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7. 18. 12:36
안양교육지원청에서 혁신학교 부장교사들 대상으로 하는 학생인권 교육에 원고로 낸 거예욤
교사들용으로 쓴 거라 좀 많이 부드럽지요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실내화 이야기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는 체벌금지와 '생활지도 혁신'이 한창 이야기되던 중, 올해 2월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교사 집담회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 입 열다>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무너뜨린다고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교사들, 그와는 다른 학교 현실을 체험한 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한 자리였다.
여러 가지 경험담과 에피소드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한 교사가 들려준 자기 학교의 실내화 규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등의 문제는 두발규제 못지않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복장규제'를 바꾸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그 학교에서는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 오히려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학생들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냥 단속을 중단하기만 했는데 학생들의 실내화 출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실내화를 신고 밖에 드나들면 얼마나 위생상 문제가 있고 병균을 옮기게 되고 먼지가 나게 되는지 몇 차례 설명하고 교육한 결과였다. 실내화를 신고 드나들면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1 -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생활영역

번호

벌점(지도) 내용

점수

용의 복장

1

두발불량(규정 외 두발상태, 염색, 퍼머)

2

2

용의규정 위반(화장, 각종 액세서리 : 반지, 귀걸이, 피어싱 등)

3

3

복장규정 위반(교복 변형 개조 착용: 치마, 조끼, 바지, 브라우스, 교복 미착용 등)

5

4

교표 및 명찰 미부착

2

5

기타 규정 위반(학생용 가방, 스타킹, 겉옷 등)

1

준법

6

무단 지각(정문 08:30분 이후 등교), 수업지각,

무단 결과, 무단조퇴

2

7

무단결석(1회)/ 장기해외 체류에 의한 결석 제외

4

8

교내․외 행사 및 단체 활동 무단 불참

2

9

청소 및 주번활동에 지속적으로 불참

2

10

월담 행위, 무단외출

4

11

학생 출입 금지 장소 출입

5

12

사행성 오락(카드, 화투, 동전치기 등)

3

13

음란물 반입․탐독․시청(만화, 사진, 잡지, 비디오, 인터넷 등)

3

14

교내에서 불건전한 이성교재(포옹, 입맞춤, 무릎위에 앉기, 남여 같은 화장실 이용하기)

4

15

술, 담배 소지 및 교내 반입/음주 또는 흡연

7

16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 하거나 폭주

7

예절 및 공중도덕

17

실내소란(뛰기, 공놀이, 말 타기 놀이, 고성방가, 휘바람 등)

2

18

껌․침뱉기, 오물, 쓰레기 버리기, 낙서 행위

3

19

교사 또는 어른에게 불손한 언행

7

20

실내화 및 실외화 미구분 착용

2

21

급우 또는 선후배에게 욕설, 후배에게 심부름

1

22

교내외 공공기물 훼손 및 파손

7

23

실내 음식물 관련 쓰레기 반입 및 취식보행

1

학습활동

24

수업분위기 저해

(취침, 지시거부, 늦게 입실, 껌, 과자 등 음식물 섭취 등)

3

25

수업시간 전자기기 무단 사용(mp3, 휴대폰 등)

3

기 타

26

상기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

2

(서울 모중학교 벌점표)

