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나의 대학거부] 못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묻지 마라

공현 2011. 12. 1. 16:43

[나의 대학거부] 못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묻지 마라

공기


내가 대학거부를 생각하게 된 시점은 아마 중3 때(2008년) 촛불집회를 겪고 일제고사반대‘Say-No(세이 노우, 아니라고 말해요)’라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냥 미국산 쇠고기가 먹기 싫었고, 돈 많은 사람들은 한우 먹으면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젤라틴이 들어간 많은 제품들에 노출되기 때문에 꼭 막아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면 무엇인가 바꿔낼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등교를 거부하고 나서

하지만 촛불은 그렇게 식어들었고 나에게 새로운 활동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평범한 중학생이었고,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오히려 거부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 애매한 시점에 전학을 간 나는 공부에 대한 의욕도 없고, 내가 왜 이런 걸 주구장창 암기식으로 외워야 할까 지루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등교거부라는 행동을 할 때엔 겁이 나서 선생님에게 병결 처리를 받고 그렇게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그렇게 등교거부라는 것을 치루고 다음날 학교로 돌아가 오엠알(OMR)카드에 ‘Say-No’로 표시하고 신나게 자고 있는 와중에 채점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그 해에 일제고사는 꽤나 무난하게 지나갔을 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학생부장 선생님을 불러와 나와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 담임의 귀에까지 들어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뭐가 대학거부와 이어지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날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기(별칭입니다)야, 너가 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바꿔야 하는 거지 이런 식의 행동은 옳지 못해. 지금 이 제도를 만들어낸 국회의원들 교육감 교육의원들 등등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 아니니?” 사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를 지킬 무기가 없었다.

잘 살고 있었다

나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즉 내가 경험한 것)이나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보니까 사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나름의 신념이랄까 가치 있는 것이랄까 그걸 두고 움직이고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나는 잘못된 것, 이 시기에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즉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말은 너도 똑같이 경쟁해서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권력자)가 되어 사회를 바꾸라는 말인 건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만 줄이지만 선생님이 내던진 이 말 한마디가 당시 나에게 대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해 11월 입시폐지대학평준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이란 건 나와 멀어보였고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그 경쟁의 레이스를 뛰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많은 것을 결정했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것과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두 선택 중 하나는 좌절이 되고 이후에 실현되었지만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이 선택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라며.

사회의 시선들

하지만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이 배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연상시키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그러한 연상과 시선들은 아마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곧바로 노동현장으로 간다는 그 다른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서 일해야 한다(공순이 된다)’거나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이 이미 이런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 돈 주고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워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노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며, 학자금을 빌리더라도 갚을 처지도 되지 못하는 형편 때문이었다. 그렇게 빚쟁이로 몰락해버리면 도저히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능이라는 시스템의 부당함에서 온다. 그것은 정말로 자기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환상과 무관하다. 소위 스카이(SKY)라고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고나 특목고를 다니고 강남과 청담 일대에 있는 비싸고 질 높은 학원들에 다닌다. 이미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일찍이 이 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지만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나에게 대학거부란 거부가 아니라 못 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네가 못 가는 걸 왜 거부란 말을 쓰며 거창하게 그러냐?’라는 말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지금의 대학,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대학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해보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바라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면 좋겠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 또한 발 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도 나의 목소리를 애써 용기내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못 가더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 행동했고, 앞으로도 당신들과 직접행동으로 이 사회에 문제를 던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공기 님은 아직은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을 더 하고 싶고 추구하고 싶답니다. 대학도 꿈도 스펙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 청춘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라는 소개를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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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8일 17:3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