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얕은 관계만이 마냥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다

공현 2010. 11. 21. 10:04



- 꿈에서 옛날에 내가 사랑했었던, 그러니까, 성애의 대상으로 추구했었던 사람이 나왔다.
내용은 좀 웃겼는데, 갑자기 만나서는 "호모포비아 같은 거 있으세요?"하고 물어보더니 나를 좋아하는 게이라고 하면서 어느 남자를 소개시켜주는 내용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지금 애인도 있고 그 애인은 다자사랑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리고 처음 보는 그 사람에게 별 호감이 안 가서 거절했다.)


- 그리고 꿈에서 깼는데, 잠시 울다가 길을 걸으면서 옛날의 여러 일들을 정리해보았다....라는 내용의 꿈을 꿨다. -_-;;
꿈 속의 꿈;
실제로는 깨보니까 울긴 개뿔. 그냥 할 일을 쌓아놓고 찌뿌둥해하며 늦잠을 자고 있는 내 모습이 있었을 뿐.


- 꿈 속에서 한 분석인데도 꽤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현재 시점에서는 명백하게 더 이상 그 사람과의 어떤 성애적 관계를 기대하거나 특별한 감정을 바라는 게 아니면서도, 그 사람과의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사람에 관한 추억이 윤색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과 내가 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얕은 관계만이 마냥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다.


- 나와 그 사람은 같이 활동을 하는 사이, 그리고 서로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둘이서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을 뿐,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눈 적이 많지 않았다. 친구로서 보더라도 별로 친하거나 깊은 친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구질구질한 게 거의 없고, 윤색된 추억들 뿐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서로의 구질구질한 면이라거나 살아가는 면을 그리 많이 보여주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 관한 나의 윤색된 추억에서는 청춘의 냄새는 날지언정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윤색된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다시 만나서 친해질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같이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는 특이한 학교 선배, 조금 호감은 있는데 귀찮게 구는 사람, 뭐 그런 거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아마.)

(추신 : 아, 그런 관계가 나쁜 관계였다거나 잘못된 관계였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뒤돌아보니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도. 그런 빈 관계가 꼭 잘못일까? 나에게는 그런 관계도 소중하고 재미있고 의미있었다. 나는 순전히 내 삶에 한정해서라면, 미래의 내가 돌아보고 그 내용을 평가할 것을 가정하며 지금을 살지 않는다. 지금/그때 내가 좋으면/좋았으면 됐지 뭘.)


- 최근에 청소년운동 후원행사 HOT YOUTH(11/25) 티켓도 팔고 할 겸 예전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 몇을 만나러 다니고 연락도 하다보니까 고등학교 때 일이 자꾸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그 꿈 바로 전에도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오는 꿈을 꿨다. 그 녀석은 예전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일을 잠깐 했었는데, 그 정보랑 뒤섞여서,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 때문에 그 녀석이 숨어서 다니는 꿈이었다. 현실이 되지 않으면 좋을 암울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