이 실내화 이야기에는 학생인권이 학교를 향해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녹아 있다. 먼저, 학생인권은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학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건 학생들을 처벌할 만한 '문제행동'인 것일까?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학생들이 교내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교사의 의견과 다른 자기 의견을 거칠게든 부드럽게든 표출하는 것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 대한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는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해온 경향이 있다. 권장하거나 교육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금지와 처벌로 일관해오는가 하면, 불합리한 규칙에 따라서 왜 '문제행동'인지 알 수 없게 '문제행동'이 되어버리고 만 것도 있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부당한 처벌에 대해 항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거나 말대답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교가 규정하고 있는 '문제행동'의 기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예컨대 학생․청소년들의 금기로 여겨지는 '흡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고 또 학교가 금연 구역이라는 면에서 학교내 흡연이 일단 문제행동이라고 치더라도, 과연 흡연은 그렇게 강력한 처벌과 중징계를 받아야만 하는 '문제행동'인 걸까? 많은 학교들이 흡연을 거의 학교내 폭력이나 부정행위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흡연이 3~4회 이상 적발되면 바로 퇴학이라는 학교들도 있을 지경이다. 또 다른 예로, 어떤 학교의 규정을 보면 애인과 학교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행위가 약물 사용이나 도박 등과 비슷한 수위의 '문제행동'으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예시한 한 중학교의 벌점기준에서도, '복장규정 위반'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책임져야 할 청소 활동 등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도 더 많은 벌점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런 기준들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처럼 지금까지 학교가 굳게 지켜온 '문제행동'의 기준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는 일이다. 인권의 기준에 맞게 폭력이나 차별 등의 '문제행동'에는 좀 더 엄격해지고, 대신에 불합리하고 인권침해적인 규칙에 따라 '문제행동'으로 취급되어왔던 것들을 '문제행동'이 아닌 것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행동'을 정하는 기준을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가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하자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단지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그 맥락과 이유를 같이 살피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는 눈을 바꿀 때, '실내화 출입' 문제를 처벌해야 할 문제행동이 아니라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 문제로 이해할 때, 학생들이 좀 더 존중받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2 -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학 생인권이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해야 하는가?"이다. 설령 교사나 학교가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학생에게 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방식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실내화를 신고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속과 처벌로 교육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고 설득할 때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린 학생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때린다면, 과연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더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마음에서 쓰는 반성문이 아니라 교사가 요구하는 대로 강제적으로 쓰는 반성문은 과연 교육적일까?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교육학으로 말하면 '라포'라고 해야 할까.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학생이 모욕감이나 거부감, 두려움부터 느끼고 들어간다면 이미 그 관계는 교육적인 작용이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교사가 불공정한 처벌이나 대우를 한다거나 불합리한 규칙을 힘으로 강요하는 권력자처럼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넘쳐나는 학생들의 '반성문 작성 노하우' 등을 보면 그런 관계에서 강요된 반성문이 얼마나 비교육적, 반교육적일 수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학교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불시 검사할 때 학생들은 음주나 흡연이 나쁜 것이라는 배움을 얻을까 아니면 학교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모멸감을 느낄까?
또한 그동안 학교에서 '문제행동'은 단지 그 행동으로만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왜 자주 지각을 하는지, 아침잠이 많은지, 집이 먼지, 교통편이 불편한지, 생활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학교에 오기가 싫은 건지 차근차근 살펴보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교문에서 지각한 학생들을 떼로 세워놓고 벌을 주는 데 바빴다. 흡연을 하는 이유가 주변 친구들의 영향인지 학교가 흡연을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 때문에 생겨난 반발심이나 영웅심리인지 다른 어떤 스트레스가 있거나 가정 환경의 영향이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흡연 학생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에 급급했다. 법정에서라면 사람이 아니라 '행위'가 먼저겠지만, 교육에서는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행동'을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사람'인 학생의 상황으로 보고 학생과 '대화'를 먼저 하자는 제안이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상호적인 '대화'가 더 교육적일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할 때는 꼭 그런 걸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교육'(최근에 서울시교육청 등은 '생활지도'라는 말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과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를 '생활교육'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을 할 때, '인성/사회성 교육'을 할 때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2011-02-17))

용인 흥덕고등학교 공동체 생활규범
원칙 학생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공동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한다/ 참여, 소통, 희망, 신뢰의 배움 공동체 가치를 구현한다.

