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체벌금지, 대안, 교장, 평교사, 학생

공현 2010. 8. 2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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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이든 강제야자든 복장자유든 마찬가지인데,
그런 사안들에 대한 '정교한' 대안은 대개가 전사회적인 레벨이 되기 쉽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를 들어 "그럼 강제로 야자 안 시키고 저녁에 애들이 맘대로 놀게 두면 걔네가 결국 학원에 가거나 PC방 가서 인터넷 중독되는 거밖에 더 있냐"라는 식의 얘기라거나 등등...
강제 야자 반대 이야기를 하다보면 입시경쟁교육 얘기뿐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정책과 지역사회의 열악함까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거죠.
체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체벌을 금지해놓고 "그럼 체벌 없이 어떻게 지금처럼 학교에 애들을 잡아놓지?"라는 식으로 접근하다보면 상벌점제니 교육벌이니 퇴학이니 온갖 괴악한 방법론들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체벌금지에서 올바르고 정교한 대안이란 건, 작게는 교육제도의 변화나 교육예산의 문제, 크게는 사회적 교육의 부족함과 노동환경과 경제적 문제까지도 논의에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문 제는 그게 지극히 옳은 이야기임에도 실제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공무원 관료들이나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이게 참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건 자기들의 업무 소관을 벗어나는 거거든요. 정책 내면서 팍팍 질러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복장자유 하나 하려면 사회가 이만큼 바뀌어야 한다"라고 제안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거든요. 못하는 걸 수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문제는 정교한 대안이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그만큼을 바꿔낼 수 있는 정치력이 있냐, 또는 운동의 역량이 있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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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이야기는 일종의 '환원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엔 체벌금지든 두발자유든 개소리다! 결국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체벌이 금지가 되고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되는 것,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벌 금지의 원칙을 확인하고 공표하는 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건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지 금까지 최소한 10년이 넘게 숱하게 체벌이 문제가 되어왔고, 체벌을 자율적으로 없애고 사라지게 하겠다며 온갖 립서비스들이 나왔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교장이든 교감이든 장학사든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있더라도 굉장히 극소수였죠. 일단 "때릴 수 있다"라는 걸 전제해놓고서 "뭐 그래도 안 좋을 수 있으니까..."라는 식의 '옵션' 정도로만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장들이나 교사들이 이번에 체벌금지에 대해 '반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짜증이 나는 면이 있습니다. 마치 곽노현 교육감이 갑자기 체벌금지를 지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체벌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있어왔거든요. 심지어 교육부에서도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 체벌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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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체벌금지에 대한 평교사들의 반발과 교장들의 반발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걸 단순히 "체벌밖에 교육방식을 모르는 구닥다리 꼰대들의 생각"이라고 보면 안 돼요.

지 금 언론을 통해 밝혀진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놓은 예시안들을 보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에 교사가 생활 태도든 학습 태도든 문제가 심한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고 그 학생을 교장이 책임지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교장과 학교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방안들이 더러 있어요.
그동안은 '체벌'을 통해서 비공식적인 교사 개인의 폭력으로 학교의 질서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체벌금지 이후, 교사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던 학교가 이제 학교 차원에서 그리고 그 학교의 최고책임자인 교장 차원에서 학생 지도와 교육에 대해 책무를 지게 된 겁니다. 그동안은 문제가 생기면 체벌 교사 개인이 징계를 받고 소송을 당했는데, 이제는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게 생긴 거죠. 교장들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집단 퇴장을 하고 "체벌은 교권이다"를 울부짖는 교장들은, 뭐 물론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도 꽤나 있겠습니다만은, 자기들의 이익을 잘 알고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 일이 늘어나고 부담이 늘어나고 책임이 늘어나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니까요. 행정업무 좀 처리하고 교사들 갈구면서 군림하던 그동안의 교장들의 삶이 흔들릴 테니, 무리도 아닙니다.(모든 교장들이 이랬다는 건 아닙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는 게 충분히 '가능했던' 직위가 교장이었지요.)

반면에 평교사들의 반발은 진짜로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믿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체벌을 금지하는 게 그동안 교사들이 문제였다, 인권침해를 해온 가해자다, 라는 낙인을 찍는 거 같아서 싫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체벌이 금지된 후에도 계속해서 학생 지도와 교육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묻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체벌금지는 평교사들을 어느 정도는 우리 편으로 만들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벌을 금지한다는 건 교사 개인이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 학교가, 교육계가, 지역사회가 모두 교육에 책임을 지고 함께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설득해야 할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장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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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학생들은 뭘 어째야 하느냐- 인데.
우리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체벌금지 이후에 대응이 개인화되는 걸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체벌 금지했는데 왜 체벌하냐, 해서 교사를 교육청이나 경찰에 신고하고- 이런 방식이요. 물론 이런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나오게 할 수야 없습니다만, 최소한 청소년인권운동 차원에서 그런 전략을 취하면 안 된다는 거죠.

체 벌을 허용하는 것은 그 학교의 문제이고, 체벌이 일어나는 경우에 그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책임지라고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건 서명운동이 될 수도 있고 학내시위가 될 수도 있겠죠.
일단은 사회적으로 체벌금지가 학생들에 대한 또다른 통제(상벌점제 같은)의 고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중요할 거구요 ^^;

이 뒷부분에 학생들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부분은 같이 운동하는 다른 분들과 회의하고 토론하면서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