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10.03 21:22


[논평] 교육부는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지 말고 학생인권 보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 교육부의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 보장 등' 정책에 대해


  교육부가 학교에서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칙, 연애(소위 "이성교제")나 신체접촉을 이유로 징계를 하는 학칙 등을 개정하도록 점검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 없이 인권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 당연한 조치였다고 할 것이다. 학생의 사랑과 교제에까지 학교가 간섭하고 강제하는 것은 학생의 사생활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짓밟는 반인권적․반교육적인 행태라고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학생 비혼모 등 임신․출산한 학생에 대한 차별 문제도 여러 차례 개선 권고가 있었다. UN아동권리위원회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각각 임신․출산한 학생에 대한 차별과 교육권 박탈 등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바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도 임신․출산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었다.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그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학칙을 점검하도록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교육부의 이러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 또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더 실효성 있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다.


"학생인권조례 반대" 입장과의 자가당착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교육부의 모순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무효소송까지 강행하는 등 온갖 시비를 걸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 내용 등을 들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대 이유 중 하나로 거론했다. 그러나 비혼모 학생 등 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차별금지 조치는 꼭 필요하며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은 바꿔야만 한다는 것을 교육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음을 이번 조치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의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임신 조장'이라는 황당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앞장서서 차별금지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교육부가 그동안 소위 '진보교육감'을 깎아 내리려는 정략적인 이유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편견과 억지에 편승하고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장의 학칙 제개정권을 제한하므로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번 조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시정하도록 할 수 있어야 옳다. 학칙 제개정권이란 인권과 교육의 기준 안에서, 상급기관의 감독에 따라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따라서 행사되어야 할 권한이다. 인권 보장의 원칙이 학교의 자율성에 우선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교육청이 학교들을 감독․지도할 근거를 제공하는 법일 따름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을 자유가 있다는 말과 다름없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리한 소송을 취하하고, 자가당착적인 억지 부리기를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언론에 보도되자 <설명자료>를 내며 "권고하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교육부가 처음에 보낸 자료 어디를 살펴보아도 권고한다는 내용은 없다. "학생 미혼모 등 학습권 보장 관련 점검을 실시"하라고 하며 "징벌적 학교규칙 제·개정 실태 점검"을 학교별로 교육청 단위로 실시하라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부가 이처럼 꼭 필요한 인권 정책에 관해서 언론보도 뒤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교육부의 소극적인 <설명자료>를 보면서,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무리하게 공격하며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 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의 권한과 인권보장의 의무를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면 이는 심각한 주객전도일 것이다. '임신·출산한 학생의 교육권 보장', '연애를 이유로 학생을 징계하는 학칙의 개정' 등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인권 보장 조치이다. 교육부가 눈치를 보며 권고만 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차별 없는 교육 등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은 교육부부터 학교까지, 교육기관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리한 제동 걸기를 철회하고, 학생인권 보장 정책의 필요성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 그 뒤에 한시라도 빨리 교육청, 학교 구성원, 시민사회 등과 함께 힘을 모아 학생인권 보장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2013년 10월 2일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강 원교육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경기학생인권실현을위한네트워크/ 경북교육연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광주교사실천연대 ‘활’/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비정규직센터/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인권회의/ 광주청소년인권교육연구회/ 광주청소년회복센터/ 광주YMCA/ 교육공공성실현을위한울산교육연대/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앰네스티대학생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노동자연대 다함께/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무지개행동 이반스쿨팀/ 문화연대/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시민모임 즐거운교육 상상/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한국아동청소년인권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연대회의 청소년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통합진보당서울시당/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학생인권을위한인천시민연대/ 학생인권조례제정경남본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흥사단교육운동본부/ 희망의우리학교/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04.28 13:34
아수나로 BOOK 중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글로 작성한 것입니다 -






‘야한 것’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참고로 이 글은 좀 야할 수 있다. 이 글 하나 때문에 이 책 전체가 19세 미만 열람금지 딱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그 이전에 이 책은 이미 19세 이상 열람 주의다. ㅋㅋ. 이 글 자체가 우리는 야해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다.