각 구성원의 생활원칙
 교사 : 체벌을 절대 하지 않는다. 욕설, 비속어, 증오발언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등
 학부모 : 내 아이 중심에서 벗어난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연계성을 가지도록 한다 등
 학생: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함께 성장한다(기다리기보다는 협조를 청한다/ 도와주기보다는 함께 해결한다)

인권친화적 학생생활지도 방향
 학생생활인권규정 마련의 민주성, 합리성 추구

유의사항
 – 학생인권 존중 및 교사-학생 간 신뢰 구축 : 순간 감정 조절하기/ 교무실 호출 안 하기(벤치, 함께 걷기 등 활용)/ 무릎 꿇리기 안 하기/ 증오발언 안 하기/ 다수 앞에서 모욕주지 않기
 - 지도 전에 먼저 상담하기


물 론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 중점을 둔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등학교의 교사 역시 처음에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생들의 불신과 의심, 분노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과 교사 사이에 그러한 존중과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변화하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고 삐딱선을 탈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들을 때려왔던 교사에게 체벌금지 됐는데 정말 안 때릴까? 하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며 "때려보세요." 하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학생인권 존중의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왔던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존중과 신뢰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학생과 교사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싹트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다.


교육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학 생인권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인권조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이 얽혀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어려움들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입시제도의 문제, 그밖에 여러 교실환경의 문제(학생인권조례는 교육환경 개선 또한 '인권'이라고 보고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의지와 예산 편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업 중에 떠들고 자는 애가 수업에 참여하게 할 방법"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그런 것에 대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학교가 학생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입시제도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처방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또한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체벌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거나 떠드는 걸, 눈치를 보면서 덜하게 될 뿐.
학생인권조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중에는 어떤 것은 수업 방식을 바꿈으로써 좀 나아질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가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단순히 교육 제도가 아니라 경제 구조나 불평등의 문제가 개선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문제도 있다. 입시제도에서 '승자'가 될 희망이 별로 없는 학생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가정에서부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들, 학교 수업이 시간 낭비이고 지루하기만 한 학생들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 현실들은 학교 현장에서 총체적인 '교육불가능' 상황을 낳고 있다. 이른바 '교실붕괴'는 학생인권 보장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이 무의미하고 괴로운 일이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좀 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학교에 좀 더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실붕괴'를 막으려고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리 없다.
그 래서 교사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을 놓고서 안 그래도 지금도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대신에, 그 힘든 걸 정부가 사회가 같이 해결해줘야 하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교사들을 교육할 기회가 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인권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사로서 학교 생활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 먼저 적고 이야기해보자고 했더니 "두발자유화금지"가 교사로서 필요하다는 답들이 나왔다. 교사로서 교육하는 데 필요한 게 두발자유화금지라니, 지나치게 소박할 뿐더러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혁신학교도 그래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보적 관계가 된다. 국제적으로도 교사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공인된 것이다.

"교사는 인권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자이다. … 어떤 교육 개혁도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인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단계의 교육체계에서 교사는 존중받고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 채택, 다카르(Dakar) 행동계획 69-70항)

학 생인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교사의 역할은 둘 중 하나다. 학생의 편에 설 것이냐.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에 설 것이냐. 그 둘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편보다는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을 선택해왔다. 아니,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교사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학생들의 비유처럼, 교사가 감옥의 '간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내다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가 아니라 학생들의 옹호자, 지원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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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07.19 01:5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2. 25. 23:09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홍보팀에서 언론기고를 하자고 제안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아직  초안이니까 여러 가지 고쳐야죠;;

