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병역거부 소견서2 -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인간으로서의, 활동가로서의 의무

공현 2012. 7. 13. 22:42



< 병역거부 소견서 2 >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인간으로서의, 활동가로서의 의무

 

4월 30일에 병역거부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감옥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제 병역거부의 이유를 다시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써서 병무청 등에 제출한 소견서는 다소 시간에 쫓겨가며, 급한 마음에, 그리고 팩스 전송을 쉽게 하기 위해 가능한 한 짧게 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기사 요즘 세상에 길게 써 봤자 다 읽어 볼 사람이 몇이다 되겠습니까? 그래도 대략적인 말들로 채워진 제 병역거부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고 구체적인 말들로 보완해보자는 욕심이 나서 이렇게 써 봅니다.


 

1

자명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살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오래 갈등하거나 고민한 적이 얼마 없었습니다. 현재의 자신을 종합하여 가장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대로 결정하고 실천해왔습니다. 나와 나의 삶을 분리시켜서 선택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일치시킴으로써 자명한 삶, 자연스러운 삶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내 삶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게 정당화하거나 변명할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병역거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그저 자연스럽고도 자명한 결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병역거부의 이유를 묻거나 고민의 과정을 물어봤을 때 그렇게 말문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병역거부가 정치적인 병역거부이고 운동의 한 형태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화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저에게 병역거부는 제가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운동의 1차적인 주체는 물론 평화활동가들입니다. 저는 설령 병역거부를 했더라도 앞으로 계속 청소년운동을 중점적으로 하고 싶기 때문에, 평화활동가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러니까 저의 병역거부는 마치 다른 활동가들이나 시민들이 학생인권조례 서명을 주변에서 모아 주시는 것과 같은, 참여의 한 방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여로서는 좀 져야 하는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어차피 군대에 현역으로 갔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그리 큰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제게 병역거부는 그리 큰 결단도, 대단한 실천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부각되는 것도 부담스럽고, 병역거부나 평화운동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다소 곤혹스럽습니다.)

 


