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생회는 학생 '조합'!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권력을!

공현 2011. 8. 12. 18:38


학생회는 학생 '조합'!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권력을!




학교에 민주주의가 있긴 한가?

  모든 사람은 자기결정권을 가집니다. 자기결정권은 자기 일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제가 오늘 점심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제 권리입니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서' 하는 결정이라는 건 별로 없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문제를 결정할 기본 권리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게 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저와 여러 사람들이 같이 관련되어 있는 공동의 문제라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에 자기결정권은 '참여권'이 됩니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반영하는 등, 여러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인 거죠. 일종의 집단적인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권리를 소수의 사람들만 가지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흔히 투표를 떠올리게 되고,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참여할 권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표현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UN아동권리협약 제12조에서는 이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단지 국가 차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지역사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도 민주주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보일까요?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여러 결정들을 하지만, 그런 결정에 학생들이 참여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검열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재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작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이런 일이 몇몇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입니다.


특히 학생회, 학생회, 학생회!

  특히 학생회는 학생들의 참여권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학생회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Student Union" 또는 "Student goverment"입니다. 학생 조합, 또는 학생 정부인 거죠. 조합은 그 조합 구성원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입니다. 정부도 비슷합니다. 한국 정부가 대외적․국제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한국 사람들의 권익,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이지 않습니까? 즉 학생회는 원래 학생들의 권익과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들의 조직인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학생들의 권익을 위한 학생들의 조직에서, 왜 그 조직의 대표나 간부를 뽑을 때 학생들이 아닌 교사들의 추천이 필요하다고 하는 걸까요? 왜 성적 같은 기준이 출마 자격에 있는 걸까요? 학교 눈으로 보기에 '품행이 단정'한 학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왜 붙는 거죠? 이건 마치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데 대통령 추천이 필요하다거나 출마 자격에 재산이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거나, 아님 인천시장이 보기에 모범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랑 비슷한 소리입니다. 기업의 노동조합에서 노동조합을 대표할 위원장과 대의원 등 간부들을 뽑는데 출마하는데 사장님의 추천이 필요하다면 뭥미? 할걸요.

  더군다나 학생회는 제대로 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의할 때 안건을 정하는 일이나, 학생회 자체 예산을 쓰는 일조차 교사들의 감독 속에서 하게 되죠. 법적인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고, 교육부의 지침에서는 학생회가 학교 운영에 관한 일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생회는 학생들에게도 '우리들의 권익을 위한 우리들의 기구/조합'이 아니라 몇몇 학생들의 스펙을 위한 조직 정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심할 때는 학교 편에 서서 학생들을 억누르는 모범생들의 조직으로도 여겨집니다. 서글픈 일입니다. 한국의 학생회는 과거 학생들이 요구하고 싸워서 그 존재와 자치권을 인정받았던 조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직접 뽑는 '학생회 직선제'도, 1988년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부터 반장까지 직선제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여러 학교에서 싸운 끝에 쟁취해낸 것이었는데 말입니다.(그 전에는 반장들끼리 모여서 간접선거를 하거나 심한 경우 교장이 지명했다는군요.)


'들러리' 말고 진짜 민주주의를!

  꼭 학생회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등 몇 나라들을 제외하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합니다. 독일 등의 유럽 나라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는 초중고의 차이는 학생들의 참여 비율 차이일 뿐입니다.

  지금의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에게 학교운영 참여할 권한을 줘봤자 학생들이 별로 관심도 없고 참여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얘기해봤자 반영도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고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이야기하는 게 학교 생활규정에, 등교시간에, 급식에, 학교 시설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드물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지금까지 참여시킨다, 목소리를 듣는다, 하면서 '들러리', '장식품' 취급만 한 학교와 우리 사회에 있는 거지요. 학생들에게 진짜 권력, 민주주의를 보장해야 참여할 맛도 나지 않을까요?

  또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을 개정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할 '시간'을 보장하고, 회의안건이나 예산안 등을 학생들이 알아보기 쉽게 자료를 만들고 공개하는 등의 일들이 필요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학생회 운영 안에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건 당연하구요. 이것저것 과제가 많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진짜 '권력'을 가지고 학교 운영에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그 '어떻게'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실천으로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