근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만약 지면에 기고를 한다면 앞부분만 해야 될 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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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 학생 0.1%와 교사 70%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산수를 잘 못하던 분들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자,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수는 몇 명쯤 될까? 찾아보니 대략 사십만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략 오백만명 정도 된다.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매년 변하고 있는 수치니까 이 정도를 잡고 얘기를 해보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간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교사가 학생을 모욕했거나 학생에게 폭력을 쓴 경우부터 그냥 순전히 학생 본인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던 경우에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극소수일 것은 확실하다. 만약에 그 비율을 0.1%, 그러니까 1/1000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5,000,000×0.1% = 5,000. 즉 5,0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만약 0.01%라고 하면 어떨까? 약 5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는 가정이 된다. 0.1%면 5,000명, 0.01%면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만약에, 최근 언론에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보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은 그 0.01% 혹은 0.1%의 일부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0.1%라거나 0.01%라는 수치는 결코 큰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99.9% 그렇다.”라고 말할 때, 이 99.9%는 심리적으로는 100%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집단의 0.1%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0.1%를 가지고서 그 집단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체제의 위기를 예언하는 것은 오류이고 과장이다. 지금 몇몇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례를 찾아서 보도하며 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요즘 학생들”의 무서움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나는 딱 그런 모습을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0.01%만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수는 약 500명이 된다. 물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1년에 500건씩이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확률을 가정해본 것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몇몇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몇 년 전 몇 달 전 사건들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닌다면, 거의 1년 내내 그런 보도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자, 그럼 이제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어떨까?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교사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약 70%가 체벌을 한다고 응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교사들을 제외하더라도 약 20%의 교사들은 체벌을 ‘자주’ 한다. 전체 교사 집단에 이 비율을 적용해보자. 400,000×70% = 280,000. 400,000×20% = 80,000. 이십팔만명의 교사가 체벌을 하고, 팔만명의 교사가 ‘자주’ 체벌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롭게’ 체벌한다고 답한 교사도 3.8%나 되니까, 이 역시 1만명은 넘는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교사 1명은 학생 수십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학생 1명이 교사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란 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영향력은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체벌금지 이후’에도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추적하기보다는 굳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들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언론은 얼마나 공정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것은 센세이션 하지 못하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황색 언론의 논리이다.

  나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면서 지난 몇 년 간 교사가 학생의 뺨이나 머리를 때린 사건, 체벌 중에 학생이 골절상을 입은 사건 등 수십건의 ‘선정적인’ 체벌 사례들을 접해왔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이나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전혀 공론화하지 못한 사례들이 반을 넘는다.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것은 잘 문제가 되지도 않고 교사 집단 전체를 낙인찍을 이유도 되지 않고 교사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도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고 학생 집단 전체를 욕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가 되는 세상. 그 모습이 이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쓰고 있으니까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폭력을 쓰는, 폭력과 폭력이 맞부딪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든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누구든,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예컨대 범죄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처럼 엄격한 요건 속에 예외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며 어떤 사람들을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선정적 사건들을 캐내서 계속 뿌려대기만 하는 그런 언론 보도들은, 불공정하며 무책임하다. 그 언론들은 정작 그런 식의 부풀리기 보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혹시 그 몇몇 언론들의 보도 추세야말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학교 붕괴’를 직시하라

  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 애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더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 학교가 부여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교육 활동에 냉소적이거나 불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에 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교육이 노골적으로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학교에 차별과 억압이 심할 때,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삶에 관한 희망을 주지 못할 때, 학교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고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 때 ― 이럴 때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육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이유를 잃고 학교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미 1980년대,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학교 붕괴’ 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입시경쟁, 취업경쟁의 모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학교 붕괴’ 현상을 확산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득세하고 학교는 입시․취업기관 혹은 졸업장 발급 기관이 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열의를 갖고 따르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부동산 투기나 해라.”라고 대놓고 말하고,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학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붕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뭔지, 여기에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입시경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라거나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커다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교육이나 탈학교론, 공교육 재편론 등 여러 가지 논의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학교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또한 ‘학교 붕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보장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학교 생활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 학생인권 보장이야말로 학교가 가기 싫고 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재밌고 자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 아닐까? 누구든 진정으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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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ildaro.com/sub_read.html?uid=5588&section=sc5&section2=%BD%CA%B4%EB
    좀 더 다듬은 내용이 일다 기고글로 실렸습니다.

