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어떤 운동의 윤리목록

공현 2010. 9. 12. 17:33




  중2병스러운 표현을 허용한다면, 현재 사회에 저항하고 바꾸려고 하는 운동이라는 건, '세상' 앞에 검 한 자루를 쥐고 맞서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은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은 나 자신의 일부에도 검을 들이대는 것이다. 운동은 자해이다. 이러한 자해를 견디거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운동을 오래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건 운동이 자해라는 건 평소에는 대부분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문제다. 이게 구체적인 수준으로 현실화되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이 여성주의적인 문제에 맞부딪칠 때, 비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활동가와 같이 활동을 할 때, 자신의 학벌이나 계급이 문제가 될 때 등등. 그리고 이런 자해는 운동에 필요하기 때문에 모두 다 차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운동에서의 윤리적 순결주의나 엄격주의까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슨 "니 부모가 강남에 아파트 가진 부르주아지니까 너는 더더욱 대학 진학 안 하고 노동 현장에 들어가서 노동운동을 해야 해." 같은 건 과도한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전략적, 방법적으로 필요해서 하는 선택이라면 모를까 자신이 윤리적으로 깨끗해지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자기 희생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식의 운동은 지금의 조건에서는 계속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윤리적 순결주의/엄격주의로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윤리적·정치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해'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운동이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가장 대표적 예로 학벌이라거나 성별 등등)에 휩쓸리지 않도록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 안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노인은 또 조금 예외가 있을지도), 남성적일수록, 이성애적일수록, 비장애인일수록, 학벌이 높을수록, 집에 재산이 많을수록 어느 정도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운동의 조건이다. 개개인 모두에게 항상 낮은 학벌을 택하고 집의 재산을 모두 버리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우리가 이 사회 안에서 사는 개인인 이상. 하지만 그런 자신의 존재와 행위가 정치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임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견제해야 한다.

  물론 올바른 저항적 운동은 그러한 사회적으로 왜곡된 권력관계로 개개인이 규정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를 지향한다고 해서 운동이 곧바로 그러한 권력관계로 규정되지 않는 과정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건축 과정이라면, 운동은 칼부림-철거 과정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의식적으로 그러한 권력관계에 저항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운동 또한 우리가 베고자 하는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운동하는 개인은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운동하는 우리 자신에게 서로 다른, '정치적인 윤리'를 요구한다. 운동은 자해적이다. 그러나 그 자해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