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어떤 안타까움에 대해

공현 2011. 8. 31. 02:22



  최근에 전국학생단체총연합이라는 카페를 홍보하는 글도 올라왔고, 또 최근에 트위터에서 전국학생노동조합이라는 단체의 트윗도 보이고, 또 사회당과 진보신당에서 청소년위원회(또는 청소년 소위원회) 등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안타까움이랄까, 씁쓸함이랄까, 뭐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제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니 대충 두 가지로 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예욕? 허세? 성급함?

  하나의 안타까움은, 사람들의 욕망에 관한 것입니다. 명예욕 아니면 허세, 또는 성급함 뭐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학생단체총연합이나 전국학생노동조합이나, 그런 단체를 만들고 꾸리려고 하는 분들은 나름 근본적이고 독자적인 소신과 사상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소신과 사상을 가지고 밑바닥에서부터 운동을 만들어 가려고는 하지 않고 갑자기 "전국○○○"부터 만들려고 할까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사무처장"이니 "대표"니 "위원장"이니 감투를 만들어서 나눠가지고 있을까요?

  바로 자기 학교에서, 자기 지역에서도 운동을 조직해내지 않는 분들이 왜 "전국연합체" 같은 것부터 만들려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쁘게 해석하면 이름이 그럴 듯하고 큰 단체부터 만들어서 거기에서 그럴 듯한 직위를 가지고 싶어 하는 명예욕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겠고, 좋게 해석하더라도 관념적인 성급함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면, 인터넷이 심어준 잘못된 환상의 탓인 걸까요? 그런 이름을 지어서 카페나 사이트를 하나 만들면 사람들이 모여들 줄 알았다거나….

  이렇게 투덜거리면, 어떤 분은 그 사람들이 아수나로에서 활동 안 해서 그러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꼭 아수나로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가 고등학교 때 아수나로와는 별개로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라는 이름으로 제가 다니던 학교 중심으로 작은 모임을 꾸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임은 2007년까지도 아수나로와 별개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청소년운동의 다양성은 더 커져야 합니다. 아수나로와 다른 운동단체들, 모임들이 많이 생겨나는 게 더 건강한 운동 판을 만드는 길입니다.

  제 불만은, 왜 작은 데서 아래에서부터 충실하게 활동하는 모임/조직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커보이는 조직, 그럴 듯해 보이는 조직을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꼭 수평적 운영방식일 필요도 없고 2008년에 생겼던 전청련처럼 지부장 두고 대표 두고 해도 좋아요. 어쨌건 학교 현장이나 지역에서부터 내실 있는 활동을 만들어 가시기만 한다면, 흔쾌히 함께 하겠지요.


운동에도 공공성이

  다른 하나의 심정은 어떤 건지 설명하기가 좀 힘든데요. 말하자면 "공공적인 것"에 대한 바람인 것 같습니다. 또는 "운동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구요. "과거-현재-미래"에 관한 사유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자신들이 뭔가 새로운 단체/운동을 만들려고 할 때, 그 단체/운동이 지금 사회 상황과 운동 현실 속에서 어떤 공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맥락 속에서 필요한지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만들어지는 과정만 살펴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청소년운동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평가, 온라인 운동과 청소년선도주의와 과도한 당사자주의(이른바 피터팬주의), 이슈파이팅 식 운동과 서울 중심성 등등 여러 관계와 맥락 위에서 '직접 행동'을 강조한 전국 조직의 필요성, 학생인권 운동의 여러 실패와 제자리걸음 등등, 여러 가지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정리되고 글로 발표한 끝에 아수나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다못해 규모상 소모임에 가까운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 등의 경우에도, 전주 지역의 청소년인권운동의 현실과 2005년 당시 두발자유 운동의 맥락 등을 고민한 끝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록 운영이 미숙하여 그런 고민과 뜻이 구성원들 사이에 잘 공유된 것 같진 않지만.)

  물론 어느 한 개인이 운동을 하는 이유가 공공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공개적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롭게 '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나름의 그 단체/운동의 공공성을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공성이란 말하자면 '가정법'입니다. 만약 나/우리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단체/운동의 필요성과 의미를 보더라도 그 의미에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을 가능성이지요. 즉 공적인 단체/운동은 모든 사람, 아니면 적어도 특정한 사람들이 봤을 때 그 존재 의의에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질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운동을 하는 이유와 어떤 단체/운동의 존재 이유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요. 그렇지 않고 그냥 개개인이 만들고 싶어서 만든다면, 그건 그냥 개개인의 집합이겠지요. 개개인의 모임이 나쁘다거나, 그렇게 모임을 만드는 걸 금지해야 한다고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말할 이유도 자격도 없지요. 다만 저를 비롯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 하려는 사람들이, 왜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모임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볼 뿐이지요. 그리고 운동의 장기적인 발전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크구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전국학생단체총연합이란 걸 만들고자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학생단체들의 연합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전국 총연합이라는 게 만들어질 정도로 학생들의 운동이 활발하다고 진단하고 있는 건지 밝혀야겠지요. 그 총연합이라는 게 학생단체들을 연합하여 무엇을 어떤 방법론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밝혀야겠지요. 전국학생노동조합이라는 걸 만들고자 할 때도, 굳이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으로 조직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학생들의 운동에서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방법론을 의미하고 왜 그 방법론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지 밝혀야 합니다.

  정당 청소년위원회를 만들려고 할 때도 이 정당의 지향 및 정책 및 활동 속에서 청소년위원회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정당 청소년위원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청소년운동이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정당 외에 기층 청소년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고려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과거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가 이미 만들어졌던 적이 있고, 사실상 지금 부문위원회로서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인데, 그런 역사에 대한 평가와 진단도 필요하겠지요. 당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그 지지자들을 포함해서 폭넓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 공당의 부문위원회라면 그런 공공성은 더 커야 할 것입니다.

  아, 물론 제가 보지 못한 것이거나 공개되지 않은 것일 뿐, 제가 언급한 단체들 안에서 그런 논의를 충분히 정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한두 곳 정도는 그런 것 같지 않지만요. 여하튼 저도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자료가 있다면 꼭 공유를 받고 싶습니다. 함께 교류하고 토론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러나 만약 그런 정리도 고민도 없이 단체를 만들고 있다면 저는 제법 많이 안타깝고 씁쓸할 것입니다. 새롭게 단체를, 운동을 만들려고 할 정도로 열의 있는 사람들이, 운동의 공공성이나 역사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게 말입니다. 그건 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스러워 할 만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제 삶의 50% 이상을 청소년운동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써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지치기도 했어요. 그저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어떻게 하면 더 잘 발전할 수 있을지, 제가 앞으로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뭘지, 요즘엔 병역거부 문제 말고는 거의 그런 생각만 하고 지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여러 모습들이 한층 더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저의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단지 제 조급한 마음의 산물이고, 그런 분들의 노력이 더해져서 청소년운동이 더 다양하고 풍부해진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