    2011.01.03 14: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9. 15. 14:26

교사도 폭행당하는데...학생인권조례 무색

평등학부모회 "교장사퇴, 사립재단퇴진" 요구

최정철(현장기자) 2010.09.15 08:25




교육-사회단체가 교사를 체벌한 경기도 평택의 H고교 학교장 김모씨 사퇴와 사립재단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H고교 앞에서 14일 오후에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공적인 영역인 교육과 학교를 사적인 족벌사학이 지배하고 운영하는 사립학교의 구조차체가 폭력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교장의 사과와 사퇴’, ‘사립재단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김태균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는 “학생인권실현을 위해 학생인권조례재정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학생의 ‘용의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교사를 체벌하였다. 교장이 학생 복장문제를 이유로 교사를 폭행할 정도면 학생들은 어떠하겠는가?”라며 해당학교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권오일 경기교육운동연대 ‘꼼’ 대표는 “학교장이 학생들 앞에서 담임교사를 폭행한 것은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패륜적인 행위다”라며 학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관계자는 “해당학교의 추가적인 불법행위와 비리행위에 대하여 조사 중이고 지속적인 대응 할 것”이라 밝혀 해당 학교의 문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을 경고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관계자는 “사립학교에 대한 징계권은 이사회에 있기 때문에 도교육청의 권한은 제한적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추가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밝혀질 경우 그 책임의 중함을 따져 교장의 해임 등을 지시할 수 있으며, 이사장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임원승인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여운을 남겼다.

이번 사건은 교장인 김모 씨가 지난달 24일,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 상태를 점검하면서 용의복장이 불량한 학생의 학급 담임을 체벌 했다. 체벌 당시, 학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교사는 칠판에 손을 짚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1~3대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벌당한 교사는 여성 2명을 포함한 총 7명이었으며, 일부 교사들은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이후 체벌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도교육청 게시판에 밝히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도육청은 두 차례 감사를 실시했고, 교장의 교권침해를 인정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모 교장은 도교육청 감사에서 “교육차원에서 때린 것”이라며 “이후 교사들에게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편, 평택에 위치한 또 다른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조퇴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치마를 들춰내는 방법으로 ‘생리검사’를 실시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 학교 또한 족벌경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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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2. 10. 01:4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고은채

종종 단어의 애초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변해서 처음과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도 숱하게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교권’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권이라는 말은 이미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교권이라는 말에 대해 학생, 학부모, 혹은 어떤 교사들이 느끼는 거부감 앞에 교권의 새로운 의미든, 교육의 진정한 의미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교사의 권리’를 말하는데 있어, 교권을 이야기해야겠냐는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교권이 땅바닥에 뒹굴뒹굴하고 있어도 아무도 주우려하지 않더라.”며 자괴감 가득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 옛날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고, 설령 있어도 한 줌도 안 되는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권은 종종 우리를 주목시키는 실체를 띠고 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학생간의 그 어떤 ‘문제들’은 ‘교권침해’로 정리돼 뉴스든 인터넷에서든 보여 지곤 한다. 이렇게 등장하는 교권은 이때 마다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 사회를 향해 개탄하기 때문에, 좀처럼 간과할 수도 없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잡는’ 권위가 교권의 실체는 아닐텐데, 지금의 교권은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이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 래. 서. 진짜 교권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기로 했다.

지난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마련한 교원 인권감수성향상 연수에서 교권을 파헤쳐 보는 기회를 가졌다. 교권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살펴보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자리였다. 교사그룹이나 학교, 사회에서 교권과 관련한 사건이 등장하지만, 교권이 무엇인지 깊이 이야기하는 자리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연수 정원을 넘어서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날개달기

연수는 교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첫 시간을 시작으로,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보면서 교권을 재구성하는 두 번째 시간으로 옮겨졌다. 교권을 구성하는 중심적 내용인 가르칠 권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그렇다고 생각되어온 배울 권리와의 관계,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통해 또다시 교권을 재구성했다. 이외 여교사의 눈으로 보는 교권, 비정규 교사와 함께 찾는 교권, 교권보장을 위한 조건을 탐색하는 생생토크로 이어졌다. 교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더불어 발걸음을 함께해야할 사람들을 확인케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는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봤던 두 번째 시간의 내용을 담기로 한다.


징계위기에 처한 6명의 교사가 등장한다.

