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08. 1. 27. 00:01

나는 조건 있는 사랑을 한다.


(2006년 7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람의 인식에 너무나도 분명한 한계가 있는 이상 여기서 ‘당신’이 대체 무엇인지를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얼굴인가. 당신의 성격인가. 돈인가. 성적인가. 능력인가. 목소리인가. 혹은….
  당신이라는 총체.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연결고리들. 그런 것들을 모두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Only God Knows”의 영역. 사랑이 지향하는 이상이 추상적인 총체에 대한 것일지라도 실제의 구체적 사랑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에 대한 모든 감정에서 마찬가지다. 문제는 누군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점. 즉, 누군가를 누군가로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특질은 어떤 것이냐는 문제. 퍼스널리티의 정의. 요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나에게 누군가가 대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식상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재산이 누군가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재산은 인간이 아니므로. 재산은 인간이 사용하는 것은 될 수 있어도 인간 그 자체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물질적으로 우선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또 재산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고유한 성격이 너무 약하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정략결혼. 그 무엇도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인간적이지 못하니까. 정도 차이라고는 해도.
  하지만 돈 같은 것처럼 명확한 경우도 드물다. 예를 들어, 성적이라거나 사회적 인망이라거나 권력이라거나 소위 '능력'. 한 인간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정도와 일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반드시 무근거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일까. 혹은 대해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보다 하나 낮은 학년의 한 여자아이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여자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고, 내가 물어본 사람은 대충 키도 크고 괜찮은 아이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사상이 어때?”라고 이어서 물은 나 자신 때문에. 그 질문을 무심코 던지고 나서 나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사상은 분명히 한 사람의 내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고, 또 그 사람의 ‘개성’에 상당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으로 통상 간주된다. 은근히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사상과 밀착된 일을 한다. 그것(청소년인권운동)을 나는 내 ‘본업’이라고까지 종종 부른다. 행동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고하는 사람으로서도, 사상은 내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아무래도 사상은 사(私)적 영역보다는 공(公)적 영역에 속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일종의 혼동일지도 모른다. 뭐, 애초에 공사를 딱 구별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까지 사상을 먼저 묻는 나의 그 태도에 나 자신이 놀라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성격은 어떤 애냐고 물었겠지.) 그것은 약간의 공허와 함께 찾아온 전율이었다. 마치 무대포 바보가 하이킹을 하겠다고 자전거를 끌고 산비탈을 올라가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쉬다가 갑자기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과 같은 느낌.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늘상 입으로만 말하던 공과 사, 일상과 운동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 바로 그때 그 질문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질문이다. 인류라는 종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한 인간을 결정짓는 요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존재를 해체하고 연기론적인 공(空)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터이다.
  흔히들 사랑할 때 조건 없는, 조건 따지지 않는 사랑을 하라고 한다. 그것은 대개 상대의 존재를 사랑하고 존재에 옵션으로 딸려 있는 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소리겠지만, 존재 자체가 모호한 판국에 “조건 없는”이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사랑할 때 조건 따지지 말라는 말은, 아마도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가슴으로 사랑하라는 말과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겠지.
  그렇게 따지면 나는 머리로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제대로 된’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 셈이다. (더 정확하게는 머리와 가슴의 경계선을 많이 무너뜨린 거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이 서툴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내 나름의 감정의 형식이 있고, 그게 틀렸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뭐, 그런 이유로, 나는 조건 있는 사랑을 한다. 이건 긴 변명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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