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단상

공현 2010. 2. 1. 01:44




* 강기갑 씨의 남보원 역패러디에 바치는 조공...이려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는 약간은 복합적인 선들 위에서 평이 이루어져야 할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상의 변화도 그렇고, 그밖에 부분들도 그렇고 말이죠.


처음 남보원이 방영되었고 그 첫 화가 떠돌 무렵. 제 주변에서는 루저인 남성들의 찌질한 애환들을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남성들을 희화화시키는 느낌이다. 반여성적이라는 지적은 약간은 오버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도 첫 화를 본 소감으로는 대체로 동의했었구요.
남보원의 초기 컨셉은 "지금은 여성상위"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남성들이 말하는 그 불평불만들이 얼마나 별 거 아니고 또 어떻게 보면 우스워보이는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팝콘에 버터 추가하지 말라고 하며 징징대고, 팝콘을 사라면서 북을 치며 구호를 외치고 '투쟁'하고, 그렇게 징징대다가도 요술봉 하나에 웃음을 되찾는 남성들. 그건 차라리 여성들을 비난하고 역차별(이 뭔 뜻인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지만)을 소리높여 외치는 남성들에 대한 자아비판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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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반부로 오면서, 이러한 태도는 점점 변화합니다.
남성들에게 불만을 느끼게 하는 여성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 같은 위치와,
여성들에게 불만 가지는 남성들의 찌질함을 폭로하는 것 같은 위치
이 둘 사이의 균형에서 남보원은 점점 전자로 기울어갑니다. (이러한 기울어감 자체가 남성 우월 사회의 결과물 아닐까요?)

남보원은 점점 남성중심적이고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소재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남보원은 매우 적나라하게 성별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한편 정당화시킵니다. 예컨대 그동안 사준 밥이 얼마냐, 외박 한 번 해라. 라고 외치는 남보원은 결국 여-남의 연애관계가 여성의 성과 남성의 경제력을 맞교환하는 관계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긍정하고 또 그것을 남성들의 정당한 요구, 심지어 '인권'이란 이름을 붙여서 외칩니다. 세상에. 도대체 왜 그게 인권인지 모르겠군요.

남성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경제력을 희생당하는 것 같은 측면이 있다면 평등한 경제적 부담을 질 것을 요구하는 게 맞겠지요. 그것은 어쩌면 '평등'이라는, 인권과 가까운 가치로 이야기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성들이 소득이 일반적으로 더 낮은 현실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지요. (사실 여성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 하는 것이 불만인 남성 분들은 여성운동에 뛰어들어서 여성들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함께 투쟁하셔야 합니다.)

개그 프로라서 그런 사회구조적 이야기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남보원은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 선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산 밥이 얼마냐 외박 한 번 해라"를 외칠 때, 그리고 이와 유사한 사례들에서, 이미 남보원은 남성우월적 사회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고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여성에 적대적'이라거나 성불평등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만한 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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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남보원 자체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여성들'의 상은 매우 계층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된장녀'로 표현되는, 고소득 전문직이면서 남성들을 부당하게 갈취(?)하는 여성들을 여성 일반을 대표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남보원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여성들과 관계맺음을 하는 남성들은 또 누구일까 하는 고려까지 해야 남보원에 공감한다고 하는 남성들이 누구인지 윤곽이 잡힐 것입니다. (하재근 씨 글 )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엄밀한 분석이 가능한 위치는 아니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의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대학생이 고학력자라면.), 전문직 정도의 말들이 연상되는군요.
단적으로 말해서, 저도 남성이지만 저는 남보원을 몇 번 보면서 공감한 적이 올림픽 레슬링복 이야기밖에 없어요. 제가 굳이 여성주의적이려고 노력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경험 자체를 한 적이 없는 게 대부분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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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보원을 보면서 드는 또 다른 불편함은, '투쟁'을 지나치게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투쟁이나 인권이 반드시 엄숙한 것이어야 하고 존경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희화화될 수도 있고 웃음이나 농담이라는 방식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투쟁에 나서고, 비인격적 모독과 대우에 맞서 투쟁에 나서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보고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투쟁을 우스운 놀이로 보이도록 만들어온, 진정성 없는 투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온, 형식적인 운동만을 일삼아온, 일부 활동가들, 명망가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남보원은 또한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그런 인식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인권은 극히 사회적인 문제이며 소중한 가치입니다. 사회적 권력관계의 문제를 담고 있으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욕망들이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인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권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되면서, 그리고 강자들의 권익이 형식적 평등의 논리 속에 '인권'이라고 이야기되면서, 인권이 뭔지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고 느껴볼 기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인 이 사회에서 인권이 이상한 형태로 전용되면서... 사람들은 인권을 비웃고 짓밟습니다.
지금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가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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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여성인권보장위원회를 만든다면,
아마도 남보원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차별적이고 억울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여성단체들은 많이 만들어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키배 뜨는 이상의 활동을 하는 '남성단체;란 건 안 만들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군요.



추신 : 저는 남성들이 나서서 남성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하며 군대/징병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적극 찬성하겠습니다. 한 마디 덧붙여서요. "군대/징병제를 폐지하는 건 남성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인 동시에, 군대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평등권까지 옹호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