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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0 법과 인권(2) : 인권운동에서 법의 위치
걸어가는꿈2009. 9. 20. 18:14



법과 인권(1) : 법전문가면 인권위 들어와도 되는 거니?




사실 (1)은 인권과 법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 논하려고 예전부터 생각하던 글이었는데,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 사태를 맞이하여, 시의성을 생각해서 좀 연관지어 썼습니다.

(2)는 그런 시의성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습니다만
어쨌건 이쪽 글이 옛~날부터 좀 더 쓰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류은숙 씨가 회의 자리에서 "운동과 정치로 풀어야 할 인권 문제를, 법에 청원하고 소송하고 진정해서 풀려고 하는" 운동방식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걸 인상깊게 들은 후부터?




ㄱ.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대상이자 수단입니다.

죄송합니다. 낚시입니다. 설마 안 낚였겠죠;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권활동가라면 저런 소제목에 고개가 갸우똥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갸우뚱이 아니라 갸우똥인 게 포인트..?)


그렇다고 저 말이 딱히 틀렸단 건 아닙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대상입니다.
다만, 그 말의 뜻은 법이 인권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이야말로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주체이자 대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 겁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니면 "사람이야말로 인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과 비슷한 뜻입니다.

하지만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대상이다."라고 한다면, 그 말은 법이 인권운동과 여러 부분에서 관련이 있기는 한데 이 관계가 뭔가 어중간하고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앞서 <법과 인권(1)>에서 "인권은 법이나 제도로 구현되려 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입니다. 어떤 인권을 주장할 때 그 목적은 대개 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목적이 법과 제도만은 아닙니다. 인권운동은 사람들의 인식, 언어, 문화, 시설,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과 제도는 그 인권운동의 구체적인 성격과 맥락 등에 따라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법은 많은 경우 어떤 인권운동의 목적이 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목적들 중 하나이더라도,  반드시 핵심적이거나 주요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대상입니다.
인권운동은 기존에 존재하는 법을 대상으로 그 법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넓은 의미의 법계(입법/사법/행정)을 대상으로 하여 인권교육을 하고 압박을 가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의 법이나 결정례 등을 이끌어냅니다.
또, 논리적으로, 법은 인권을 기반으로 성립합니다. 모든 법은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혹시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 인권의 눈으로 감시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정문에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고 써있다더군요.
인권은 국가, 법, 정부, 기업, 사회 등에 대한 영원한 감시의 대가일 겁니다.
아- 물론 감시만 한다고 해서 인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요 ;
법치사회에서 법이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고 정부가 움직이는 기본 장치인 이상, 법은 인권운동의 주요 대상 중 하나입니다.
인권운동은 (광의의) 법을 바꾸고 만들고 없애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인권운동의 대상은 법만이 아닙니다.
인권운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것들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법은 그 한 일부일 뿐입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수단입니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통해서 인권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이 인권운동의 일부이니까요.
어떤 법을 이용해서 민형사/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피해를 구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운동 수단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법을 활용한 인권운동 방식은 몇 가지 더 있겠죠.
넓게 보면 입법운동 같은 것도 법을 인권운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수단으로서 법은 일부일 뿐입니다.
운동의 목적, 성격, 사회적 분위기 등에 따라서 법이 운동에서 얼만큼 비중있는 수단이 될지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강제야자에 저항하는 운동과 부당해고에 대항하기 위한 운동,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 지문날인제도를 없애기 위한 운동, 장애인들의 주거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 입시경쟁교육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각각 법을 활용할 수 있는 운동도 있고 활용할 수 없는 운동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권운동과 법은 여러 가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근데 그건 사실 법이 특별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  법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권운동과 법에 대해서 살피기 위해서는 법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법/법학에 있어서 인권이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분명한 것은 인권운동에 있어서 법과의 관련성이 그렇게 결정적이고 지배적인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ㄴ. 법은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법학 자체만을 들입다 파는 분들 중에는 간혹, 법을 법 체계 내적 논리로 쌓아올린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건축물로 보는 것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뭐 법학자 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법이론들을 쌓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선 좀 다른 부분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법이 사회 속에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때로는 어떤 법이나 판결을 뒷받침하는 법 이론 같은 경우에도, 사후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오는 때도 있습니다. 사전에 논리적 근거가 되는 게 아니라요. -ㅇ-)

법이라는 게, 헌법이나 국제법 등의 근거에서부터 좌르르륵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단일하고 깔쌈한 건축물 같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온갖 사회적 사건, 이야기들과 권력이 작동하고 반영되면서 뒤엉켜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녀석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어떤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이고 부정의한 현실'에 부딪쳤을 때 '정의롭고 합리적인 법'에 호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도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법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을 조장하려는 건 아니지만요-----

법이 그렇게 확고하게 믿을 법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불의하고 반인권적이고 잘못되어 있다면, 그 사회의 일부인 법도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꽤 많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건 명문화된 법률이나 조례 등을 포함해서, 그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사법/행정 체계 등을 모두 말합니다.)

