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21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7)
  2. 2008.07.14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2)
걸어가는꿈2011. 9. 21. 17:36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소식지인 아수라장 ( http://news.asunaro.or.kr/ )에 싣기 위해 쓴 글입니다.





무상급식 그거, 참 별거 아닌데


  지난 8월 24일,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의 지원범위와 대상에 관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제는 전(前) 서울시장)의 꼼수로 들어간 시행 년도나 "단계적", "전면적"과 같은 문구를 빼고 그 논쟁의 중심을 살펴보면, 이는 결국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초등학생/중학생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이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만" 급식비를 면제할 것인지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무상급식"이란 것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급식을 따로 급식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정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건 바꿔 말하면 그냥 무상급식을 할 거냐 말 거냐의 논쟁인 셈이다.

  입장을 막론하고, 지금 한국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과열되어 있다. 한국 정부의 예산이 한 해에 200~300조를 넘는 게 보통인 마당에, 그 1%도 안 되는 몇천억 정도1) 예 산 더 쓰는 것 가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상급식 하나 한다고 보편적 복지가 시작되고 학교에 차별이 사라지며 공동체의식이 길러지고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무상급식"을 하나의 상징 삼아서 복지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는 건데, 이 "무상급식"이라는 게 아무래도 덩치도 작고 복지 정책으로서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지라 논쟁이 자꾸만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이 조그마한 무상급식 하나 가지고 그리 아웅다웅 하는 꼴이 안타까울 수밖에.


무상급식의 인권적 의미와 장점?

  뭐 어찌 되었건 나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편이다. 교육권과 먹을 권리는 인권 중의 하나로,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수준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특히 국제인권협약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개방되도록 하기 위해서, 초등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국가는 그럴 능력만 있다면 중등교육, 고등교육(대학)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령 빈곤층에게 교육비를 면제하거나 지원하는 등의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비를 면제받기 위해서 별도의 증명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그 자체가 교육을 받는 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 때문에, 교육은 공짜가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급식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이고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기 때문에 무상교육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한 적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은, 우리 사회가 사람의 먹을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사회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권리로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친권자들에게, 모든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은 친권자가 자기 자녀들에게 하는 '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친권자가 자녀에게 "내가 내 돈 내서 너 학교 보내니까 내 말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소유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보장적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만화. 시사IN 205호(2011.08.20.) 중에서 인용


  또한 무상급식은 효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래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게 된다.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모으고 사용하는 걸 제한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부처들이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때문에 빈곤층에게 급식비를 면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빈곤층인지를 입증하고 확인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이 정말로 빈곤층인지를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다 공무원들 인건비 등등 돈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오세훈 전 시장께서 주장하신 돈 못 버는 하위 50%만 급식비를 면제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의 맹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그 이하를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여러 맹점이 생기는 판국에, 전체 시민들의 소득을 파악해서 그걸 반으로 자르는 선을 정하고, 그 선 위인지 아래인지를 다 선별하도록 하겠다고 한 셈이니, 행정적으로 가능한 일일 리가 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하게 되면 소득을 파악하는 것은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에서만 하고, 대신에 소득과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합당한 세금을 내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외의 다른 복지 시스템에서는 선별에 들어가는 절차와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세금 정책과 함께한다면 보편적 복지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나은지는 그때그때 영역과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무상급식 따위!

