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전청련(전국청소년학생연합) 해산에 부쳐

공현 2010. 4. 21. 04:04


전청련(전국청소년학생연합) 해산에 부쳐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글입니다. 제가 속한 단체의 입장과는 별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_@)
공현


전청련 해산 소식을 듣고 제 마음 속에 번졌던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좀 쌩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도 씁쓸함도 아닌 외로움이라니 말입니다. 그치만 정말로, 전청련이 해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뭐, 감정을 억누르도록 사회화된 남정네라서 그리 쉽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요.

요즘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부쩍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봅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잖습니까? 제대로 된 청소년단체라고 해봐야 흔히 쓰는 말로 한줌밖에 안 되고 말이지요. 청소년들을 보호하자, 청소년들을 선도하자, 그런 단체들은 참 많고 정부 지원도 나름 빵빵합니다. 대개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바로 이런 분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자, 청소년들이 직접 운동의 주체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행동과 저항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청소년단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운동에 대해 고민이 들어도 그 고민을 같이 토론할 만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타자(他者)가 별로 없습니다. 어떤 활동을 같이 하자고 협력을 제안할 단체들도 많지 않습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외로운 일입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래서 전청련 해산이라는 소식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안타까움에, 저는 외로움을 보탭니다. 전청련이 건강한 청소년조직으로 성장하여 저/우리를 좀 덜 외롭게 해줄 수 있길 바랐습니다.(키잡?!) 전청련이 제가, 또는 제가 속한 단체들이 다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의 여러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좀 무협지스럽게 이야기해서, 전청련이 믿고 등을 맡길 만한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고, 제안받고, 서로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랐습니다.


촛불의 실패, 청소년운동의 실패

저는 전청련의 해산에서 전청련이라는 어느 한 조직의 실패 뿐 아니라 한 '시대적 사건'의 실패를 읽게 됩니다. 아마 몇 년 후면 교과서에도 나오게 될 거 같은, '2008년 촛불'의 실패입니다. 전청련은 2008년 촛불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여러 청소년단체들 중 하나였고,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런 전청련이 끝내 해산하는 것은 2008년 촛불이 청소년운동에 남긴 성과는 무엇이었나,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2008년 촛불은 청소년들이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오다니 부끄럽다... 청소년에 관한 말들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8년 촛불은 청소년운동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어떻게 운동들을 만들어나가고 조직해나갈지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했던 것 때문일지, 아니면 촛불집회 안에서도 반성 없이 계속된 여러 사회적 차별들의 문제일지, 거대담론적인 촛불 프레임의 문제였는지... 그런 것까지 다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전청련의 해산은 2008년 촛불집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전청련 해산은 한국 운동사회, 아니 청소년운동사회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청소년단체들, 청소년활동가들은, 왜 새로 막 생겨난 자생적인 청소년단체를 지원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일까요? 뭐 제 코가 석자니 지원이라고 해도 물질적 원조 같은 건 어려웠겠지만,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자료를 제공하고 전청련 활동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운영방안, 활동방향 등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현재 놓여 있는 열악한 운동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저/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사후약방문

사실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몇 번씩이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하며 한두마디씩 끼어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청소년단체 사람이 와서 단체 내부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쁜 일이었고 말입니다.(물론 그 중엔 전청련 카페에서 등급이 방문객 등급이어서 글을 읽고 쓰는 게 제한이 걸려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죠;;) 결국 사후약방문 격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키보드가 근질근질거렸던 두 가지만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사람-활동-조직 : 모든 운동단위에 다 적용되는 이야긴 아니겠지만, 저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조직을 운영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사람-활동-조직 순으로 사고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사람이 먼저 있어야 무엇이든 할 테니 활동하는/활동할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활동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운동단체의 존재 목적은 결국 이 활동을 하는 데 있습니다. 활동이 없으면 유령단체가 되고 죽게 되는 것이고, 활동이 있으면 어떻게든 단체/조직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운동에는 자전거 같달까 베르누이 효과 같은 성격이 있거든요.(이런 자연과학적 비유;) 활동을 하고 계속 굴러가는 조직이 넘어지지 않고 공중분해되지 않고 주위에 흡인력을 발휘하며 계속 생명력을 얻습니다. 피가 아니라 피의 흐름이 '생명'인 것처럼 말이지요.
조직구성은 그 다음입니다. 조직은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 같은 것입니다.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운영은 어떤 절차로 하고, 이런 것들은 활동을 하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청련을 보면서 계속 걱정했던 것은, 활동보다는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느 자리를 누가 맡고 어느 부서를 어떻게 인사 배치하고, 어떻게 그럴듯해보이는 조직을 만들까 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처럼 보였던 점입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을 만들어가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토론 속에서 전청련의 지향점과 목표를 합의하는 식이 아니라 계속 노선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운동은, 물론 뭐 입이나 손가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발과 얼굴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저는 참 못난 활동가지요.) 발로 뛰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홍보하고 행동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운동입니다. 서로가 대단한 노선이나 투쟁의 방법론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건 운동에서 부록 같은 겁니다. 조직내에서 누가 의장을 맡을까 하면서 하는 선거 같은 것도, 일종의 부록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그 단체/조직의 성격을 정하는 거니까요. 저의 관점에서는 전청련은 '3기 지도부가 출범하지 못해서' 해산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어서' 해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청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전청련이 좀 더 활동 중심적으로 꾸려지고 움직였다면 더 오래 존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생단체 : 전청련은 촛불집회의 열기 속에서 처음 시작하는 단체/조직 치고는 돈이든 사람이든 비교적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뿐, 전청련은 안정적인 재정 운영 방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이런 활동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활동이 어렵고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청련이 좀 더 신생단체로서 다른 단체들, 다른 운동들에 손을 벌렸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제가 아까 '다른 단체 사람이 와서 왈가왈부'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는데요. 차라리 전청련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활동에 대해 물어보고 고민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개별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단체 차원에서 다른 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인터뷰해서 전청련 활동에 참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재정 문제나 여러 인맥 등도 그런 식으로 여러 단체들과 친해지고 활동에 후원을 얻고 비품을 빌리고 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거구요. 그래서 전청련이 너무 '갖춰진 조직'으로서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결국 전청련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

전청련 해산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청련이 해산하지 않도록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청련 해산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별로 달라진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안서에 적을 단체가 하나 빠진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2008년 촛불 이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없는 것은 다릅니다. 청소년운동의 조건과 지형도 다릅니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낍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라는 말에는 동시에 촛불 이후라는 말도 숨어 있습니다.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따져묻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는 활동으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것입니다.

전청련에 몸 담았던 분들에게는, 전청련 해산에 너무 좌절하고 상처받지 마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은 저도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니 '학생인권공동행동'이니, 여러 모임을 만들었다가 흐지부지되거나 해산시킨 일이 여러 번입니다. -_-; 그런 시행착오와 실수 속에서 활동가들이 단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전청련 게시판의 해산에 관한 공지를 보니, "이 공지글이 게시된 직후 단체 전환을 하고자하여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홍보하는 것을 인정함."이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전청련 분들 중에서 계속 청소년운동을 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앞으로도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 활동을 만들어가면 참 좋을 것입니다. 아수나로로 오셔도 환영하구요. (퍽!) 언제나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밑바닥 중 하나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게, 청소년운동의 조건상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전청련 해산에 안타깝고 외로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