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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교육과학기술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공현 2011. 2. 22. 17:48
교육과학기술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수신 :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참조 :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생활문화팀
제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표자  김석민 070-4228-1908
         주  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2가 57-4 2층


교육과학기술부 공고 제2011-36호에 의해 입법예고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밝힙니다.

1. 추진 절차에서 청소년을 배제

초 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많은 내용을 검토하여 결정되어야 합니다. 특히 이번 시행령은 그 내용이 학생들의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2회 학술 토론회와 단 한 차례의 협의회를 거쳤을 뿐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도 청소년 또는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사람을 초대하거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전혀 없습니다.
한국이 비준한 국제협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제12조에서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 “당사국은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법적․행정적 절차를 시행함에 있어 아동이 직접, 또는 대리인이나 적절한 기관을 통해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국내법 준수의 범위 안에서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명시하여 청소년들이 자신과 관련된 정책에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교육과학기술부의 시행령 개정안 추진은 그 과정에서 이를 위반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2. 모호하고 포괄적인 권리 제한을 가능하게 함

헌 법, 유엔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등은 학교교육을 통해서도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특히 학교의 규칙이 학생의 존엄을 침해해서는 안 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행령 개정안 제31조의5 2항을 보면, 학칙에 의해 학생의 권리를 별다른 한계 없이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제한의 기준을 △교원의 교육․연구활동 보호 △학생의 학습활동 보호 △학내 질서 유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은 너무나 모호하여 학생의 권리가 자의적으로 침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권의 제한은 오직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그 범위와 요건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권리를 조화롭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법률로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의 내용을 명시하고, 그 권리가 충돌하지 않게 잘 행사될 수 있는 민주적 방법과 절차를 마련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지금의 개정안과 같이 시행령을 통해서 학칙에 의해 학생의 권리를 포괄적,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학칙을 통해 학생들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법령으로 보장하는 셈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제28조를 통해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 협약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번 조치는 자칫 교육과학기술부 및 교육청이 해야 할 이러한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시행령 개정안에서 학칙의 제․개정시 학생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의견 수렴의 방식을 학칙에 따라 규정할 수 있도록 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형식적으로만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투표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떻게 해도 좋다.”라는 게 민주주의일 수는 없습니다. 공개투표나 재산에 따라 표를 차등해서 가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투표 방식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의견 반영의 원칙과 방법 등이 적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학교 안에서는 학칙으로 알아서 하라고 할 경우에 그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의견을 듣도록 하되 그 방법을 학칙에 위임한 것은 학교의 현실을 잘 모르는 조치입니다.


3. 학생에 대한 폭력 합법화

시 행령 개정안은 도구나 신체를 이용하여 때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한 발 나아간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내용이 ‘도구나 신체를 이용하여 때리는 것이 아닌 체벌’을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때리는 체벌이 아닌 이른바 ‘기합’, ‘얼차려’를 주는 체벌이 더 안전하거나 인권적이거나 교육적이라는 어떠한 근거가 있습니까? 이미 2007년 부산, 2010년 김포 등지에서 이른바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났다’의 체벌을 당하다가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체벌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입니다. 그동안 어떤 형태의 체벌이든 △학생들에게 상대방을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는 방식을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비교육적 반인권적이고 △학생들에게 분노, 자책감, 굴욕감, 자존감의 상실 등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 행동을 수정하는 효과는 거의 없으며 △학생과 교사 사이의 신뢰와 소통을 파괴한다는 문제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습니다. 도구나 신체를 이용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체벌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학생에게 미치는 효과는 같습니다. 이를 굳이 나눈 것은 체벌을 당하는 학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때리느냐’, ‘말로 명령하느냐’ 하는 교사 입장에서의 차이일 뿐입니다.
유엔고문방지위원회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상대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고문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역시 사라져야 할 체벌의 한 형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체벌 금지 정책은 조금씩 학교 현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사회 전반의 폭력 문화를 없애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습니다.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덜 폭력적이고 대안적인 교육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체벌을 허용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국제인권기구에 반복적으로 체벌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고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체벌을 적극 조장하는 듯한 발표를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입니다. 모든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밖에 출석정지 제도의 도입 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을 그만두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기 바랍니다.


2011년 2월 16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