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소녀와 민주주의 (김영수.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에서 발췌.)

공현 2010. 3. 25. 00:19



청소년․소녀와 민주주의



  기성세대의 눈높이로 재단되는 청소년․소녀?

   2008년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이 서울광장으로 번져 대한민국을 촛불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온라인의 네트워크는 촛불로 달구어졌다. 청소년․소녀들의 촛불이 기성세대의 촛불로 진화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명박차량과 명박산성에 갇혔다. 현실정치에 뛰어나다고 떠들었던 그 어느 누구든지 청소년․소녀들의 촛불에 끌려 다녀야 했다. 항상 감시와 훈육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소녀들은 기성세대들을 훈육하였다. 그야말로 청소년․소녀가 보여 준 정치전복의 미학이었다. 그들은 바로 정치적 주체였다.

   2008년 청소년․소녀의 촛불공론장은 사회적 차별과 특권을 개입시키지 않고 합리적 대화를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되었다. 촛불은 개별적이면서도 개별화되지 않은 힘이었다. 또한 촛불은 집단적이면서도 집단적이지 않은 힘이었다. 개인의 힘이 집단화되기도 하였고 집단적 힘이 개별화되기도 하였다. 촛불은 개인과 집단을 연결하는 정치적 가교였다. 자발적 네트워크가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힘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참여자들은 합리적 담론을 가능케 하는 기준을 존중하면서 참여자의 평등성을 보장하려 하였다. 아고라의 새로운 장이 열렸던 것이다. 촛불공론장은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민주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 하였던 것 아닌가? 국가 중심의 정치를 국민 중심의 정치로 전이시켰던 것 아닌가? 2008년 촛불은 말이나 글로써만 미래사회의 주인이었던 청소년․소녀들을 민주주의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게 했다. 청소년․소녀들은 책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아고라 민주주의, 아니 촛불 민주주의로 전복시켰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위기국면을 발전국면으로 전화시킨 주체로 등장하였다.

