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6. 2. 14:48

으아 평소에는 쓴 글들을 꼬박꼬박 블로그/카페에 올리는데,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하면서는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못했네요

교육공동체 벗에서 내는 '오늘의 교육'에 지난 3월에 써서 4월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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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는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다

- 학생인권 제도화와 학생들의 저항


윤종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언론 《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당사자로서 시작해서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코가 꿰어서 계속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시대?

  「문명」이라는 게임을 해보면 “황금시대”라는 게임 개념이 있다. 문명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건데, 황금시대가 적용될 때는 자원 생산도 늘어나고, 사람들의 행복도도 올라가고, 여하튼 여러 가지 혜택이 있고 뭘 해도 잘 된다. 2010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1년 2월 현재, 서울에서는 한창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강원, 전북 등지에서도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고 있고, 경남, 충남 등 여러 지역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에 열린 교사 집담회의 제목은 “학생인권조례의 시대, 교사가 말하다”였다. 학생인권조례 시대. 이 말은 작년 11월 학생의 날 토론회에서도 제목을 장식했던 표현이었다. 문명의 황금시대가 열리듯, 정말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의 시대가 열린 걸까?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은 우리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든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은 교사조직을 비롯하여 많은 ‘어른 단체’들의 비협조와 무관심 속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에서도 학교 현장에서의 왜곡과 거부 사례들이 알려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찬성을 표해온 집단들도 학생인권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실천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 시대”가 곧 “학생인권 시대”인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담론에는 일종의 ‘거품’이 있다. 거리 나가서 시민들을 만나며 홍보를 하다보면, “학생인권? 그거 이미 다 된 거 아냐?”, “아직도 학교에서 야자를 강제로 시킨다구요?” 같은 반응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미 학생들의 인권은 대체로 잘 보장되고 있지 않냐, 오히려 너무 많이 보장되어서 탈 아니냐, 그런 생각이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운동 사회 안에서도 다른 의미에서 거품이 존재한다. 원래 진보․개혁․민주적 운동 사회 안에서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면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그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는 주제, 그런 것들 중 하나가 학생인권이었다. 학생인권에 관해 실천은 없이 서로 말만 무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기사 최근에는 체벌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진보신당 대의원에 당선되기도 했고, 소위 스스로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학생인권에는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오늘의 교육」 창간준비호에 학생인권을 주제로 글을 쓴 배이상헌 씨, 정용주 씨, 박복선 씨 등은 학교 현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학생인권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온 분들이다. 창간준비호에 실린 글들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의미와 벌점제도 등 이후의 쟁점과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의 실천 등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내공’을 지닌 분들이 운동 내에서나 교사 집단 내에서나 소수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하게 된 하나의 맥락이자 배경인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보태어 보고자 한다.


저항과 행동이 제도를 낳기까지

  배이상헌 씨의 글 중 간단하게 학생인권운동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을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운동의 의제로 떠오른 것은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은 학생인권 의제들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는 시기였다. 2000년의 두발규제 폐지 운동을 비롯하여 0교시,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문제, NEIS와 정보인권, 학생회 법제화(혹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강의석 씨가 제기한 학교내 종교자유 등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생인권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5년, 학생들 1000여명이 내신등급제 및 입시경쟁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온라인서명운동과 거리 집회 등이 연달아 열리면서 학생인권의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후 2005~2006년에 연달아서 송파공고와 풍생고, 양동중, 청명고 등에서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학내시위가 일어났다. 동성고에서는 오병헌 씨가 두발자유, 사상의 자유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했다. 이런 저항들 역시 해당 학교의 규칙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학생인권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송파공고에서의 종이비행기 시위가 그 인상적인 광경으로 많이 회자되었고, 양동중에서의 시위는 최초로 중학교에서 두발자유 학내시위가 일어났다는 것이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도 수많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서명운동을 하고 전단지를 배포하며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행동을 해왔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쏟아져 나오자 학생인권 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법이자 운동의 목표로 학생인권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는 2005년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계속 이어지자 두발자유화 법안을 만드는 것을 당에 건의했다고 한다. 당 정책실에서는 두발자유 뿐 아니라 학생인권의 여러 문제들이 이슈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학생들의 인권 전반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여기에 “학생인권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최순영 의원을 대표로 하여 발의했다.

