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0. 1. 20. 20:59




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조직되어서, 시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과격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그들의 '보수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간극이나 구멍을 사회 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 - 설사 그 사람이 다만 기인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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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민들의 대부분은 군거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싫어하고, 만약에 노예 제도가 아직도 성행한다면 기꺼이 노예가 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혹은 지적 일치를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의미에서,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 로버트 그레이브스(1895~1985, 영국의 시인, 소설가.)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에서 재발췌)






  "규범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서 규칙은, 규범은, 윤리는 한계 짓는 능력밖에 없다. 반짝거리거나 흐르기, 끓기를 금지하는 도덕이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과 규범과 윤리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밖으로 나아가는 대신 안으로 한계 짓는다. 죄를 저질러라! 증오해라! 죽여라! 규범을 무시하고 죄를 저지를 때, 타인이 안간힘을 다해 지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빼앗아 마실 때, 생은 장절한 날개를 펼치고 미답의 하늘로 날아간다! 그 하늘에서 너희들은 반짝거리고 흐르고 끓을 수 있다!"

... (중략) ...


  "예, 저희들은 파렴치하게 죄를 저지를 겁니다. 혼란을 퍼뜨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 나타나게 하고, 그중 아름다운 것들을 게걸스럽게 취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규범에 묶어 치워 둘 겁니다. 그리고 규범이 뭔지도 모르는 양 다시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한계인 규범은 길잡이가 아니라 그냥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두는 곳이지요. 우리는 혼란을 퍼뜨릴 겁니다."
  이라세오날은 비늘을 부딪쳤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 죽을 거다."
  엘시는 슬픈 눈으로 이라세오날을 보다가 말했다.
  "그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8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가져올 혼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오래 전에 메모해둔 저 김수영 씨의 글에서 재발췌한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피마새도 생각났고...

혼란 그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솔직히 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란은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것이 어떤 혼란인지, 얼마만큼의 혼란인지, 어디에서 비롯된 혼란인지, 언제까지의 혼란인지 등등에 대한 섬세한 논의 없이 '혼란'이라는 말 자체로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가며 공세를 펴는 것은 기실 별로 내용이 없는 말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공허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자유'를 단체 이름에 붙인 사람들이 혼란 그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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