   ‘청소년․소녀’라는 용어는 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청소년․소녀의 연령을 어떻게 정하느냐, 그 언표에 해당되는 주체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용어가 함의하는 의미들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청소년․소녀’라는 용어 자체부터 대단히 유동적이고 자의적이면서도 사회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의 눈높이 시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성년이 되더라도 어린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은 군대를 갔다 오거나 결혼을 해야 어린이에서 벗어난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연령 기준이다. 청소년․소녀라는 법률적이고 형식적인 연령,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연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저 보호와 훈육의 대상일 뿐이다. 청소년․소녀를 지칭하는 용어나 연령 규정이 모두 제각각이다. 영어로 'Youth'에 해당되는 청소년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보호의 대상으로서 ‘아동children’, 성년의 전단계로서의 ‘미성년under-age’, 아동과 성년의 불완전한 과도기적 존재로서의 ‘청년adolescence’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1961년에 제정된 미성년자보호법에 의해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훈육의 대상으로 규정받게 된다. 기성세대들이 보호해야만 하는 유리그릇이었다. 박정희 군부독재체제가 청소년․소녀들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청소년․소녀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해방운동의 한 주체였다. 1960년 4․19혁명에서도 투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청소년․소녀들이 순식간에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없는 보호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박정희 군부독재체제가 만든 두 법은 청소년․소녀를 ‘보호’와 ‘귝성’이라는 사회적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미성년자보호법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으로 개정되었고, 아동복리법은 1987년에 청소년육성법으로 개정되었다가 1991년에 청소년기본법으로 다시 바뀌었다. 청소년 보호정책과 육성정책이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기구가 양분된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두 법률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소녀들을 자기 생활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그저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의 생활을 보호하고 양육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청소년․소녀들은 자기 생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유엔이 정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의하면, 청소년․소녀 연령은 18세 미만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소녀의 연령은 청소년기본법에서 9세 이상에서 24세 이하이다.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이하로 명시되어 있다.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아직 심신의 발육이 충분하지 않고 판단능력이 부족하므로 민법상 행위무능력자로 하여 법정대리인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재산상의 거래행위는 법정대리인이 대신하든지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심신의 능력이 노쇠하여 거의 행위무능력자 수준에 이른 고령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20세를 넘긴 지 오래기 때문에 20세 미만의 청소년보다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좋다고 인정된다. 나이를 가지고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법률적 일반화의 폭력이다. 영재교육이 발달하여 15세 전후로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영재의 판단능력이 기성세대보다 뒤떨어진다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영재들은 오히려 기성세대들보다 더 훌륭한 국가정책을 자신의 창의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기준으로만 보면, 대학에 입학한 영재들도 20세가 되지 않았기에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갖추지 못한 보호대상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국가별로 청소년의 심신 발육상태가 차이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청소년의 인격과 주체성을 보다 이른 나이에 인정하는 사회문화 때문일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143개 국가가 18세 미만을 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이란과 같은 국가는 17세 미만을 미성년자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17세에 주민등록증을 받고도 미성년자로 나망 있다가 20세가 되어서야 성년으로 대접받는다. 20세가 되지 못해 규제받고 있는 것들을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18세가 되면 근로, 납세, 국방 등의 의무가 주어진다. 공무원에 임용되거나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결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20세 이상의 성년이 되지 못할 경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만 것들이 무수히 많다. 18세 이상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의무만 있지 권리는 거의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의무가 국방의 의무이다. 전시에는 17세만 넘으면 전쟁에 동원된다. 보호대상이었던 청소년이 국가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한다. 17세가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심신이 발육되고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해서일까? 이는 주민등록증이 17세에 발급되는 근거이다. 신분증의 변천사를 보면 그 해답이 있다.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이유는 총력적인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등록을 거주 사실과 일치시키고 주민등록증 발급대상자 연령을 민방위대 및 전시동원 대상자 연령과 일치시키고자 18세에서 17세로 낮추었다. 국가가 동원하는 청소년․소녀는 심신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국가의 관리대상으로서의 청소년․소녀는 판단능력이나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꼴이 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제에서는 청소년․소녀들이 대부분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까지는 전시에 동원될 때 빼고는 그저 보호대상으로 남아 기성세대들의 의지대로 관리되고 양육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인겨긍로 대체되는 종속적 대리주체에 불과한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아마도 세대 간의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니 기득권 지배세력들은 청소년․소녀의 촛불을 끄기 위해 학교와 시험을 그 수단으로 삼았다. 청소년․소녀의 일상생활에서 약한 고리로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이용하였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들을 학벌사회가 강요하는 대학입시의 전쟁터인 학교의 울타리에 가두었다. 요즈음 대학생들도 학교의 울타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졸업을 하고 싶어도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노동의 권리가 부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갈등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동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이 10% 이상 장기화된 지 이미 오래다. 취업을 하더라도 그저 비정규직이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직업을 두 개 혹은 세 개를 가져야만 하는 다기능 사회만이 그들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낮에는 비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이다. 청소년․소녀들에겐 절망의 미래를 희망의 미래로 바꾸어 내는 세대혁명의 과제만이 남는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청소년․소녀, 학벌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청소년․소녀, 일자리를 잡아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만 하는 청소년․소녀들은 노동의 위기시대에서 독립적인 자기생활의 권리를 쉽게 확보하지 못한다.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의 노동과 돈을 좌지우지한다. 청소년․소녀를 훈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남게 하려는 기성세대들의 최후 수단이다. 기성세대들은 단지 내 자식만 노리갯감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된다는 자기만의 울타리를 치고 있다.



  정치적 주체로 다시 서는 청소년․소녀!

