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3. 11. 06:55


청소년운동의 상수(常數)



청소년운동을 함수의 관계식, 쉽게 말해서 수식이라고 생각해보자. x+3-a=9y-2 같은 식 말이다. 이런 수식 안에는 보통 '변수'와 '상수'가 있기 마련이다. 변수는 말 그대로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변하는 수이다. 반면 상수는 변하지 않는 수, 그 내용이 정해져 있어서 항상 변하지 않는 수이다. 상수는 변수의 값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예컨대 x+1=5라는 간단한 식에서, 1과 5라는 상수는 x의 값을 4, 1개로 결정짓는다. x+2=y와 같은 식에서는, 2라는 상수는 x가 1일 때는 y는 3 하는 식으로 다른 두 변수가 어떤 수들이 될지를 결정짓는다.

이런 식으로 비유해보자면, 청소년운동은 상수가 극단적으로 적은 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운동이 안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상수가 적으니, 당연히 다른 변수들의 값을 가늠해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2005년, 2008년과 같은 폭발적인 대중의 힘을 보여줄 때가 있는가 하면 일제고사 투쟁처럼 수십명 수백명 긁어모으기도 어려울 때도 있다. 지금 아수나로가 뭐 전국적으로 가장 활동이 활발한 청소년단체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내년에 공중분해되어서 망해버려도 이상할 게 없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운동, 그게 지금의 청소년운동인 것이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2004~2005년 무렵에는 그런 것이 한층 더해서, 지금보다 더 불안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는 운동이 청소년운동이었다. 내 전 시대의 사람들은 그게 더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청소년운동이 어떻게든 상수를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는 수식이 되게 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내가 청소년운동에서 하나의 상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할지, 얼마만큼 왔는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건지,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반면 거기에 나침반이 하나 있다면, 아니 최소한 섬이라도 하나 있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최소한 어디로 움직이고 있기는 한 건지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운동에는 이미 몇 개의 상수가 있다. 예컨대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근대 자본주의와 아동인권』을 쓴 배경내가 있고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시절, 노컷운동 시절,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에 몇몇 활동가들이 만들어놓은 자료들이 있다. 교육운동 쪽에서 만들어놓은 교육에 관한 여러 정책이나 주장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면에서의 상수일 뿐이다. 청소년운동 안에 들어와서 실제로 활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수가 될 존재가 필요하다. 그 상수를 수용하든 참고하든 복제하든 미워하든 적대하든 극복하고자 하든, 청소년운동의 상수라고 할 만한 운동적인 실체 ― 어떤 사람이나 조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청소년운동에서 고정불변의 상수, 언제나 특정한 청소년운동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물론 나도 인간인 이상, 완전한 상수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그렇게 되고자 애썼다. 불변의 지표가 되는 것, 가변적인 것들을 재고 고정시키는 기준이 되는 것, 그런 요소가 되려고 했다. 어떤 정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다. 청소년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 역시 그 속에는 그런 욕망이 있었으리라.


청소년운동의 상수가 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가 이야기하고 만들어온 청소년운동에 대해서, 동의하며 계승하든, 부정하며 극복하든, 요컨대 나 자신이 이후에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되는 거이다. 설령 "그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라는 말을 하더라도 어쨌건 완전히 없는 것 취급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은 나를 '이항'으로 정리해버리고 싶다면 어쨌건 나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만들어온 청소년운동'이 곧 아수나로는 아니다. 지금까지 아수나로 활동의 일부, 그리고 아수나로를 벗어난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운동 중에 외로움이나 피로감을 짙게 느끼게 되는 때는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청소년운동의 상수가 되기 위해 -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요소가 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나와 같이 활동한다는 사람들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 느껴질 때. 아무도 이 운동의 상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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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ㅇ

    2011.03.11 09:57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도 한때는 그러고 싶었던 꿈이 있었죠. 외롭죠. 제가 외로움에 내성이 약하단걸 잘알았고, 그럼에도 5년이란 시간을 버텼던건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 쾌활함 탓이었던것 같아요. 하차하게된 동기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좀더 지속가능해지고 싶었달까요. 운동이 젊은 혈기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되게하려면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내면적 위기감도 들었구요. 게다가 전 동성애자라서 더 그런면도 있었죠. 이 글에 공감. 좀 울쩍하기도 함.

    2011.03.11 14: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생계 문제는 뭐 계속 고민이긴 합니다만...
      운동 내적인 문제로만 이야기하면,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결국 좀 더 많은 상수들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10만 상수 양성..(응?)

      2011.03.26 09:28 신고 [ ADDR : EDIT/ DEL ]
    • 느낀건데요. 시혜적 운동은 한계가 분명해요. 예컨데 청소년 집회에 나오면 두발자유가 된다라는 메세지 전달은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상수로서는 부족한거 같아요. 집회현장을 떠나면 상수가 아니게 될거니까요. 공현님의 조직화에 대한 글도 읽었는데, 운동가들 중에 주체적인 사람 잘 없어요 그렇게 보이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공현님이나 이를테면 저같은 사람이 이상한거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거도 아닌거 같아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보면 더 많은걸 느껴요. 성인 성소수자들관 어울리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재미없어서 ㅎ /자발적 동기부여가 상수를 탄생시키는거 같아요. 애들 pc방에서 누가 상주는것도 아니고 어쩌면 게임 때문에 혼도 나는데. 밤을 세워서라도 하잖아요? 누가 시켜서, 계몽시켜선 상수를 만들 수도 없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했어요. 계몽이 상수 탄생을 억압한다고까지 느껴요.

      2011.03.30 10:0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