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한고학연(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해산에 부쳐

공현 2012. 3. 8. 01:03


한고학연(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해산에 부쳐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글로, 제가 속한 단체의 입장은 아닙니다.)


지난번, <전청련 해산에 부쳐>라고 쓴 글에 이어 또 이런 글을 쓰게 됐습니다. 서글픕니다. 지난번에는 저보다도 더 늦게 청소년운동에 나타난 단체(전청련)의 해산을 기리는 글을 썼는데, 오늘은 그보다 더 전에 만들어졌던 단체, 한고학연의 해산을 기리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느 단체의 해산에 대해서, 같이 운동을 하는 다른 이들이 무관심하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합니다. 뭐, 저는 애매하게 흐지부지 공중분해 되어버리지 않고 '공식 해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단체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단체들에게 동시대에 활동해온 활동가로서 예의를 갖추고 싶은 것입니다만, 그런 것도 어쩌면저의 독특한 성벽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시작할 무렵에 출범했던 단체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는 제가 청소년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5년에 출범했던 단체입니다. 출범 초기부터 학생회 연합이라는 형식이나 명칭 때문에, "한총련의 고등학생 판이냐"라는 식의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죠. 그리고 그때문에 한고학연 초기 멤버들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뭐 저는 그 당시부터 생각했던 게, 패기 있게 "우리는 한총련 같은 것보다 더 대단하고 영향력 있는 조직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출범한다!"라거나 "한총련이든 뭐든, 우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디 한 번 보든가!" 하고 응수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긴 합니다만.

한고학연을 한총련에 비교한다거나 하는 것은, 조직의 규모든 지향점이든 활동 내용이든, 여러 모로 참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지요. 사실 저는 한고학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비정치성을 비롯해서 운동론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었고, 만들어진 뒤 약 5년간, 한고학연이 했던 활동이라는 게, 학생회 관련 캠프나 워크샵 몇 번을 연 것과, 설문조사를 몇 번 하여 발표한 것 외에는 없었거든요. 저는 적어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고등학생 조직으로서, 아니, "고등학생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조직, "고등학교 학생회의 권한을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는 학생회 연합 조직으로서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그 5년간 훨씬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 해산을 결정한 한고학연의 구성원들이 아니라 지난 한고학연의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고학연의 활동에 대한 저의 평가나 호불호를 떠나서, 한고학연이 해산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마음 찡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비록 내가 몸 담지는 않았지만, 내가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을 무렵에 시작되었던 조직. 그 조직이 이제 공식해산 했다는 것이 저를 왠지 감상적으로 만듭니다. 물론 한고학연은 2008년 무렵, 아니면 그 이전부터 활발한 활동은 없긴 했습니다. 그래도 '공식해산'이라는 게 주는 느낌이 그렇군요.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은 청소년운동에서 나름의 짧은 한 시대가 졌다는 신호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저는 청소년운동에서 저와, 그리고 아수나로 등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들과 다른 견해와 운동론과 형태를 가진 조직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령 다른 조직들이 서로 욕하고 비판하더라도, 어쨌건 각자가 서로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운동의 발전과 사회 변화를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운동을 건강하게 만들 거라고 믿습니다. 한고학연의 해산은 '비정치성'이나 '학생회 연합'의 형태를 내세운 운동의 한 형태가 다시 한 번 실패하고 소멸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제가 동의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슬퍼하고 또 쓸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 하기만 하진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고학연은 '비교적' 역사가 긴 편인 조직이지요. 그리고 대의원 선거 등을 통해 매년 조직을 새로 구성해오던 단체 특성상 한고학연을 거쳐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한고학연의 해산을 결정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고학연을 거쳐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고학연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은, 한고학연의 해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저 가슴 아파 하며 침묵하거나, 비난하지만은 않길 바랍니다. 한고학연에 실었던 꿈이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라 청소년운동의, 또는 좁게 보더라도 고등학생운동 또는 고등학교학생회의 발전이었다면, 한고학연 활동과 역사와 해산에 대해서 각자의 정리와 평가가 나오길 바랍니다. 저 역시 많은 단체, 모임, 운동들을 만들고 때로는 실패하고 흐지부지되고 사라지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짐한 것은, 이걸 단지 나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나와 나 이후에 청소년운동을 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밑거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정리를 하고 기록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에 가슴이 한켠이 아프신 분들도 많겠지만, 아파 하기만 하지 마시고, 그런 형태로라도 마음을 달래주시길 감히 부탁드려봅니다. 청소년운동을 계속 해나갈 한 사람으로서요.

한고학연을 처음 만드신 분들도, 한고학연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도, 한고학연의 공식해산이라는 결정을 내리신 분들도, 모두 애쓰셨습니다. 저도 더 애쓸 것입니다. 한고학연 해산 소식에, 서글픔과 쓸쓸함을 느끼지만, 앞으로 저도 더 많은 활동으로 한고학연의 역사에 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