  청소년․소녀들은 국민임에도 주권을 가지지 못한다. 권리는 거의 없고 의무에 짓눌려 살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위임할 대표도 기성세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권리조차 보호와 훈육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들에게 불호가실한 미래를 위해 밤낮으로 투자하라고만 한다. 문제는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년․소녀의 권리는 그저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성세대들의 이권은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고 훈육한다는 우산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대 간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철저하게 방지한다. 이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대상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국정과제를 제시하였다. 대학입시라는 경쟁지옥에서 판단능력이나 책임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비행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청소년․소녀를 기성세대들이 잘 보호하려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에게 7대 영역 30대 정책과제를 대선공약사항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책과제는 주로 청소년․소녀들을 훈육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 전담부처 신설 및 예산확충, 청소년 참정권 확대 및 청소년지도자 복지개선, 지역사회 청소년 통합지원체계 내실화, 민간차원 청소년국제교류 및 국제협력 지원 강화, 청소년․소녀 지도자의 날 법제화 등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책내용들은 청소년․소녀를 지도하고 훈육하는 기성세대들의 몫이었다.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의 주권을 실현하게 하는 알맹이는 하나도 없었다.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청소년․소녀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기성세대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지배세력은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만이 성공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까지 만들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청소년․소녀는 현실정치의 한정치산자였다. 아니, 어떠한 행위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금치산자였다. 국가권력은 청소년․소녀에게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없게 하였다. 기성세대들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교과서만이 그들의 공간이었다. 국정교과서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성장을 위해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경제, 국가의 공공적 폭력을 위해 권리를 양보하는 정치 등을 그들에게 강요하였다.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소녀들을 훈육하고 관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울타리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탈주하는 청소년․소녀는 바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을 찍었다. 교사가 청소년․소녀에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라도 하면 당장에 운동권 교사, 의식화 교사로 비난을 가했다.

  이제는 정치세력만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나 국가 중심의 권력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의 권리는 그들 스스로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기존의 정당정치는 시민citizen, 대중mass, 다중multitude, 인민people, 군중crowd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의정치는 기성세대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소녀들은 시혜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과거와 같이 좁은 의미의 대의정치만이 아니라 참여와 대의가 공존하는 네트워크 정치가 발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청소년․소녀가 존재한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미래사회의 주인이자 주체라고만 말할 뿐, 항시 자신의 눈높이로 설정된 기준에 맞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온실 속의 맞춤형 화초로 간주한다. 청소년․소녀가 배우고 접하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자신들을 정치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였다. 또한 책을 통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내용만을 배우는 민주주의였다. 청소년․소녀는 2008년에 촛불을 들거나 네트워크를 타고 정치의 주체로 나섰고 왜곡되고 비틀어진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주인공이 아닌가?

  소비대중문화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등장한 1990년대의 ‘신세대’를 일컬어 탈정치적인 세대, 탈이념적인 세대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청소년․소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이나 스타일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정 가수의 팬클럽이 주도하는 팬던문화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등장한 소위 X-세대나 N-세대 역시 탈정치적인 문화만을 추구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보호대상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만의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에 우려를 금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의 편견에 불과했다. 정치적 주체를 의회나 정당으로 제한시켜버리는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판단능력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청소년․소녀들이야말로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쟁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찬성과 반대의 요점을 정확하게 알고 비판할 능력이 기성세대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만 벌려고 하면서 살아가는 기성세대들과는 다르다. 스스로 자발적인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을 갖는 청소년․소녀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미래희망이자 기둥이다. 청소년․소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국가정책을 결정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운영하는 청소년․소녀단체들도 그들 스스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사회적 보호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사회적 주체이다. 미래사회의 주인은 기성세대들의 말과 글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나설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청소년․소녀들이 정당이나 정치조직 등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하면 된다. 자신을 사회적 보호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사회적 모순들을 극복해 나가면 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들의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다. 청소년․소녀들은 가칭 ‘청소년․소녀미래사회당’을 결성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그 정당을 중심으로 청소년․소녀들의 국가정책에 개입하거나 대안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소녀에게 정당활동의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함과 더불어 선거권․피선거권을 동시에 부여해야만 한다. 정치는 기성세대들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팬클럽을 조직하는 청소년․소녀들의 능력을 고려하면, 가칭 청소년․소녀미래사회당은 기성세대들의 정당보다 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할 수 있다. 정당활동의 형식과 내용 역시 젊음만큼 활기찰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 만 21세로 시작되어 1960년에 만 20세로 낮추었다. 이후 45년간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만 18세 이하의 연령에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연령을 낮추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였다. 국내법은 만 18세를 법적 성인으로 인정한다. 국가는 그들에게 병역, 납세,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단지 참정권에서만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의 권리와 의무 간에 이중적 잣대가 적용된다. 의무는 부과하면서도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오스트리아, 영국, 일본에서 ‘16세 유권자’가 등장하였다. 이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행정전문가인 제럴드 하이만은 “그들이 과연 정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 ‘군대에 갈 수 있으면 투표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참정권 제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췄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스테인 링겐 교수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유권자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아동들이 공공정책 결정에 영향을 더 미쳐야 한다”고 맞섰다. 체코의 인권장관인 드자밀라 스테리코파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청소년․소녀의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며, 최소한 자치단체 선거라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연령을 21세에서 19세로 낮추는 데 거의 50년 가까이 걸렸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16세 유권자 문제는 꿈속에서나 생각해볼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2008년 촛불은 16세 유권자 문제가 바로 우리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세계적으로 만 16세와 17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나라도 니카라과와 쿠바 등을 비롯해 7개 국가에 이른다. 이란은 만 15세 청소년․소녀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140여 개 국가는 만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 몇 국가에서만 19세 이상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다른 나라 청소년에 비해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아마도 손사래를 칠 것이다. 세계 수학올림픽과 같은 경기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청소년․소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연령을 만 15세 이상으로 설정하였다. 만 15세에서 만 29세까지의 총소년․소년들은 청년실업률을 산출하는 대상이다. 기성세대들은 만 15세 이상의 청소년․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인정하고 있다.

