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2012. 2. 8. 17:37


어제 "공현과 함께 라면", 병역거부 후원행사를 마치고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서 이제야 답장을 씁니다.
편지가 늦을 것을 예상하지 않았냐고 물으셨는데, 어느 쪽이냐고 물으면 사실 안 쓰실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만나서 재촉하지 않았으면 안 쓰셨을 가능성도 꽤 되지 않았을까요? ㅎㅎ

제가 싫어하는 것은, 장혜영 씨와 저를 언론에서 엮는 걸 싫어한다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세대"와 "서울대"를 한데 엮는 것이 싫은 것이지요.
처음에 혜영 씨 블로그에서 「공개이별선언문」을 보고 댓글에 남긴 것처럼 저는 혜영 씨가 그때 쓴 글 등을 보면서 이미 혜영 씨라는 사람에게 반했답니다.
활동가로서나 동료로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 있으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김예슬 씨에게 고마워하기도 합니다.
저는 진작 고려대-서울대-연세대 자퇴생 3명을 엮는 기획이면 안 해야지, 하고 작심을 하고 있었는데, 국민일보 때나 다른 때나, 김예슬 씨가 참가하지 않아서 제가 참가할 빌미를 남겨주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혜영 씨를 만나서, 그럭저럭 유쾌한 기분입니다.
여의도에서 혜영 씨를 처음 봤을 때도, 뭐랄까요, 가벼우면서도 자기한테 진지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느낌을 받아서, 제가 혜영 씨를 별로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자기한테 자연스러운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일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대학을 그만두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데 둘 다 공감하고 있다는 데서 느낀 호감도 있을 겁니다. 대학을 그만두는 이유를 물어보는 데 진력이 난 상태였으니까요.


혜영 씨가 쓴 편지에서 "이 사람은 시나 지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구절을 보고 뭔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제 꿈은 시인이고 작가였습니다. 뭐, 그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 교수나 대학강사, 연구원 같은 것도 부록으로 넣곤 했지만.
지금도 제가 갖고 있는 꿈 중 하나는 제 시집을 자비가 아닌 출판사에서 내주는 것입니다. (자비 출판은 좀... 돈도 없고...)
그래서 열심히 시를 써보지만 여전히 뭐 꿈이 이루어질 가망은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시를 써왔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글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뭐 그런 막연한 생각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저에게 시를 가르친 교사 중 한 분은 시를 쓰는 건 가장 논리적인 활동 중에 하나라고 배웠다고 전했거든요. 사실 저한테는 '그럴싸한' 시를 한 편 만들어낸다는 게 항상, 제법 골치 아픈 작업이기는 합니다, 지금도.

요즘의 우울하고 초조하고 뭔가 서럽기도 하고 마음을 흘러가는 대로 두다보면 왠지 이를 악 물게 되는 그런 어떤 감정과 상념들도 한 편 시로 썼는데요.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탈고하는 중입니다. 며칠 내로 블로그에 올려봐야지요. 혜영 씨는 제 블로그의 애독자가 아니라 하셨지만, 그런 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제 블로그는 라면맛집 탐방 얘길 올리면 방문자가 700명씩 들어오지만, 제 시는 가장 인기가 없는 듯하거든요. 흑흑.


뭐,시인이 어쨌건 흘러흘러서 저는 지금 활동가이지요. 청소년운동 활동가로 산 지도 어느새 만으로 6년을 넘어, 곧 7년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활동가로 사는 저의 삶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머뭇거릴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제 꿈이거든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좀 커다란 개인적 꿈은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시집 출판과 생계 해결 같은 부분적인 개인적 꿈들이랑, 좀 범세계적 차원의 꿈들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활동가로서 살아온 삶의 패턴이 병역거부와 그에 이은 징역 생활, 반은 자의적이고 반은 타의적인 그런 격리로 인해 끊어질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1년 하고 수개월 뒤에 제가 다시 그런 삶의 패턴으로 무사 복귀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이 요즘 제게 가장 큰 문제거리 같습니다.


어제 공현과 함께 라면 행사에 와줘서, 반가웠습니다. 안 오실 줄 알았거든요. 제가 랩하고 노래 부를 때는 없으셨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모습을 보셨으면 라면 끓이는 모습보다는 좀 더 재밌어하시지 않았을까요? ㅎㅎ 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전주에 가서, 고등학교 때 면식이 있던 분들도 만나고, 난다(혜영 씨가 귀엽다고 하는 바로 그!)와 같이 여행도 며칠 하다가 이번 주말에야 수원으로 돌아옵니다. 수감되기 전에는 여기저기 다녀보려구요.
혜영 씨는 외국도 다니고 하시는 걸 보면 여행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저는 여행을 좀 귀찮아 하는 것도 있고, 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혜영 씨의 여행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네요.

그밖에도 혜영 씨를 만나면 얘기해보고 싶은 게 여럿 있는 것 같다가도, 또 만나면 다 잊어버리고 화제를 찾아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꼭 혜영 씨가 아니어도 오랜만에 누굴 만나면 맨날 그러더라구요. 어? 이 사람 만나면 이 얘기 해봐야지 하던 게 있었는데... 하면서. 맨날 라면이랑 술만 먹어서 기억력이 감퇴한 걸까요.
편지를 쓰다보니 생각이 나는 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같은 것 이야기나, 애니고등학교 이야기나, 돈 버는 거나 집 관련 이야기나, 그런 것들이 있네요. 다음에 만나면 잊어버리지 말고 이 중에 한두개는 이야기해보려구요.
특히 저는 사람들에게 집 관련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 하는 편입니다. 가족 말고, 주거요. 제 삶에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주거라서 그런가봐요. 좀 더 넓혀서 말하면 어떻게 살고 있나, 라고 할 수 있겠죠. 말하고 나니 갑자기 너무 확 넓힌 느낌도 드네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방금 막 시사인에 이오성 기자님이 다음주 화요일에 혜영 씨와 같이 만나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네요. 우리는 아무래도 그런 자리에서 계속 만나게 되려나 봅니다. 사실 이오성 기자님은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 출신이셔서, 과거에 한 번 제가 그 분을 인터뷰하느라 만나뵌 적이 있던 사이에요.


편지를 쓰면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안 물어보고 제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는 건 제 고질병인 것 같습니다.
손편지는 많이 써봤지만 블로그 편지는 처음인데... 그래도 저의 이런 부분은 손편지나 블로그나 다를 바가 없네요. 감옥에 가서 여러 사람들이랑 편지도 많이 주고 받게 될 텐데 고치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다음주 화요일에 보기 전에 이 편지에 답장이 올까요? 아니면 다음주에 뵙고 난 다음에 답장을 받게 될까요?
급하지 않게, 다음주에 만나고 나서 답장이 와도 괜찮을 것 같네요.


2012년 2월 8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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