  가끔, 내가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것을 놓고 그런데 왜 복장자유화에는 찬성하냐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는 무상급식을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 '눈칫밥'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싶다. 일단 복장을 자유화함으로써 생기는 개성의 자유 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급식을 유상으로 함으로써 생기는 일은 도저히 없을 것 같으니,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수다. 만일 이처럼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무상급식이라는 게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기라도 해야 한다. 뭐, 지금 많은 학교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출해서 다른 음식을 사먹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급식비를 학교가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학교의 억압적이고 일괄적인 방식과 문화의 문제이다. 특히나 학교들은 급식 자체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더 늘릴 필요도 있겠고. 급식의 질 향상과 식단의 다양성, 선택권 보장은 무상급식 이후에 급식을 계속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면, 무상급식과 강제교복을 비교하려면, 교복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어지거나 모든 학생들, 청소년들에게 옷을 살 돈이나 상품권이 주어지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솔까말, 나는 강제교복을 없애고 복장을 자유화하면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빈곤층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에, 그러면 옷 살 돈을 정부에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 역시 무상급식처럼 가능하면 모든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옷 살 돈을 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터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미안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대부분의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에서는 현실이다! 아동수당 제도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동수당은 1926년에 뉴질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건데, 아동이 있으면 소득이 얼마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그 집에 돈을 주는 제도이다. 국가에서 양육을 책임지는 방식인 것이다. 독일은 월 184유로(약29만원정도)에 아동이 많을수록 추가수당이 있고, 스웨덴은 16세 이하 아동에게 월 950크로나(약12만원)에다가 학교에 다니면 주는 추가 수당, 병이 있으면 주는 추가 수당, 아동이 많으면 주는 추가 수당 등 여러 추가 아동수당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2010년부터 15세 미만 아동 1인당 월 26000엔(약36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을 준다. 지금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좀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한 국가들 중에 아동수당 제도가 없는 데는 미국, 터키, 멕시코, 한국뿐이다. 2)

  그래서 최근에 독일에 가있는 분이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 이야기에 대해 독일은 무상급식을 안 하는 이유를 얘기하길 ① 독일은 오후까지 수업을 안 해서 학교에서 밥을 안 먹는 경우가 많고 ② 독일은 급식을 무상으로 주기보다는 급식비나 밥 사먹을 돈을 국가에서 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 흑흑.

  물론 아동수당이 한국에 도입되면 죄다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말 거라는 씁쓸한 예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 돈이 반드시 아동․청소년들에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생활비의 형태로 쥐어지게 만드는 제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기사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상급식 덕에 굳는 급식비마저도 사교육비로 지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건 복지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교육의 문제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상급식을 생각할 때마다 영 찝찝하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도 모두 무상교육으로 만들라는 요구쯤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아동수당은 되어야 좀 복지 정책으로서 제대로 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3)은 못할망정. 그러니까 이제 우리(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좀 강하게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라에다가 우리한테 돈 좀 내놓으라고. 아동수당도 내놓고 교육비도 좀 더 쓰라고. 체벌을 하라고 하지 말고 교사 수, 교실 수를 늘리라고. 빈곤층 핑계 대며 교복을 입히지 말고, 옷 사 입을 돈을 내놓으시라고. 그 별 거 아닌 무상급식 따위 하나 가지고 벌벌 떨지 좀 말란 말이다!





1) 주민투표 당시 자료를 보면, 서울시 초등학교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필요한 예산이 약 600억 수준이었다. 급식 질을 좀 더 높인다고 해도 900억 정도일 테니, 전국 실시에는 최대 4000억 이하일 것이다.

2)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12세 미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직 통과 안 됐지.

3)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쉽게 말해 매달 모두의 통장에 30만원씩 국가가 입금을 해준다고 상상해보시면 된다. 보편적 복지 중 현금 부문의 완결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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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ㄷ

    쓰레기같은글 잘읽었습니다

    2011.09.22 01:26 [ ADDR : EDIT/ DEL : REPLY ]
  2. ㅇㅇ

    "한편에서는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면 친권자들이 가지는 그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서 너에게 돈을 이만큼 투자했다." 하는 의식은 많이 누그러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진보적 상식 - 애들 키우느라 뼈빠진다(그래서 복지가 확충되어야 한다) - 속에 감춰진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신선하네요.

