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살

공현 2011. 2. 4. 01:49


예전에 한 두달 전에 전쟁없는세상에서 써달라고 해서 쓴 글.
거기 소식지가 나온 후에 뒤늦게 올립니다.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살




  내 나이도 어느새 20대 중반. 스물하고도 세살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군대는 언제 가느냐 혹은 어떻게 하느냐 라고 묻곤 한다. 심지어 청소년인권에 관한 강연을 나가도 그런 질문이 꼭 한 번씩 들어온다. 좀 떨떠름해하면서도 아마도 병역거부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반응은 삼분된다. “용감하다”, “대단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징역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하며 걱정하고 다른 대체복무를 찾아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부류는 병역거부가 뭔지도 잘 몰라서 “군대 안 갈 수도 있어요?”라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들(주로 군대 문제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라거나)이다.


병역거부의 불이익?

  나는 용감하다고 말하는 분들이나 걱정하는 분들에게는 “군대에서 2년이나 감옥에서 1년 6개월이나… 징역이나 징병이나 뭐 비슷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농담이나 위안이 아니라 진담이다. 병역거부가 나한테 그렇게 큰 불이익이나 피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징역에는 휴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전과자가 된다는 게 문제일 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뭐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국가공무원이라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병역거부 경력이 그렇게 결격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병역 미필의 전과자는 기피할 테니 좀 어려울 듯한데,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그런 문제에 관해서 운동을 미리미리 해둬서 좀 바꿔둬야 할지 어떨지 고민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운동 같은 것에 좀 짬이 나면 해볼 텐데. 모든 병역거부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처럼 병역거부가 그 이후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설계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병역거부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약간은 가벼운 문제로 느껴진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반대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의 신념과 생각대로 병역거부를 하고 징역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그 이후에 오히려 걱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가 일종의 훈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든 다른 사회운동을 하든, 아니면 작가가 되든, 병역거부라는 나의 부가속성을 ‘팔고’ 싶은 욕망이 계속 따라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한 내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부모님이 (이미 설득하는 건 포기하심) “그런 게 니가 하는 운동 뭐 그런 거에서는 명예로운 일이니?”라고 물어보셨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것이 특별하게 명예로운 일로 대접받지는 않는 운동이 건강한 운동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과자라고 하니까 생각난 게, 어차피 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관련해서 광화문 거리 인도에서 3분간 멈춰있는 플래시몹을 하다가 청소년이 체포되는 것에 저항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일단 경찰의 체포가 부적법했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도 유죄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그러면 나는 어차피 전과자다. 이명박 정부에서 인권운동한다는 게 다 이렇지 뭐 싶기도 하고, 어차피 빨간 줄 그은 거 병역거부도 좀 부담이 적겠군 싶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려나?



인생의 터닝포인트

  쨌든 요즘은 병역거부 문제를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병역거부가 그냥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대학 생계 3가지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하고 병역거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와 대학은 졸업하고 병역거부를 하라는 부모 사이의 갈등이고, 좀 더 자세하게 보면 대학과 군대에 매여서 단체 상근이든 뭐든 자유롭게 하지도 못하고 독자적으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하고 있는 꼬인 상황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도 병역거부는 받아들이신다니 좋은 부모님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역거부는 네 뜻대로 하게 해줬으니 대학은 우리 뜻대로”라는 식으로 내 삶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만 하다. 대학과 군대를 따로 떼어놓고 풀 수 있으면 더 쉬우련만, 이미 나이가 차버린 나는 대학을 그만두거나 졸업하는 즉시 병역거부의 결단을 내려야 하니까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당장 뭔가 경제력이 있으면 부모님과 싸워서라도 마음대로 해버릴 텐데 경제력이 생기려면 대학과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니 아놔 이거 어쩌란 건지.

  올해 들어서는 돈도 없고 갑갑한 마음에 “아 씨발 답이 안 보이는데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두 번 자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살면서 못 먹어본 게 많고 애인도 있고 청소년운동에서도 할 일이 많고 등등의 변명을 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병역거부를 대체 ‘언제’ 할 것이고 대학은 어떻게 하고 할 것이냐 등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 살이고,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에야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런 게 좀 구체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래서 병역거부는 내 인생 설계에서 일종의 터닝포인트로 설정되어 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