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 발제문 : 본격학교엎는기본소득, 패륜적기본소득

공현 2010. 6. 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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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학교 엎는 기본소득



지금부터 김칫국을 마실꺼당.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0세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50만원 가량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며, 그것이 친권자들에 의해 남용되지 않게 방지해주는 최소한의1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된다는 가정을 해보자. 어찌됬건 친권자는 쩌는 존재이니 그들이 돈을 꿀꺽 할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테고, '미성숙'한 청소년 따위가 돈을 받아봐야 유흥비로 탕진하겠지 하며 츤츤대는 사람도 있을법하고, 야자에 학원에 강제학습당하느라 유흥비로 쓸 시간조차 없을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거다. (현실은 유흥할 공간이 없당...)

어느정도는 모두가 맞는 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청소년이 현재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식의 블링블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거라고,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이런저런 균열들이 생기면서야 비로소 큰 틀들이 바뀌기 시작할테다. 그 큰 틀들 중에 학교가 있다.

남한의 청소년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뜨든.) 대부분에게 가정과 더불어 억압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시간과 즐거움과 권리의 블랙홀이당. '다니기 싫지만 어쩔수 없지,' 하며 비장한 스멜을 풍기는 대사가 난무하는 그 곳, 왜 '어쩔 수 없이', '다녀야만' 할까. 고통스럽지만 깊이있는 학문을 통한 진리의 탐구를 위해? 안다닌다고 하면 아빠가 족치니까? 당장 나가면 할게 없어서? 대학 졸업장 없으면 정규직이 못되니까? 첫번째 경우라면 남한이 아닌것 같고(...) 두번째 경우에 관해선 공현이 패륜적으로 설명해 줄테고, 여기서는 세번째와 네번째의 경우를 보자.

"야 넌 학교 왜 다니냐? 재미없지않아?" 하면 "어차피 나가봤자 할게 없잖아." 하는 애들을 꽤 많이 봤당. 여기서 '할게 없다'는 말은 두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레알 할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뜻과,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의미. 전자처럼 규제랑 강제 쩌는 학교가 그래도 심심한것보다 낫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캐암울할거당. 모두가 머리카락을 한개씩 뽑으며 대체 청소년에게 얼마나 놀이공간이나 놀거리가 없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할 거다. 후자라면 18세미만의 노동을 제한하는 법을 개정해야하고, 알바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하지만, 여기에 기본소득이 얹어진다면 청소년의 생존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당장 생계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기 때문에 학교를 나올 수 있는 여지도 많아진다.

대학 졸업장을 통해 고소득 전문직을 굳이 해야겠다는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소득이 재학이나 진학 여부에 직접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를 '선택'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소년이 주위에 늘어가고,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조금씩만 늘어나도 다른 학생들이 그 영향을 받는것은 물론, 현재의 '못견디겠으면 나가셈' 식의 일방적 학교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 두발규제와 교복, 체벌을 남발하고 내신 챙기려면 알아서 들어라 식의 수업이 계속되는 학교라면 청소년의 '선택'을 받지 못할테니. 이런게 레알학교선택제이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고등학교에 진학 워너비만 남는다면, 그것도 그 나름의 파장이 있을테고.

기본소득의 목적 중 하나는 다들 알다시피 ‘강요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당. 그러니까 ‘강요된 노동을 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 아둥바둥 입시경쟁에 취업경쟁에 매달리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노동시장의 모양새도 많이 바뀔 텐데, 그렇게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정규직 취업을 하려고 학벌을 따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 압박이 약화된다면 경쟁적 교육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줄세우기 위한 경쟁, 등수를 위한 점수 매기기, 이딴 것들이 아니라 학생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학교가 취업과 입시를 위한 학원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징.

당연히 이걸 다 개드립으로 볼 수도 있당. 기본소득이 어찌어찌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청소년이 그 과정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지급 대상 연령이 0세는 커녕 18세, 19세 마냥 높아질 가능성이 크니까. 그래서 결국 기본소득이 정말로 청소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학교를 엎는 효과를 내려면,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세력화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의 김칫국 마시기는 그 목소리의 일환이당.




1 가 뭘지는 나도 모른다. 같이 얘기해보자며... 어렵다며...


2 명박교육의 기만적 고교'선택'제 같은거 말고.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정이 ‘제도’라는 말 자체에도 반발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구체적인 통계 등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것들(특히 청소년‘활동가’들이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법 제도를 통해서 보면 가정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를 알 수 있다.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1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주로 체벌을 하거나 용돈을 줄이거나 외출금지를 시키거나 물건을 압수하는 등),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사생활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당하고 있으며, 진로 결정 등에서도 강압에 노출되기 쉽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겠지만,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아나키즘은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2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액수와 비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들고, 또 자신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부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일단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가출 후의 리스크가 크게 줄 것이다. 가출 후의 일차적 생활에서가 그렇고, 이차적으로 가출로 인해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그렇다.3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에서의 투쟁4 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해서 무슨 자동으로 돈을 버는 존재로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출산율은 높아질 거 같지만, 그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나쁜 쪽으로 작용할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5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의해 기본소득을 다 쓸지도 모른다.6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뭐 아주 나쁜 건 아닐지 몰라도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투쟁이 될 것이며,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난이도 높은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아버지 부에 어머니 모자를 쓰는 부모라는 표현은 정상 가족 중심적 표현. 그렇다고 ‘보호자’ 같은 표현을 쓰는 것보다는, 그들과 청소년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친권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이 이차적 리스크 때문에 가출 또한 어느 정도 계급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4  지 금까지 아수나로에서 이야기 나온 전술만 열거한다면, 무단외박, 가출, 화장실 점거, (부모가 꽤 명망 있는 활동가인 경우) 좌파 언론에 기고 등이 있는데,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 투쟁 방식을 여러 가지로 확대시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출산율이 높아지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아직은 출산율이 좀 낮은 쪽을 지지하는데.


이런 기업의 마케팅 전략 문제는 『88만원 세대』가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안 좋은 쪽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기본소득을 수령한 아동을 납치하여 기본소득을 갈취하는 등의 범죄까지도 상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