  학생인권법은 교육운동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모여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지지를 표명하고, 또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서명을 모아오고, 청소년인권단체들이 전국 순회 행진,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학생인권 보장 요구 집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 속에서 국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교총과 한나라당 등의 반발로 대부분의 구체적 내용이 삭제되고, 초중등교육법 18조의4 학생인권 보장 조항이 신설되는 정도의 성과를 남겼다.

  한편 광주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역시 계속해서 학생인권의 의제들이 제기된 2000년대 초반의 상황 속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5년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록 당시 광주에서는 교사들이나 교육청의 반대로 제정이 무산되었지만, 광주의 이 시도는 몇 년 후 교육감 주민 직선의 시대를 맞이하며 다시 쟁점이 될 “학생인권조례”의 첫 탄생이라는 의의가 있었다.

  사실 조례나 법률로 학생인권을 보장한다는 학생인권 제도화의 발상 자체가 2005년 2006년을 거치며 생겨난 것이었다. 학생회 법제화라면 몰라도, 두발자유화나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의 내용을 법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학생인권운동의 주체들이 별로 고려해본 적이 없었던 방법이었다. 이는 정당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안은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운동의 주체들 사이에서는 “학교는 학생의 두발을 규제할 수 없다”와 같은 내용의 법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도 약간 있었다.)

  2005~2006년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통해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학생인권운동의 하나의 목표로 설정되었다. 동시에 교육운동 역시 이를 교육운동의 의제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2008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민주․진보교육감 후보들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2008년 진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내시위와 UCC 동영상을 통한 학내 인권 현실에 대한 폭로가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용마고에서 학생들이 0교시 반대, 두발자유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다가 학교에 의해 제지당하자 이에 맞서 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던 사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2008년 촛불집회에 나서며 정치적 사회적 주체로 주목을 받은 청소년들의 힘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학교에 의해 제지당했던 송곡고 김인식 씨의 사례 등이 학생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들었다. 2007년 옥동중, 신정중에서 하루 동안 연달아 일어났던 두발자유 학내시위를 학교에서 탄압한 것에 대해,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집회의 자유 침해로 인정하고 개선을 권고하면서 ‘집회의 자유’도 학생인권의 쟁점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학생인권의 시대를 위해

  제도는 운동의 성과이자 목표가 되어주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운동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면 오히려 학생들이 조례에 의존해서 인권침해를 ‘신고’만 하고 끝나지 않겠냐는 우려의 시선이 학생인권운동 내부에 있다. 학생인권조례만 제정된다고 해서 학교 현장이 바뀔 리는 없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현실은 아주 조금밖에 개선하지 못하면서 학생인권 담론의 ‘거품’만 더 키우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굳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과 연관 지어서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업적이나,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거리에서의 작지만 꾸준한 저항과 직접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겨우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는 2010년 12월, 학생들이 연달아서 학내시위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경기도 각 학교들은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한 과정을 통해 학칙을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소사고를 포함하여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형식적으로만 거쳤고,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에 학생들을 포함시키기는 했으나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교사 등에 동조하는 학생들을 참여시키곤 했다. 소사고 역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거쳤으나,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할 우려가 높은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막고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를 공개하고 학생들의 참관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의 학부모, 학교장 등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이에 학생들은 참관을 허용하라고 요구하는 학내시위를 아침 시간에 2차례 이상 벌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생 대표들 역시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었으며 학생들은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 회의 참관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꾸준한 행동 덕에 소사고의 개정 학칙에는 학생들의 의견이 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었다. 시위를 비롯하여 일련의 행동들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스스로 학교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 어떻게 정착될 수 있는지, 학생인권이 어떻게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해온 사람들 사이에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소사고의 사례가 제시해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학생인권조례가 되어야만,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이 계속되어야만, 학생인권의 시대는 열릴 수 있다. 과잉 담론화된 학생인권 문제를, 담론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한 동력은 결국 학생들에게 있다. 경기도․서울에서의 학생인권조례와 서울 체벌금지 조치 이후 교육계 등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는 반응들은, 역설적으로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을 비롯해서 ‘어른들’의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의 주인은 학생일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조례의 과거와 현재가 다름 아닌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일이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만19세 이상만 유효한 서명을 할 수 있는 어른 중심의 주민발의 제도의 한계상,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에서 어른들의 협조는 꼭 필요하다. 제발 서명 좀… 굽신굽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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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도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1.06.06 15: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