- 교사 시국선언을 한 이유로 징계를 당할 상황에 처한 교사
- 수업부교재를 제작했는데, 내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하여 처벌 상황에 놓인 교사
- 작품으로 찍은 자신의 나체사진을 홈페이지 올려 징계 상황에 처한 교사
-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하고 체험학습을 간 이유로 징계 상황에 놓인 교사
- 교육감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한 이유로 징계에 처한 교사
- 연가를 냈는데 교장이 허가하지 않아서 근무지이탈로 징계에 처한 교사


사연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내용이 담긴 이야기쪽지로 만들어 모둠별로 나눠준다. 해당 모둠에서는 교사의 사연을 보고, 교사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마련한다. 교사를 징계할 수 있는 논리, 교사의 잘못을 추궁하는 논리를 만든다. 모둠별로 해당 사연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모둠별로 순차적으로 발표를 한다. 이때 나머지 다른 모둠은 징계에 처하게 된 교사의 입장에서 변론을 한다. 다른 모둠에서 변변한 변론이나 논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해당 교사는 정말 억울한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정한다.


더불어 날개짓

덕만의 역사수업은 학교에서도 인기가 남다르다. 바로 지난해부터 만들어 사용한 수업 부교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그것이다. 학생들의 눈이 이처럼 초롱초롱했던가? 스스로 놀랄 정도이다. 특히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아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던 현대사 시간에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돼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덕만은 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좀더 꼼꼼히 챙겨볼 요량으로 인터넷과 출판된 자료에서 몇 가지 사건과 기록을 옮겨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내용으로 수업을 했을 뿐인데 기대이상의 아이들 반응에 이것저것 의욕이 샘솟던 참이었다.
하지만 최근 덕만에게 불어 닥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칼바람에 초롱초롱 눈빛도, 샘솟던 의욕도 오간데 없어져 버렸다. 국가보안법이 위반이라니…?? 이 무슨 난데없는 일인지.
바로 덕만이 만든 수업 부교재 때문이었다. 제주 4.3항쟁과 광주 5.18 항쟁에 대한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적을 찬양·고무’한다는 감정서를 들이밀며 검찰에서 덕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미 두 사건 모두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까지 한 역사적 사건이건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게다가 덕만이 사용한 자료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과 글들로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 그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교육해야 한다면, 교사는 대체 어떤 존재란 건지.



* 사연 중 부교재 제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현재 재판 중에 있다. 재판 대신에 학교 징계위원회 상황으로 바꿔 이야기를 꾸며봤다.

발표를 맡은 모둠은 실제 징계위원회 위원처럼 해당 교사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징계위원회, ▶덕만 교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 “교사가 학교장의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부교재를 만들어 사용해도 됩니까? 교사로서의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것도, 이처럼 불순한 내용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다니.. 보세요. 이걸!”

▶ “5.18과 4.3항쟁 같은 사건은 이미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에요. 게다가 덕만 교사가 만든 교재 내용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요. 덕만 교사를 징계한다면 이런 책과 인터넷의 글도 처벌받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 “문제는 학생들이라는 것이죠.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요.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을 의식화하는 것 아니고요. 괜히 아이들한테 갈등과 혼란만을 조성하고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이건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는 것이에요. 미성숙한 아이한테 교사가 맘대로 교육하고 있는데, 아이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교사를 그만두게 해야지.”

▶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니요. 학생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데, 다양한 의견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요.”

▷ “그런 얘기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가 쭈~욱 지켜봤는데, 덕만 교사는 연가투쟁에도 참여하고, 지난 4년간 지각을 5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년 봄인가? 교직원회의도 불참했던 것 같고, 교사회식도 잘 참여하지 않아서 교사간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사사건건 불란을 일으켜 온 교사라고요.”

▶ “교장선생님은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에 대해서 그만 말씀하시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광주 5.18 운동 이제 학교에서 교육하라고 하는데, 왜 덕만 교사를 징계하려고 그럽니까?”

▷ “아이고, 이보세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요즘 이 교육 못하게 하는 거 몰라요? 선생님은 어떤 학교에 계신 겁니까?”


외부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학교의 많은 붙임 현상을 표현하는 참여자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나. 상황극은 이렇게 씁쓸한 웃음을 불러내기도 했다.