    2011.09.22 14:20 [ ADDR : EDIT/ DEL : REPLY ]
  3. 하얀저고리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2011.09.25 10:2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14. 17:13
아수나로북에 들어가는
급식, 청소년인권, 먹거리, 식품, 생태적 먹거리, 건강권 뭐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급식 괴담을 아는가? 국에서 바퀴벌레 시체가 나왔다거나, 구더기가 나왔다거나, 몇몇 사립학교들 같은 경우는 급식비는 비싼데 급식의 질이 형편없는 걸 봐서는 뭔가 비리가 있다는, 뭐 그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말이다. 학생들이 벌레 등이 들어간 급식을 먹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급식해저드>라는 만화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적 괴담(?)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급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이라거나, 어느 사립학교에서 급식비리가 있었다거나 하는 생생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듣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vCJD(변종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위 ‘광우병’. 나는 소에게 “미쳤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광우병이라는 이름에 반대한다.) 위험 쇠고기까지 대두되면서 먹거리의 안전성이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중요한 청소년인권 문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건강권/안전할 권리와 알 권리(식품과 소비자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두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아주 중요한.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라!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지적하자면,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는 것일 터이다. 특히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인 청소년/학생들(그리고 교사들)의 급식운영 참가는 중요하다. 급식운영에서의 예산과 시설, 그리고 전반적인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학생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학생 급식 담당자들을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급식의 문제 중 상당수는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그저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사육’당한다고 느끼는 데는 그런 급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급식운영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도, 소수의 사람들만 급식운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급식운영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고, 수시로 학생들이 운영에 참여하거나 급식시설을 체험/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급식 과정과 가까워지고 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위탁급식(급식업체에 돈을 주고 급식을 맡겨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직영급식(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다. 기업을 거치는 위탁급식보다는 아무래도 직영급식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여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영급식은 기업의 이해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 직영급식은 위탁업체보다 식중독 발생률이 낮다. 급식 위탁업체는 급식 시설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모든 학교의 급식을 직영화하기는 어렵겠으나 점차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시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급식운영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vCJD 위험 쇠고기의 경우에도, 이런 직영급식과 학생들의 민주적인 참여와 통제를 통해 vCJD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사용될까봐 불안해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도 비민주적인 정부의 독단에서 비롯된 문제다.)




먹거리는 그냥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급식운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기초이다. (그 기초조차 안 되어 있어서 입 닥치고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지만 -_-.) 이제 우리는 식재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자체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어딘가에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식재료들과 식품들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었는지도 모르게 근처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돈 주고 샀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알 권리나 건강권, 민주주의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거나 ‘복불복’ 식으로 운에 맡겨지게 된다.
  그 대안으로 유통과정을 축소시키고 생산지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생산 과정이나 방식 등을 최대한 공개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시스템이나 산지 직거래 방식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방식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좀 더 소통하게 되고 좀 더 민주적으로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생산 과정에서 더 생태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먹거리는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 논리만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무상급식 :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급식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단 무상교육의 이념 속에서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도 무상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상급식은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건강한 먹거리는 돈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라도 무상급식은 필요하다. 예산 해결을 위해 성금이나 기부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 기본은 공짜 급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내가 생태적 먹거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가겠다. 생태적인 먹거리의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살충제나 화학비료, 성장촉진제 같은 수단(생태계를 파괴하고 먹는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한 가지 종류의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농약, 살충제에 의존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가며)함으로써 생태계를 붕괴시키거나 동물들을 매우 파괴적인 환경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쩔도록 투여해가며 대량사육하는 등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이 아닌, 좀 더 생태계를 존중하는 생산 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를 ‘생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인 먹거리는 지속가능한 식량생산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기만일지언정 조금 더 동식물 윤리적인 생산을 위해서도, 마지막으로 그 먹거리를 먹는 사람을 위해서도 꼭 실현되어야 한다. 특히 vCJD나 조류독감 등의 질병이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하는 축산업 시스템에 의해 더 쉽게 전염되고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생태적 먹거리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소의 vCJD와 관련하여 소를 죽인 나이가 20개월이나 30개월이니 말이 많은데, 실제로 소의 평균수명은 약 20년이다. 그런 소를 2~3년 동안 성장촉진제와 동물성 사료, 항생제를 먹여가며 강제로 빨리 키워서 죽이는 이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이거나 생태적인 걸까?)
  이런 생태적 먹거리들이 현재로서는 비싼 축에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싼 가격에 사먹었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들이 그 싼 가격 대신 얼마나 많은 생태적 가치 등을 희생해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생태적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육식과 대량소비에 익숙해진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급식에 적용한다면, 학교 차원에서 직접 학생, 교사와 함께 농사나 양식 등을 통해 생태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먹는 식량을 다 조달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어떻게 먹거리가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지역의 학교들과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고 안전하고 생태적인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나는 학생들이 급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과정, 설거지 과정 등에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학 문제 몇 개 더 푸는 것보다 중요한 교육은 이런 가사노동 분야이다. 30대가 되도록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어서 요리책에 의존하거나 일부 여성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결국 성별분업 논리(사실 급식을 맡아서 만드는 직원들의 다수는 여성이다.)물론 수백 명, 수천 명의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학생들이 하루종일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학생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급식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 등과 학교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먹이는’ 존재가 아니다