2


저는 이전에 썼던 소견서다 다른 글들에서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 들었습니다. 하나는 현재 한국의 군대 ㅡ징병제도가 개인의 인권을 과하게 제한·침해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평화를 이룬다는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으며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저의 신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성주의적인 비판이나 군대 조직의 비민주성 등도 떠올랐지만 일단 저의 경우에 가장 큰 것은 앞서 말한 이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 중에 현재 군대·징병제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한국 징병제의 여러 측면들과 장면들에서 찾아볼 수 있고, 많은 분들이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의 인권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 도서나 어플리케이션까지 검열하는 행태, 식사나 생활 환경의 열악함 등, 한국 군대의 당연한 모습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대체로 심각한 인권 문제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중 상당수는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나서면 단기간 안에 개선 가능한 것들입니다. 현역 복무자들 뿐 아니라 사실상 유급으로 해야 할 업무들까지 강제노동에 가깝게 인력을 채우고 있는 공익근무 등의 대체복무제를 역시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징역에 처해지고 있는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경향은 한국 군대(전·의경)가 대추리에서 촛불집회에서 농민집회에서 용산참사에서 강정에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먼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있다거나, 권리만 주장한다는 반박이 돌아올 가능성이 클 테지요. 그러나 의무와 권리를 교환관계로 보거나 의무가 권리에 앞선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권리와 의무는 실은 각각 독립적으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목적 자체가 그 사회구성원,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니 만큼 인권은 본래 의무보다 앞서는 것, 의무가 필요한 이유 자체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되는 것이 더 올바른 해석입니다. 공동체가 불가피하게 의무를 부여해야 하더라도 그 방식과 내용은 사람들의 인권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제한이 없이 국가나 공동체가 마구잡이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면, 인간보다 국가가 우선시되고 개인의 권리와 삶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개인에게 일방적이고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고,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가능한 한 보장하고 의무 이행으로 생기는 피해에 대한 보상과 같은 기본적 의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설령 처벌을 받을지언정 그런 국가에 의무 이행 요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병역거부의 이유로 든 “인권”은, 반ㅡ국가주의,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를 이룩한다는 사고방식에 반대하기 때문에 군사력의 일부,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국가들이 군비경쟁을 하고 더욱 더 효과적인 살상·파괴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결국 더 큰 전쟁, 더 많은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워왔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반도 역시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많은 비용과 희생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가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그와 같은 폭력들이 일어나는 원인과 구조를 제거하고 억제해야만 평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전쟁을 준비하는 한 평화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안장되어 있는 현충원에서 기리고 있는 분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전쟁에서 남을 죽여야 했고 자신도 다치고 죽게 되었던 희생자들입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 다른 이들을 많이 죽인 사람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로 치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연평도 포격이 일어났을 때, 남한 역시 대응 포격을 해서 북한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했습니다. 그 ‘피해’로 몇 명이 죽고 무엇이 파괴되었을까요? 저는 우리가 전쟁 준비를 그만두기 위해 노력해야만,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사람이 죽지 않아도, 죽이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흔히 철 없는 이상론이라고 폄하당합니다. 그러나 군사력 강화가 자위에만 쓰일 것이고 우리는 침략자·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철없는 환상입니다. 군비경쟁이 많은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초래하고, 전쟁 위협을 높이며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동으로 군축을 하는 것은 충분히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실현 가능한 목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국민국가라른 틀이 사라지고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의 민주주의가 더 진전된다면 전쟁의 필요성이나 가능성도 크게 줄어들고, 상비군의 존재 이유 역시 크게 약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사람들은 잘 원하지 않고, 소통과 연대가 활성화된다면 함부로 서로를 적대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자들·평화운동가들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의 역할이라거나 개개인이 자위를 위해 불가피하게 폭력에 호소하게 되는 것까지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 단위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조직화된 전쟁집단ㅡ군대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만, 진정한 인권과 평화의 실현이 가까워지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신념이 표현으로서 군사훈련을 받고 군대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두 가지, 인권ㅡ반국가주의와 평화주의ㅡ반군사주의는 서로 다른 결의 이유이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군대가,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원칙을 지킨다면 섣불리 전쟁행위에 나설 수도 없고 군사주의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평화적 수단을 통한 진정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국가가 개인을 무리하게 강제로 동원하고 희생을 강요할 이유도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하나의 생각덩어리·가치관의 두 얼굴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저는 군대에 가기 싫어서, 군인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군대 생활의 힘듦이 제 병역거부의 이유라고 하자니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면에서라면 감옥 생활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로 살게 될 것이 힘들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군대냐 감옥이냐” 같은 생각을 하다가는 그 딜레마 앞에서 ‘자살’이라는 탈출을 떠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힘듦, 두려움만으로 따진다면 제가 군대가 아닌 감옥을 택한 걸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 데에는 아마 많은 관계들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담는 것은 무리일 테지요. 다만 제가 활동가이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했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습니다. 병역거부는 적어도 군대에 가기 싫다고, 정면으로 말하고 불복종하기라도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둘 다 싫은 군대와 감옥 중에서, 그래도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을 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제가 저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고 제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가기 싫다면, 가야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뭐 하나라도 참여하자는 소박한 실천이 저의 병역거부인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마음은 담담하고 평온합니다. 감옥에서는 되도록 절약하고, 제 주변 분들이 모아주신 후원금도 낭비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없는 세상>이나 길수 같은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그러고도 여유가 좀 있다면 <오답승리의 희망>이나 <활기> 같은 청소년운동에게도 다소 돈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 밖에도 제가 청소년운동이나 평화운동에 보탬이 될 것이 있다면 기여하고 싶구요. 이제 곧 교도소로 이감이 되고 일도 하게 되겠지만, 감옥 안에서도 될 수 있는 한은 활동가로 지내고 싶습니다. 저와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잠시 상담을 해주셨던 교수님께서, 병역거부는 제 이후의 삶을 구속하는 큰 결단이고, 과거에 구속되어버린 삶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병역거부로 수감된 지금, 오히려 어깨의 짐을 하나 던 느낌입니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실천하고 노력할 저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좀 해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2012. 05. 06.

서울구치소에서,

공현(유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