  청소년들의 성(性)은,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로 취급되어 왔다. 법에서는 청소년성보호특별법 등을 통해 청소년에게 성폭력을 가하거나 청소년으로부터 성을 구매하는 경우 특별히 강도 높게 처벌하고 있는 것 외에는 청소년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매스컴에서도 청소년 성매매와 청소년에 대한/의한 성폭력 이야기만 줄기차게 나올 뿐이고, 가끔씩은 청소년의 첫 성경험 연령이 몇 살인지 설문조사한 걸 갖고 몇 살이 낮아졌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정도다. 청소년들의 성은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깨뜨리기 쉬운 얇은 접시 같은 것, 아니면 억압해야 하고 금지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대안학교를 포함해서 여러 학교에서 종종 학생들의 연애를 금지하거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장이나 교사의 편견과 우려 때문이건, 입시 때문이건, 지역주민들이나 학부모의 항의 때문이건, 건학 이념 때문이건,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인권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조차도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지나친 애정행각”을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하며 키스나 포옹도 충분히 지나치다고 이야기한다. 교과서나 학교에서의 성교육도 결국엔 “건전한 이성교제”, “책임감” 같은 것들, 심한 경우엔 “순결”, “자제력” 같은 것들만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직접 성행위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 성적인 내용을 접하는 것에 대해서도 규제가 따라다닌다. 영상물 등급제라거나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유해매체”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도 바로 ‘음란성’이라는 안 좋아 보이는 이름으로 포장된 ‘성적인 것’이다.
  애초에 “어른”이라는 말의 어원이 성행위 여부라는 해석이 맞는 거라면, 성(性)이라는 게 ‘어른’들의 전유물인 건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옛날과 지금의 ‘어른’ 기준은 좀 다를지 몰라도)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가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이기에 더욱더, 이 사회가 청소년들의 성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게 강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회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육체적 사랑 / 정신적(순수한) 사랑이라는 이상한 도식에 갇히지도 않고 성 그 자체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도 야하고 싶으니까,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야한 것’과 ‘미성숙’의 관계는?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너희는 아직 미성숙하다.”라는 것이다. 미성숙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관계를 잘 맺지 못하거나 잘못된 성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소리.
  하지만 야한 짓을 하거나 하는 데 있어서 미성숙/성숙이 정확히 어떤 문제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실수”라거나 “잘못”이라는 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가? 성숙한 성행위와 미성숙한 성행위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체적 미성숙을 뜻한다면, 신체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은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못할 것이기에 따로 규제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성적인 행위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도움이나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많은 부모들이 세네 살 정도 되는 자녀가 자위를 하거나, 클리토리스(음핵)나 성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성기를 바닥이나 책상 같은 데 비비는 것을 곤혹스러워 한다는 고민 상담이 육아책에 실리기도 하는 걸로 봐서는, 단지 나이가 적다고 해서 성적인 행위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거나 발달이 안 되었다거나 하는 것 또한 일방적인 편견인 것 같다. 생리를 하거나 음모가 자라는 것 등 2차 성징이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10대 중반 정도부터 성욕이나 성적인 인식들이 커지는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2차 성징 이전의 존재는 무성(無性)적이라거나 성(性)적이지 않다는 것은 환상이다.
  신체적 미성숙의 다른 측면에서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18세 이전에 성기와 성기가 결합하는 형태의 성 행위(흔히 ‘섹스’라 불리는)를 하게 되면 나중에 자궁에 병이 생길 가능성이 약 3배 높아진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있으며, 만 15세 미만일 때 출산을 하게 되면 아이가 미숙아일 가능성이 만 15세 이상일 때보다 얼마 높다든가 하는 연구결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교육해서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임신을 피하자, 성기와 성기가 결합하는 성 행위는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으니 삼가자고 할 일이지 그것을 ‘금지’하고 ‘통제’할 일이 아니다. 의사가 몸이 약해서 아이를 낳으면 조산할 가능성이 높은 성인에게 임신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줄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성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정하는 일은 없다. 실제로 이 사회가 청소년들의 성을 금지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자궁암 위험이 몇 배 높다.”라고 설명해주던가? 또한, 과연 그런 것이 ‘금지’할 사유가 되는가?
  만일 성에서의 미성숙함이 신체적 미성숙이 아니라 폭력성이나 ‘책임감 부재’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그건 나이가 적고 많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비청소년, 그러니까 만20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폭력성이나 무책임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성관계를 맺는 경우들 등을 다룬 상담 사례는 많다. 드라마나 소설에도, 이른바 ‘어른’들의 그런 관계들이 얼마나 많이 묘사되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문제는, 오히려 성적인 관계맺음에 대해 공론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폭력적인 성적 실천들에 대한 정보들(강간을 묘사한 포르노 등)이 범람하는 사회 환경 때문일 것이다. 성에 대해 인간의 행복, 자유, 평등, 인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올바르며 차별적이지 않은 정보를 개방하여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성숙’이란 게 애무나 스킨쉽 등에서의 미숙함이라면 그건 경험을 쌓아야 할 문제일 것이고 -_- 그리고 사람마다 성정체성, 성적 지향, 취향, 성감대, 호불호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귀를 핥는 게 더 좋은데 저 사람은 발가락이 더 기분 좋다거나, 등을 간질이는 게 좋다거나, 목을 깨무는 게 좋다거나, 성기를 꼬집는 게 좋다거나, 야한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거나, 야한 영상을 보는 게 좋다거나 등등 여러 취향의 충족은 상호 관계 속에서 풀어갈 문제이다.

