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청소년인권 입문서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공현 2010. 9. 13. 03:07


교육희망에서 원고 청탁받고 썼던 글인데요

http://news.eduhope.net/news/view.php?board=media-50&id=12317
이런 식으로 실렸네욤.

아래는 원래 썼던 원문입니다.
실린 거는 분량 관계상 좀 편집된 거 같네요.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청소년인권 입문서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나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한 4-5년 정도 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병’ 같은 게 있다.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특히 학생인권 분야에서 그런 경향이 심한데, 예컨대 “두발자유가 왜 인권인가”, “휴대전화 압수는 왜 인권침해인가” 같은 이야기들을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답하기 지긋지긋해 하고 귀찮아하는 증상을 보인다. 정작 학생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제 막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이야기는 하기 귀찮아하니, 이것 참 문제 있다. 청소년인권에 관심 좀 가지고 있고 공부 좀 해본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라면 비슷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번 체벌이 왜 인권침해인지, 같은 어찌 보면 명명백백한 것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김민아 지음. 끌레마.)라는 좀 뻔한 제목의 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 일을 하던 사람이 썼다. 책의 표제도 그렇지만 “청소년, ‘지금-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라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고만고만하게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사랑으로 지도하자는 류의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인권에 대해 발언해오고 쌓아온 우리의 이야기들이, 비록 비주류 기구이긴 하지만 정부기구에서 일하던 사람에게도 이만큼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 같은 것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1부 「이분법에 갇힌 청소년」에서는 청소년과 학생을 보는 대략적인 관점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2부 「유예된 권리, 그러나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3부「가고 싶은 학교」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인권, 학교에서의 인권을 다루었고 일부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다루고 있다. 4부 「살고 싶은 사회」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차별에 관한 사례들과 문제의식으로 채워져 있다. 체벌이나 두발자유 뿐 아니라 벌점제, 무상급식, 사생활의 자유, 교육시설과 환경, 노동인권, 학벌주의, 외모차별 등까지 청소년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인권 문제들을 폭 넓게 담으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각 챕터가 교과서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권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의 경험담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되었던 사례들이 나오고, 그 문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저자의 견해를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권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등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시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모든 챕터가 이런 구성인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Tip 본문관련 조항’에서는 그 인권 문제에 관련된 법이나 국제협약의 조항, 국제인권기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참고 자료로 보여준다. 그리고 매 챕터마다 뒤에 ‘인권의 눈으로 더 넓게 더 깊게’라는 박스 형태의 글로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나 경험담, 다른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김민아 씨가 인권교육을 다니면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그 청소년들이 인권교육 과정에서 만든 이미지들은 이 책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좋은 양념이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청소년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위적으로 우리의 어떤 의식과 태도를 바꾸자 정도의 논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예컨대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사생활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존중합시다”로 좀 약하게 결론을 맺고 있고, 학벌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마무리가 약하다. 이건 인권침해니까 하면 안 된다, 이래야 한다, 투의 이야기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도덕교과서처럼 공허한 느낌마저 준다. 마지막 챕터의 소재로 ‘삐삐 롱스타킹’을 택한 건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가정과 학교로부터 자유로운 아이인 삐삐 롱스타킹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하고 “삐삐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기를 바라본다.” 정도로 정리하는 것은 소재가 아깝다.

  하지만 딱 그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별 거부감이나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인권 문제에 대해 이제 막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이 어떤 건지 그 대략적인 관점과 내용을 알고 익히기에는 크게 빠뜨린 것 없이 만들어졌다. 인권 문제에 대해 물어보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나 청소년들에게 한 번 부담 없이 읽어보라며 내밀 수 있는 책, 그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