우리가 종종 잊는 것은, 국회의원이든 법률가(판검사,변호사)이든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지, 단지 정치/법률전문가는 아니라는 겁니다.
판사가 한 어머니/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에게 체벌을 가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가정에서의 체벌 사건(학대로까지는 인정받기 어려운)에 대해 인권적인 판결을 내릴까요?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종교수업 강요에 대해서 낸 민사소송 2심에서 패소했을 때, 2심재판 판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종교사학과도 친분이 있다는 식으로 문제제기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데 작용하는 것은 주로 사회적 다수의 생각(편견/선입견/상식 등등 모두 포함),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의 이해관계 등등입니다. 특히 소수자 문제 같은 경우는 문제가 두드러지기 마련이겠지요.


예를 들어 '체벌'에 대한 법규나 판례들을 생각해봅시다.
가정, 학교에서의 체벌은 모두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해석에 의해서 분명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도 그렇고, 국제 고문방지협약에서도 체벌을 고문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초중등교육법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체적 처벌을 가하여서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는 체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도 이미 이 법이라는 게 사실은 기존 사회의 분위기, 인식에 따라 좌우된다는 게 분명해보입니다.
근데 또 문제는, 이 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도 사회적 인식이 개입됩니다. 체벌 관련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사회적 상규"입니다. 사회적 상규에 어긋난 체벌은 처벌 대상이라는 겁니다. 뭐,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_-  여하간 여기에서 체벌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교육상 불가피"한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는지 안 어긋나는지입니다.

꼭 이 예시가 아니더라도 다른 수많은 경우에서도 우리는 법조항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법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와 인식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는 걸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법조계는 그 특성상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법이 사회적 권력과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며, 그리 정의롭거나 합리적이지 않기 쉽다는 것.
두번째는, 소송을 걸고 법을 가지고 법정이나 의회에서 다투는 과정 또한 단순히 법리를 가지고 다투는 게 아니라는 것. 사회적인 인식과 분위기 등을 반영한 과정이라는 것.
심지어, 입법운동을 하는 경우에도, 입법운동은 단순히 국회의원 몇 명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을 설득하고, 그 집단들과 힘겨루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회적 인식의 좌표를 움직이는 것이 필수불가결합니다.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까지 올라갔다가 교총 등의 반대 움직임으로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조항이 빠진 것 등등의 사건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법은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규범/힘을 가지고 있지만, 법이 바뀌는 것은 현실이 일정부분 바뀐 것이 반영된 것일 때도 많습니다.




ㄷ. 운동방법론 차원에서 법

운동방법론적으로 법을 수단으로 삼아서 투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법이라는 게, 전문가나 정치 엘리트 등이 아닌 인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법조항을 구성하는 법률용어들 같은 것이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같은 문제도 있고,
또 재판을 건다는 게 은근히 돈이 많이 깨지는 일입니다. (공탁금, 변호사비용 등등)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법률상 무능력자이기 때문에 혼자서 소송을 걸 수도 없죠.
그리고 법은 특성상 시간을 질질 끌기 쉽습니다. 소송 한 번 걸면 판결 나오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게 드문 일도 아니죠.

특히, 소송의 경우에, 소송 걸었다가 패소라도 하면 좀 시ㅋ망ㅋ입니다.
들인 온갖 공에 비해서, 타격만 잔뜩 입는 거랄까요 =ㅂ=  뭐 모든 투쟁들이 패배할 경우에 일정한 타격이 있긴 한데, 재판은 특히 그 패배의 결과가 너무 눈에 보이게 명백해서 참 아프죠.

입법운동 같은 경우는 그나마 국회 안의 정당 의석수 상황이나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할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소송은 그런 '정치'의 여지도 많지 않기도 하지요.


인권운동의 속에는, 알게모르게 '직접민주주의'랄까 '인민주권'이랄까 그런 이념이 녹아있습니다. 직접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뭐 더 민주주의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소송이나 입법운동은,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움직이게 하기에 참- 안 좋은 방식입니다. 거기다가 투쟁이 개인화될 위험도 있는 방식이죠.
확실하게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그걸 통해서 일정한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소송 이후에 운동에 조직적으로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승소하지 못하면 잃는 건 왕창 크고, 아무래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방식인 게 사실이지요.

혹시라도 법 투쟁을 지르려면, 패소하더라도 운동이 받게 될 타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인지도, 조직력 등이 있어야 하겠지요.


법을 인권운동의 수단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야 없습니다.
하지만 법을 활용한 운동이 인권운동에서 그리 효과적인 활동이 아닐 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은 어쩌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닙니다. 그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장치 중에 하나일 뿐이죠.




* 차라리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을 많이 뛰거나,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법조계로 들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그럴 재주와 의욕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딱히 말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영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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