  피선거권의 연령도 매우 다양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캐나다처럼 18세에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도 있다. 싱가포르나 영국은 21세에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도 25세 이상이면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서 당선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면 40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매우 혼란스럽다. 우리나라 선거권은 19세인데 국회의원 후보자격은 25세이고 대통령 후보자격은 40세라니 뭔가 모순이 있다. 정치적인 판단능력과 책임능려깅 있어서 선거권이 부여되었는데 피선거권은 또 다른 나이의 기준으로 제약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선거권 연령과 피선거권 연령은 같아야 한다. 정치적인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에서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 간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나이로 제약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10대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가 나오거나 당선되면 그것이야말로 뛰어난 우리나라 청소년․소녀의 능력에 감사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다. 10대의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가 당선되어 기성세대들보다 국가정책을 더 잘 수립하지 못할 것이라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단지 기성세대들은 생활의 경험만을 내세우면서 청소년․소녀의 부족한 경험능력을 의심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대 선거권자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청소년․소녀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기성세대들의 과거 경험은 박물관의 전시품에 불과하다.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먹고사는 올드보이들이다. 청소년․소녀는 현실사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실질적인 전문가들이다. 컴맹이면서도 정보사회의 청소년․소녀를 이해하고 있다고 떠드는 기성세대들이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할 뿐이다. 노동과 돈을 장악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기득권의 폭력을 행사할 뿐이다. 설사 청소년․소녀의 경험이 부족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청소년․소녀 스스로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국가정책을 결정하게 하면 된다. 아프리카의 르완다 헌법은 제188조에서 국가청소년․소녀협의회를 국가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르완다 국가청소년․소녀협의회는 청소년․소녀 정책을 협의하고 결정한다. 청소년․소녀의 대표자들은 이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다. 청소년․소녀가 단순히 기성세대들의 보호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당당한 권리주체이고 미래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 현실의 정책이 미래의 주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소녀들이 국가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청소년․소녀들은 이러한 권리를 토대로 자기주도적인 삶의 주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청소년․소녀들이 정치의 문제에서 주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세대간의 폭력이다. 청소년․소녀를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성세대들의 과잉 애프터서비스이다. 그들의 권리를 기성세대들의 선입관과 편견으로 제한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국가는 가능한 한 나이가 많을 때까지 청소년․소녀를 제약하고 통제하려 한다. “청소년․소녀는 미성숙한 자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기결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라든가, “청소년․소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음란물이 제도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등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심신이 발달하여 판단능력과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소녀들을 몰래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불과하다. 청소년․소녀들에게 판옵티콘의 원리를 작동시키려는 기성세대들의 폭력이다.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김영수. 2009. 메이데이. pp.142-155.)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관련 내부 스터디를 할 예정이라서 자료로 발췌한 것입니다.
메이데이 책은 정보공유 라이선스가 붙어 있어서 이렇게 발췌해도 딱히 저작권에 걸리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