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안에 청소년의 삶은 있는가

공현 2010. 12. 21. 16:20



[22일 토론회 때 발제문]
(여기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주최로는 참여한다고 한 적 없는데 좀 착오가 있는 거;;)




셧다운제 안에 청소년의 삶은 있는가


공현(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함으로써 밤 12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들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 도입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규제의 기준 연령은 16세이다.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으나 두 정부 부처가 합의를 했고, 그냥 내버려둘 경우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는 벌써 5년도 전에 처음 그 이야기가 나왔던 제도인데, 나올 때마다 그 문제점이나 실효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어서, 특히 게임 업계의 반발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기에서 우선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했었던 이유가 청소년 집단의 반발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 부처에서든 국회에서든 셧다운제 도입과 관련해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자리가 마련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청소년들이 대체로 온라인게임을 밤 12시부터 무조건 차단시키는 것에 찬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청소년들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청소년들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일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라는 결정 속에서는 게임 업계의 사정이나 청소년선도보호정책의 가치관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청소년들의 삶과 생각은 누락되어 있었다. 청소년들의 인권과 주체성에 관한 고려는 없었다. 따라서 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래 토론회에서 발제는 주장을 전달한다기보다는 토론할 ‘꺼리’들을 발굴하고 제시하는 일이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셧다운제에 관한 명명백백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청소년들의 삶과 인권의 관점에서 셧다운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방향과 문제의식을 잡아가도록 하겠다.


청소년의 삶에서 게임이란?

  청소년의 생활에서 게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뭣 때문에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질문은 다소의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가 열린 지가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고,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 등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꽤나 오래된 일이다. 게임 과몰입은 청소년들 뿐 아니라 비청소년들의 경우에도 심심찮게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렇다. “왜 청소년들의 게임만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양적으로 청소년들에게 게임 과몰입이 통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소년들을 보는 시선의 문제일까. 혹은 둘 다일까.
  그러나 어쨌든 지금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셧다운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우선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사실 청소년기를 벗어난 지 3년도 안 된 나 또한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일단 내가 청소년기에 게임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게임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시간 관리가 용이한 놀이였던 것 같다. BB탄 총을 가지고 놀거나 모형을 조립하거나 레고를 가지고 노는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했지만, 모형이나 레고는 한 번 산 걸로 계속 놀려면 질리기 때문에 새 것을 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친구들과 같이 노는 데 적당하지 않았다.
  사실 게임과 비슷하게 재미있고 같이 놀 수 있었던 건 축구 등의 스포츠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스포츠는 대체로 (하는 시간도 그렇고 하고 난 뒤에 지쳐서 쉬는 시간도 그렇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며 공간이나 도구를 필요로 한다. 나는 시간이 있고 장비를 살 수 있고 팀 등 여건이 된다면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야구를 배우거나 해본 적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가장 간편하고 돈이 덜 드는 편이며 시간 면에서나 공간 면에서나 가장 효율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게임이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을 생각해봐도, ‘게임’이라는 분야 자체에서 매니아 파워를 발휘하며 오덕질을 하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비슷한 이유로 게임을 즐기고 그것을 공통의 놀이 코드이자 문화 코드로 가지고 있었다.
  여가 시간에 할 놀이를 고르는 것 하나에 뭐 그렇게 시간과 비용과 조건을 따지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긴 공부 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또 지역 사회에서 적절한 문화 시설 등도 가지지 못한 상황, 그렇다고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이 청소년들의 상황이다.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은 차라리 인권침해라고 할 만하다. UN아동권리협약에서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하며 청소년들의 놀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 속에서 게임을 규제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특히 게임의 내용도 아니고 게임을 하는 시간을 규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게임과 컨텐츠의 내용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고 대안적인 좋은 놀이로서 게임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게임을 ‘상품’으로만 보고 청소년들이 밤에 온라인게임을 하는 것만 규제하겠다는 것은 청소년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시간을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세세하게 통제하는 것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말이다.


‘과몰입’ 혹은 ‘중독’의 기준은 무엇인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에서 가장 큰 전제는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가? 아니, 그 이전에 누군가가 게임 과몰입인지 중독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정확히 뭘까? 국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그 기준은 ‘하루에 3시간 이상씩 한달 이상 게임을 한 경우’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 하루에 3시간씩 게임을 하는 것은 적절한 여가 선용 수준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 과몰입이나 중독은 약물 중독 등과는 다르게 그 판단에 더 많은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어떤 활동을 얼마만큼 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스케쥴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냐에 따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칠 수 있는 게임 시간의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잠자는 것 밥 먹는 것도 잊고 게임에만 몰두하거나, 현실과 게임 설정을 심각하게 혼동하는 등의 경우에는 문제가 비교적 명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현재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 꼭 그런 것들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게임 과몰입, 중독을 판별하는 기준은 적절한가? 아니면 좀 더 분명하고 문제적 병리적인 경우만 다루어야 하지는 않을까? 게임 과몰입, 중독은 과연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소설책을 하루에 5시간씩 읽는다고 해서 ‘소설 과몰입’, ‘독서 중독’이라고 하며 치료하거나 고치려 들지는 않지 않는데 게임과 소설 사이의 차이는 뭘까? 혹시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의 경우에 게임 과몰입, 중독을 이야기하는 기준이나 정도가 좀 다르지는 않나?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게임 과물입, 중독으로 인한 사건과 사고는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비청소년들을 위한 게임 과몰입, 중독에 대한 대책은 충분하긴 한 건가? 청소년 게임 과몰입을 말하면서 셧다운제를 도입하려고 드는 속내에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놀이의 일종인 게임을 무슨 마약 보듯이 하는 태도, 청소년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등등이 전혀 없는 것인가?


어른들의 이해관계, 청소년들의 이해관계

  지금까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비롯해서 게임에 대한 규제에서는 부모/보호자 집단, 청소년보호론자들, 게임 업계의 이해관계들만이 반영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정작 이 문제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외면되어 왔다. 그 결과가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그리고 게임 과몰입과 중독에 대한 청소년 당사자들의 이야기나 비판적 검토 없이 어른들의 일방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셧다운제이다.
  게임업계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반대하고 있고, 청소년들도 대부분 이 셧다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게임업계는 게임에 대한 규제를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때문에 게임업계는 게임 이용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는 일괄적 규제는 반대하면서도, 부모/보호자들에게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내용의 ‘자율규제’로 돈을 내주는 부모/보호자들과 협상하려고 하고 있다. “당신의 자녀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지는 않는지 과도하게 하지는 않는지 당신이 감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자녀가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경제적 권리를 많이 가지지 못한 현실은 여기에서도 반영된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셧다운제를 국가가 도입하든 부모/보호자가 도입하든 큰 차이가 없다. 청소년보호론을 내세우며 이번에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역시 그 속에 부모/보호자가 청소년들의 게임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결국 청소년 당사자를 둘러싼 정책이, 청소년의 의견과 인격은 전혀 존중하지 않은 채 어른들의 입장 속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던진 질문들은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청소년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고려하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꼭 고려되어야 할 질문들 중 일부이다. 청소년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서는 어떤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