“애들의 귀를 막을 수 없지 않느냐”는 교장의 발언에서 수동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관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을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교사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수업도 허용할 수 없는,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마련된다면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가능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학생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동등한 관계 형성은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학생은 학습권 보장에 일차적 조건이 된다는 것.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교권의 이름으로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보장되기 어렵다. 학생과 교사의 ‘물고물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다시 확인되는 찰라다.

재구성 되는 교권에는 이처럼 교사/학생의 관계를 다시 읽으며 짚어본 가르칠 권리 외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빼앗기는 것, 시민으로 누리지 못하고 박탈된 권리들도 이야기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업무 분장, 휴가처리, 수업수당의 문제는 교권이라는 말로 이야기된다. 현재 학교나 교사그룹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교권 침해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는 “정말 이렇게 한 줌이냐? 수호하자고, 힘주어 애써 골몰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처리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교권의 전부인 것이냐”고 되묻는다. 아니, 재구성된 교권에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교사로서의 권리, 혹은 교사로서의 지위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들이 이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교권을 바라보는 눈은 깊고 넓게 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2:12:5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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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 21. 12:13

레쓰가 찍은 사진.


-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 갔다 왔다. 1월 19일 화요일, 경기도교육청.


- 4시간이나 앉아 있었더니 매우 힘들었다;;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1
:  일단 몇몇 패널들의 경우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꼼꼼히 읽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어느 패널은 학생인권조례 전반을 지지한다면서도, 학생인권조례 안에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실제로 이미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 4조 3항에는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걸 실현할 방법은 인권교육이면 되는 것이고...
이런 류의 내용들이 패널들 발제 중에도 꽤나 많았다. 좀 제대로 읽고 하자구 -_-;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2
: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얼마만큼의 지지를 보내야 할까?
사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곳곳이 타협의 산물이다.
두발복장규제 부분이나 집회의 자유 등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특히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학교는 정당한 사유와 제19조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학교의 규정으로써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제17조 (의사 표현의 자유) ② 학생은 수업시간 외에는 평화로운 집회를 개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 

12조는 일부러 양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만들어진 조항이다.
순수하게 논리적&인권적으로만 해석하면, '두발복장의 자유는 보장된다. 특히 학교에서의 길이 규제는 확실하게 금지한다." 즉 두발복장의 완전한 자유를 선언하고, 그 중에서도 문제점이 심각한 사안인 길이 규제를 특별히 명시한 걸로 볼 수 있다.(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초안대로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이렇게 주장하며 써먹을 거다.)

그러나 부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면 이 조항은 두발복장의 완전한 자유화가 아니라 두발길이만 자유화하되, 그 외의 조항에 대해서는 학교가 민주적 절차를 밟아서 제한 규정을 둘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현재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생각하면 이런 조항은 결국 두발복장규제를 정당화해주는 내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건 두발길이 자유를 확실히 명시한 것만으로도 논란이 이는 조항이지만 -_-

17조도, '수업시간 외'로 명시한 것은 사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이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집회의 자유를 당연히 가진다. 다만 수업을 빠짐으로써 생기는 개인적 불이익(결석처리, 수업 내용을 듣지 못함 등)을 감당해야 할 뿐이다.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 와 같은 내용도 집회의 자유에 대한 법률 외의 부당한 제한을 정당화해주는 것이다.

