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이상(理想) 없는 젊은이들에 고(告)함

공현 2008. 1. 8. 01:32
그냥 짤막하게...

2004년 여름즈음에 썼던 글인데요.

그 무렵에 나왔던 학교의 학생자치 신문, 혜윰에 기고된 글입니다.

혜윰, 은 생각하다의 고어인 혜다, 에서 나온 말로...
본래 혜염, 이 명사형인데...
혜윰이 되면 잡념이라거나 그런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본 의도는 혜염, 이었는데 실수로 혜윰이 되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혜윰, 잡념도 잡념 나름이라는 게 제작진인 신문부의 변명 (-_-)


 

낭만주의적인 경향이라거나, 운동의 단초 같은 것도 보이는 글.
 

 

 

 

 

 

이상(理想) 없는 젊은이들에 고(告)함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의 유언장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기준을 이렇게 말했다. “이상(理想)적인 경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인물에게 줄 것.” 노벨상이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상임을 생각해보면, 노벨은 문학 분야에서 인류에 공헌하는 것은,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비단 문학 분야만이 아니다. 이상(理想)이 없었다면 시민 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민주화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 역사에 생동력이 있는 것도 사람들에게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움직이는 힘은 현실과 이상의 대립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가 이거다 저거다 말이 많지만,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현실주의자만 많이 길러내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당장 현실에서 시험 보는 데에 필요한 공부만 하려하고, 또한 미래 목표도 너무나도 현실적인 학생들이 산재해 있다. 사실, 한국의 교육은 과거 “산업 일꾼” 찍어내기 교육에 근거하고 있고, 또 그 방식은 과거 독일 쪽의 “군인” 찍어내기 교육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니, 이상주의를 죽이려는 경향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 민태원 씨가 쓴 수필, 청춘예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 청춘의 꽃은 이상이요, 청춘의 정열도 이상에서 나오는 것이고, 젊음의 찬양받을 점은 그러한 이상을 품고 있단 것임을, 또 낭만, 이상이 없이는 공부든 뭐든 무의미하고 수동적이며 강박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교육 현실에 저항하면서라도 이상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이라고 해서 너무 거창한 것만 생각하진 말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꾸미겠다던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겠다는 소박해 보이는 이상도,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엔 얼마든지 훌륭한 이상일 수 있다. 이상이라 부를 수 없는 이상은 단 하나, “주어진 현실에만 잘 순응하며 사는 것”과 같은 ‘현실주의적 이상’ 뿐이다. 그런 건 아무 능동성도, 힘도 없다.

  현실을 도외시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이상이 첫째고 현실은 둘째인 삶을 살자는 것이다. 우리는 청춘이다. 공부를 해도 이상을 위해 정열적으로 하는 것이 젊음이다. 가치 있는 이상 없이 살던 젊은이들이여, 그 이상이 세계 정복이어도 좋고 이런 허황된 글 쓰는 인간을 암살하는 것이어도 좋으니, 이상을 품자. 정체되고 잘못된 현실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건 수용하자”는 식으로 살지 말고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현실에 도전하자. 그것이 개인의 진정한 개성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자타가 모두 의미 있다고 인정하는 삶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교육이 이상을 죽인다면, 그 교육에 도전하자. 현실을 바꾸는 건 바로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길 바라고, 또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