  야한 영상물이나 만화책 등에 붙는 “19금”, “15금”, “12금” 등의 딱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그 주된 논리는 청소년들이 야한 것을 무분별하게 접하면 안 된다는 것이며,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작품의 맥락과 전체 내용보다는 “어디까지 노출/묘사가 되는가?”에 따라서 여성의 유방까지 나오면 15금, 동성간의 애무나 성기 접촉 등이 직접 나오면 19금(성소수자에 대한 글에서 다루어지겠지만, 동성애는 2004년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청소년유해물’이었다. -_-),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작품의 전체 맥락에 무관하게 성적인 장면 자체로 등급을 매기는 것은 우선 야한 것을 접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해롭다는 이상한 인식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성은 더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입으론 맨날 말하지만, 실제로 규제하고 하는 것을 보면 별 다를 건 없다. 아니면 야한 게 ‘미성숙’할 때는 해롭고 ‘성숙’할 때는 안 해로운 거였나? 대체 무슨 근거로? 결국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야한 걸 하면 안 된다는 걸 미리 결론으로 정해놓고 영상이나 매체들을 규제하는 셈이다.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므로 성적인 매체물을 접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청소년들의 성폭력을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은 그런 성폭력들이 야동을 많이 본 영향이며 이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그런 걸 모방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명 현실의 야동이나 포르노 등은 남성중심적이고 성폭력적인 면을 많이 담고 있고, 그렇기에 “포르노는 교재, 성매매는 연습, 강간은 실습”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며 비청소년(이른바 ‘성인’)들 중 성폭력 가해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현재의 남성중심, 가부장 사회의 성불평등과 야동들의 성폭력적 내용들을 논하지 않고 단지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만약에 굳이 규제를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성 자체가 아니라 성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의 매체물일 것이다. 또 원칙적으로는 그것에 대해서도 그 자체를 규제하는 방향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중간과정에서 차별적 내용에 대한 규제는 있을 수 있다.) 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차별적이지 않은 성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그런 류의 매체물 자체가 잘 생산되지 못할 것이며 나오더라도 외면받거나 강력한 비판에 몰매를 맞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성숙”을 이유로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폭력적인 윤리관에 근거를 둔 편견이거나 고정관념일 뿐이다.


청소년 성의 사회경제학(?)


  이제 청소년의 성에 대한 논의가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고 규제하려 하는 보수윤리도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은 “그러다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책임질 수 있느냐.”와 같은 말이야말로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는 가장 실제적인 이유를 잘 대변해준다.(야한 짓을 모두 임신과 결부짓는 것은 이성애중심주의적인 면, 그리고 성기 중심의 보수적 섹스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충동적이어서 안 된다는 말 또한 키스 포옹 애무 등등을 해도 된다고 하다보면 자연스레 ‘충동적으로’ 임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성행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야한 짓을 할 권리는 청소년들의 사생활의 권리나 독립성과 직결된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라고 하지만, 식욕이나 수면욕과 달리 안 하면 곧장 죽게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성은 사람들의 행복/불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식욕이나 수면욕에 비하면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않다. 한편 사회적, 집단적, 종(種)적으로 볼 때 성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사회가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데 핵심적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관리’하는 데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부모나 보호자 등에 종속되어 있고 그 사생활이나 욕망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성이 우선적인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회적으로 아동(어린이·청소년, ‘미성년자’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과 어른을 구분하고 관리하기 위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일 것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야한 짓을 할 권리는 ① 주체적인 사생활과 욕망 ② ‘임신·출산’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독립을 함축하고 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청소년들의 사생활(그러니까 ‘은밀한’(?) 관계맺음)과 행복추구권, 욕망, 정체성 등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부모나 보호자나 국가 등이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청소년들의 사생활과 욕망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의 야한 짓을 규제하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나 보수적 성 윤리를 내면화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회는 여러 경로를 통해 청소년들의 성을 ‘관리’한다.
  또한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놓는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분가’, (경제적 공간적 사회적) ‘독립’으로 이어지기 쉬운 ‘임신·출산’을 하는 것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는 현재 사회의 시스템 근간을 건드리는 동시에 경제 문제, 교육 문제(출산한 사람의), 양육 문제(태어난 사람의) 등등을 야기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없고 사적 영역에서 가족과 혈연에 의존한 복지(??)만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많은 청소년 비혼모들이 겪어야 하는 임신중절 압력, 친지들의 비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사회경제적 열악함을 생각해보라.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행복과 인권을 저해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조차도,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조건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그런 조건이 문제라면,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 약자인 조건에서 벗어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점차적으로는 덜 종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건, 청소년들이 야한 짓을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물론 그 과정은 길고 어려울 것이다. 청소년들의 성을 통제하려는 보수적 윤리는 여전히 강고하고,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생활, 독립성에 대한 보장 요구는 가정을 파괴하는 주장이라는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88만원세대』 첫 챕터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에서 제시하고 있는 북서유럽 등의 청소년 동거/독립에 대한 지원 모델(경제적 지원, 주거 지원, 학비지원 기타 등등)도 유의미하긴 하지만 100% 완전한 제도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그런 것조차도 한국에서는 요원해 보인다.
  그래도 우리들은 그런 목표를 세우고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 중간과제로서 보수적 성윤리에 맞서는 대안적인 성교육, 이론을 보급하는 일, 청소년들의 성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학교나 법제도 등을 바꾸는 일,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일, 청소년들에게 폭력이 되는 사회적 성 환경들을 없애는 일,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점차 높여나가는 일, 청소년들이 직접 야한 짓을 실천하는 운동(어머) 등이 있을 것이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 외에 지름길은 없을 것 같다. 청소년들의 성이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들을 하나하나 바꿔나감으로써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를 이뤄내는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면서 현상유지를 꾀하는 현재의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야한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부록(?) : 청소년 성매매, 성교육 등


