나는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았던 것에 기댈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나의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

 - 『사춘기』 뒷표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