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왜 사서 고생을 하나? :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

공현 2011. 1. 14. 13:49

참교육실천대회 학생인권 분과에 발표한 원고입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나?

: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


  2010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다. 그동안 계속 좀 더 나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기분이 어땠냐고 물으면, 글쎄, 좀 얼떨떨했달까 실감이 안 났달까.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계속해온 다른 사람들 역시 대개는 그렇게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순식간에 통과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과정에서 여러 방면으로 학생들의 참여와 의견 반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2009년 9월부터 여기저기로 뛰어다녔고, 자문위원회 역시 제한적으로라도 학교 현장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충분한 교감과 소통 없이 제정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많은 혼선을 빚었다. 애초부터 학생인권조례에 소극적이었던 교사운동의 비협조적 태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서 “두발자유조례”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사립학교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거나 벌금을 내면 학생인권조례 적용을 피할 수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학교 교장, 교사들이 치는 ‘뻥’ 때문에 다양한 루머들이 퍼지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해선 안 된다고 하자 “휴대전화는 전부 수거하지만 교사의 허락을 받고 사용할 수 있다.”고 하거나, 두발 길이를 규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하자 “앞머리 3cm 규정을 눈썹에 안 닿게 한다는 규정으로” 바꾸는 식으로 이상한 꼼수를 부리는 학교들도 나타났고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학교들도 많았다.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물론 그 중 몇몇은 시간을 두고 홍보하고 현장에서 싸우고 정착시킴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 또, 그 중에는 학교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혼란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 어떤 잘못과 혼란들은 예방하거나 더 잘 넘어설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육청에 의해 뚝딱뚝딱 만들어지지 않고, 지역사회의 운동들 그리고 학생, 교사, 학부모의 교육운동과 함께 힘을 모아서 만들어졌다면 말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무상급식 운동에 여러 단체들이 보여준 만큼 관심을 받았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교육청에서 뚝딱뚝딱 만든 학생인권조례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서울의 여러 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기로 했다. 더 나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조례 제정 과정에서 수만 명을 만나고 설득하고 학생인권조례의 내용들을 홍보하기 위해.
  사실 주민발의 운동을 처음 제안한 사람들 중에는, 급식조례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학생인권조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주민발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낙관론을 가진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아주 힘들 거라는 것은 시작하기 전부터도 분명해보였다. 이미 경기도에서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고 참여하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대단히 무관심한 시민 사회(라고 쓰고 ‘어른 사회’라고 읽는다.)의 반응을 보지 않았는가?
  무상급식은 청소년들, 아이들을 어른들이 어떻게 기를 것이냐 하는 논의이다. 무상급식의 주인은 마치 아이들, 청소년들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주인은 부모들, 어른들이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빨갱이 정책”이라며 소리 지르는 소수의 분들을 제외한다면 어른들에게 무상급식 문제는 전혀 ‘위험한’ 논의가 아니며,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예산의 우선순위 등을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권리로서의 복지를 보장하자는 학생인권조례는, 무상급식을 찬성하고 이른바 ‘진보교육감’을 지지한다는 어른들에게도 ‘위험한’, ‘선뜻 동의되지 않는’ 의제이다. 그리고 교사들의 경우에 그런 불균형은 더 심할 것이 뻔했다. 때문에, 학생들 당사자는 정작 참여하기 어려운 주민발의 운동의 특성상 (주민발의 서명은 만19세 이상, 선거권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8월말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에 참여한 여러 단체들 여러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100인위원회,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서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안이 10월 말에 완성됐다. 그리고 10월 말부터 주민발의 신고를 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제 2011년 1월, 주민발의 운동의 기간인 6개월 중 1/3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주민발의 청구인은 겨우 목표의 1/10 수준이다. 처음의 걱정이 적중한 것이다.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언론 보도

  그런 서명 상황에는 아마도 2010년 2학기에 서울 체벌 금지 이후에 여러 언론들에서 선정적인 보도를 반복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 금지를 선언한 후, 여러 언론들에서는 학생에 의한 교사 폭행 사건들을 연이어 보도하며 이것이 마치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런 사건들 중 대부분은 체벌이 금지된 서울이 아니라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지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체벌 금지가 시행된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 보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년 전 사건, 몇 달 전 사건들까지 가리지 않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그 사건들의 맥락과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그것을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나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연관지었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려고 하는 것이 학교를 붕괴시키고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식의 논조를 유지했다. 사건 자체에 대해 성실하게 취재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고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런 보도 태도는 무책임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고 학교의 규율에,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는 ‘학교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1990년대부터 나온 이야기였다. 교사들 역시 그런 사건들이 체벌 금지 조치 이전부터도 계속 있어왔던 문제이며, 체벌 금지 조치나 학생인권 보장이 그 원인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교사들은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체벌까지, 두발규제까지 없어지면 더 힘들지 않을까?” 학교 붕괴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학생들을 억누르고 가두는 규율이 약화되거나 민주화되면, 교사들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언론들에 보도되는 선정적인 사건들은 그런 공포를 더욱 부채질한다.
  교사가 아닌 어른들의 경우에도 교사들과 다르지 않거나 아니면 더 심하다. “요즘애들론”은 ‘학교 붕괴’의 문제를 학생 개개인의 인성의 문제로 돌려버리거나 학생인권 보장의 부작용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인과관계를 잘못 짚는 오류를 범한다. 언론은 최근의 학생의 교사 폭행 보도라거나 ‘무서운 10대’와 같은 이름 붙이기로 이를 적극적으로 확대재생산한다. 2010년 하반기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시기였다.
  나를 포함해서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반은 농담으로 그렇게 투덜거리곤 한다. 곽노현은 대체 왜 체벌 금지를 먼저 그렇게 확 질렀느냐고. 언론에서 꼬투리 잡기도 딱 좋고, 거기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체벌 외에 여러 인권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다가 체벌 대신 도입된 벌점제와 같은 제도들이 좋은 게 아니기 때문에 원성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방법론적인 세련되지 못함이라거나 문제들은 교사들이든 학생들이든 충분히 가질 만한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체벌 금지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체벌을 반대한다고 수년 전부터 입장을 밝혀온 교육운동 진영이 체벌 금지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변명해주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언론의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보도를 옹호해주거나, 소수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이 학생인권 전반을 후퇴시킬 근거로 제시되는 것을 정당화해주지도 않는다. 몇몇 교사의 성폭행이나 수만명 교사들의 체벌이 교사 전체의 인권을 후퇴시킬 사유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잘 안 되는 것이야말로 필요성의 증거

  이제 2011년. 어떻게든 서명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각 지역과 운동 조직들을 한 번 더 챙기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해서 서명을 모으는 등 여러 방법들을 검토하고 논의하고 있다. 물론 저조한 조직 상태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주민발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렵다. 주민발의가 크게 실패할 경우에 학생인권조례의 흐름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생각해보면 주변 상황에 대해서도 투덜거릴 만한 꺼리도 없진 않다. 학생들은 스스로 참여할 수 없는 주민발의 운동 자체에 대한 불만도 크고, 또 학생인권법이나 학생인권조례 운동 등을 시작했던 것도 이제 5년째인데 그 사이에도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교사운동, 시민운동의 학생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도 불만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전교조의 음모라고 떠들더니 이제는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보도만 일삼는 언론들의 태도도 혈압을 올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서울시의회에서 통과시켜봤자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는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이 교사들을 학부모들을 학생들을 바꾸는 과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을 들고 수많은 시민들을 만나서 학생인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마무리 될 때까지 앞으로 4개월이 남았다. 그 4개월이 더 알찬 운동의 시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분들의 도움과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