  급식을 비롯해서 먹거리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 또는 보호해야 할 대상 정도로만 취급하는 태도이다. 급식문제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심정” 운운하는 것은, 성별분업적 표현(왜 항상 어머니가 먹거리를 걱정하는 제1순위 주체인가?) 때문에도 옳지 못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도 옳지 못하다. 학교에서만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정책도 그렇다. (특히 2007년 무렵부터 있었던 “아이건강국민연대”는, 비록 그 운동 내용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관점을 고집하고 있는 면이 많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물론 먹거리나 건강에 관한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로만 이야기하는 건 사기다. 거짓말이다. 먹거리를 만들고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구조가, 사회적 시스템이, 생활양식과 패턴, 환경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건강권을 맡기겠다는 건 무책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의 급식이나 먹거리 관련 운동이나 정책들은 아동-청소년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파악하지도 않았고, 그 운동의 운동주체로 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민주적인 급식이나 학생들의 참여 같은 중요한 부분들은 간과되었다. 교사나 부모들은 때때로 편식을 못하도록 ‘급식지도’를 한다면서 체벌과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나 과자 같은 것이 뭐가 문제이고 왜 소비함녀 안 되는지를 알리고 스스로 소비를 줄이도록 하거나 그런 문제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에서만 탄산음료를 없애는 이상한 정책을 쓰기도 했다.
  급식이나 먹는 것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강제적·강압적인 방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영양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킬 정도라면 의학적인 처방과 지도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 급식지도는 설명과 설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설명과 설득에 근거하여 교육하지 않으면, 강압과 강제를 통한 급식지도는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효과를 볼 뿐이다. 급식지도는 뭐도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고 몇 분 안에 먹어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 생산의 생태적 문제점들이나 알 권리, 먹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식성(그것이 취향이건 종교적/사상적 이유건)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야 할 것이고, 다양한 음식들을 자율배식하는 형태가 가장 좋을 텐데 일부 식단에서는 조정 과정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탄산음료 금지 같은 정책도 좀 우스운데, 학교에서만 금지하는 것, 그리고 청소년에게는 탄산음료가 해롭다고 금지시키려고 하면서 비청소년(어른)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는 사고방식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학교 밖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단 말인가? 탄산음료는 특히 청소년들에게만 유해하고 비청소년들은 아무 문제 없단 말인가? 탄산음료나 과자 등이 그렇게 건강에 해롭다면 그냥 소비하도록 냅두는 것은 분명 좋은 정책이 아니며, 그 유해성을 충분히 알리고 강조할 필요는 있다. 아니면 차라리 생산자(기업)를 규제해야 할 텐데, 기업을 상대로 탄산음료나 과자 생산을 규제하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좀 더 만만한 소비자-청소년들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논리에 기대어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먹거리를 ‘먹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먹거리를 ‘먹는’ 존재이며, 그 먹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꾸 ‘아이들의 건강권’을 들먹이며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먹이네 마네 어른들끼리 떠들지 말고, 청소년들과 함께 뭘 먹을지 말지, 그리고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만들고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천하자. 당신들이 대신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아이들의 건강권’이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건강권’을 우리의 제대로 된 인권으로 돌려받아보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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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요. 누구 말대로 정말 우리는 밥상에서 매일매일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투표해야 하는데 말이죠.

    2008.07.21 17:3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