이 조항은 다만 학교 안에서 수업시간 외에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자체가, 학내 시위/집회 자체를 불온시하는 현재 학교 실정에서는 커다란 진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밖에는 뭐 "제15조(정보의 권리)  ① 학생 또는 보호자는 학생 본인에 관한 학교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할 권리를 가진다." 정도만 뺀다면,(왜 보호자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거임?) 크게 불만스러운 조항은 없는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드러난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정세와 전선상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좀 짜증나는 일이다. 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초안 내용대로만 제정되면 그 자체로도 훨씬 낫긴 하겠지만. 이번 공청회에 나왔던 개그 발언 중 하나를 인용하자면, "마시멜로를 한 입에 먹지 마라."?????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3
학생인권조례 반대는 인종주의다.(笑)
그날 토론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패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성숙'이었다. 특히 뭐 학교운영 참여나 교육정책에 의견 반영이나 두발복장 자유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랬다.
(예컨대 이런 기사도 그렇고 )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된 내용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예를 들면, 독일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운영에 학생 대표가 참여한다고 알고 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때의 차이는 대표 수의 차이 정도?
그렇다면 왜 유럽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인데 한국의 청소년들은 특별히 '미성숙'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인가?? 한국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국민성이 저질이고 지능이 떨어지거나 발달이 느리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국 실정은 외국과 다르다...는 류의 말이 1-2회 나왔으나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언급된 건 '입시경쟁'밖에 없었다. -_- 결국 "한국 실정은 다르다"라고 참 쉽게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고 그게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논증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지능이 떨어지거나 발달이 느린 사회적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이는 매우 인종주의적이거나 지역주의인 발상이다.
한국인은 열등해서 청소년들이 다 미성숙해요 우와아아앙??
아니면 유럽에서는 물이 좋아서 청소년들이 빠르게 성숙해지는 것인가?!?!?!
(사회적 이유로 설명 가능한 경우에도, 그러한 사회적 이유를 바꾸도록 노력하자는 게 결론이어야 하지 참여시켜선 안 된다가 결론이 되진 못한다.)





- 좀 더 힘을 내서, 학생인권조례에 들러 붙어 보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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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치 김상곤..을 막까지 못하는 그런 ㅁㄴㄹㅇ

    2010.01.21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 ㄴㄴ
      김상곤보다는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훨씬 나음.

      2010.01.21 14:28 [ ADDR : EDIT/ DEL ]
  2. 저번에 했던 이야기가 이거군.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인권조례는 산넘어 산일듯ㅡ.ㅡ

    2010.01.22 14:29 [ ADDR : EDIT/ DEL : REPLY ]
  3. 미성숙이란 건 결국 자연의 상태에서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소리인데 사회화가 되게 하려면 사회 참여를 열어줘야(응?)

    2010.01.22 19:30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분들(중 일부)은 학교에 가둬 놓고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주입하고 두발규제를 열심히 시키고 체벌을 하면 사회화가 된다고 믿는 거 같아요

      2010.01.23 00:06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9. 12. 04:13

국민일보 사설 : 제자의 성희롱에서 교권이 읽힌다



1. 이 사건을 두고 교권 실추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지랄맞은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은 교사의 권력/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서 여-남 사이의 성별 권력이 이를 넘어선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장이나 교감, 또는 동료 교사 등이 여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에 대해 아무도 '교권침해'를 말하지 않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교권'은 교사가 상급자(정부, 관리자 등)에 대해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하급자(학생)에게 가지는 권력/권위라는 인식이다.



2. 또한 우리는, 저런 식으로 '농담'(??)을 던지는 식의 성폭력(그걸 성추행이라 하든 성희롱이라 하든 성폭행이라 하든)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게 그 빈도로는 훨씬 많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게 "이건 인권침해다"라고 반응해왔는지도 물어봐야 할 것이다.



3. 이 국민일보 사설에서 기간제 교사,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 건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근데 마지막에 대학입시 어쩌구 하는 문장은 좀 쌩뚱맞게 보인다. 뭐든지 대학입시랑 전인교육 문제냐.



4. 어찌 되었건 저것은 성폭력이다. 여성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처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생활 현장이 그렇듯이, 학교 현장은 단지 교사-학생 권력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관계와 맥락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어쨌건 나는 이걸 연애-사랑을 상품화하고 '소유' 양식으로 만드는 사회,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고 '교권실추'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5. 인터넷에 떠다니는 동영상 중에서 얼굴 다 알아볼 수 있게 된 동영상들을, '충격' 이러면서 퍼나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의 권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성의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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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jung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제가 아는 여교사 한 분은 "나는 그거보다 조금 덜 한 일을 학교(당시 남자중학교 근무)에서 종종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위안삼았으면 좋겠네..." 라고 저를 위로하더군요.

    2009.09.14 11:40 [ ADDR : EDIT/ DEL : REPLY ]
    •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성폭력의 피해자...라고 하더라구요

      2009.09.14 23:2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