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욕망은 분석보다 실천적이다

공현 2011. 2. 3. 01:44



욕망은 분석보다 실천적이다


1
내가 욕망은 분석보다 실천적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반지성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반지성적"이라기보다는 "반정답적"이라고 변명해보겠다. 여기에서 '욕망'은 일종의 상대주의를 의미하는 비유라고 해도 좋다.


2
그렇다, 문제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정답'을 바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서 평한다. 양비양시론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여하튼 양비양시론이 아니더라도 어떤 문제를 특정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달린 특정한 입장에서 파악하고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여러 입장에서 - 혹은 아무 입장도 없이 - 평하고 그것을 어떤 퀴즈나 문제풀이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런 경향은 곧잘 비대칭적으로 나타난다. 기존 사회에서 승인받은 욕망(예컨대 돈을 버는 것, 출세하는 것, 학벌을 획득하는 것 등)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대하고 또 그러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사회에 대해 저항적인 의미를 가진 욕망으로부터 사람들을 차단시키고 '한 걸음 떨어지게' 만들 때, 그러한 '정답적 태도'는 그 쓸모를 보여주곤 한다. "그건 너무 편향되어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게 전부 옳지는 않잖아?" 나는 도대체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교사가 편향적이라는 욕을 먹는 건 들어본 적 있어도, 부동산이나 해서 돈 벌라는 교사가 편향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아무리 설문문항 자체의 중립성을 달성하더라도, 객관적인 여론조사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흉악 범죄가 발생한 직후에 사형제에 관한 설문을 하는 것은 객관적인가? 수많은 신문과 방송들이 체벌금지가 교권을 붕괴시킨다는 식의 보도를 한 직후에 체벌금지에 관한 설문을 하는 것은 객관적인가?


문제를 풀 때는 사회적 배경과 그 문제의 선택지 속에
이미 답이 강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3
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객관화라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험을 객관화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경험을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한 걸음 물러나서 평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단 '~할 줄 알아야 한다'(능력)라는 말은, '객관화해야 한다'라는 것과는 그 의미 자체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4
그런 것들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적"이라는 데 있다. 모든 분석이 실천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욕망과 함께하는 분석만이 실천적이다. 내가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만이 나를 행동하고 실천하게 만든다. 어떤 일에 대해 분석하는 것 그 자체는 사람을 관찰자로 만든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욕망하는가, 그 욕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 물론 이런 질문과 반성은 중요하지만, 어쨌건 욕망이 없어선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차라리 노골적으로 이기적인 태도가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보다 건강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같이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공부하고 토론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직접 조직하고 홍보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자기가 어떤 것을 바라고 있고 어떤 것이 불만인지를 아는 것, 그것이 그럴듯해 보이는 정교한 논리들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5
나(그리고 나와 같은 이들)에게 지적 편향성이나 주장의 당파성을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심지어 나는 때로는 그런 지적을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싶다, 어떤 세상에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어떤 공부를 하는 것 역시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모를까, 그 인용 자체의 편향성 등을 지적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학자이거나 연구자라면 혹시 또 모르겠지만.

이미 나에게 방향성은 주어져 있다 ― 혹은 나는 이미 내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혹 어떤 이가 어떤 것을 공부하거나 분석함으로써 그 방향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얼마나 얄팍하고 세상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 스스로를 놓는 데 익숙한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사고방식일 뿐이다. 분석은 내가 걸어가는 길이나 걷는 방식 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내가 걸어가는 것 자체 혹은 내가 걸어가는 방향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은 내 욕망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