  원래 본문 중에 쓰려고 했는데 본문에서 끼워 넣을 곳을 잘 못 찾겠어서, 이렇게 따로 떼어서 청소년의 성매매와 성교육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내 글 구성 능력의 부족이다. OTL

(1) 성매매

  우선 이 사회라거나 매스컴이 많이 집착하는 청소년 성매매 이야기부터 하겠다. 청소년 성매매는 현재 특별히 강하게 처벌받는 ‘성범죄’에 속한다. 청소년 성매매는, 성매매 일반이 그렇듯이 여성 청소년이 판매자인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남성 비청소년이나 남성 청소년이 보통 그 구매자가 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청소년 성매매는 성매매가 안고 있는 윤리적 정치적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있다. ‘자발’과 ‘강제’라는 사고 틀을 넘는 사회 구조 ― 여성에 대한 착취,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여성의 성을 남성이 구매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성 불평등, 여성인권 침해, 인간을 상품화하여 사고파는 비인간성 등 이 사회에서 성매매는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성차별, 자본주의 등 체제의 윤리적 정치적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이름붙임도 입장과 맥락에 따라 “성매매 피해 여성”, “성노동자”, “성매매 생존 여성” 등 다양하다.

  성매매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하기 시작하면 몇 페이지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므로, 나는 여기에서 청소년 성매매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청소년 성매매는 특히 가출한 여성 청소년들 또는 가출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 청소년들이 성판매 여성인 경우가 많다. 청소년 성매매는 성산업 구조 속에서의 성매매(‘포주’가 있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건물, 업소가 있는 산업화된 성매매를 말함.)보다 온라인을 통한 개인형 성매매가 많으며, 때로는 돈이 아니라 묵을 곳 등을 얻기 위한 대가로 성매매를 하거나 ‘데이트’ 형식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가정에 사회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노동의 기회도 상당부분 봉쇄당한 청소년들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성매매 청소년들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길을 묻는 아이들 - 원조 교제와 청소녀』(김고연주, 책세상, 2004)라는 책을 참고하라.
  일단 중단기적으로 청소년 성매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우선 청소년들의 주거권, 경제권을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가출한 청소년들의 주거,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가출한 여성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때로는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성을 위해서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즉 청소년들이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현실 자체가 청소년 성매매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주거 및 경제적 지원, 또는 가정과 친권에 대한 글에서 다루고 있는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는 청소년 성매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물론, 현재와 같은 청소년 성매매를 없애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성매매 일반에 적용되는 해법 ― 즉 성평등 사회의 달성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극복 같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 정부에서는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 공개 등을 얼마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정부가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여러 책임들을 방기하고 범죄 전력자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해버리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어떻게 말하면 “신상을 공개할 테니 알아서 따돌리고 알아서 피하고 알아서 조심해라.”라는 말 아닌가? 정말로 성폭력이나 성매매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낮은 성범죄 신고/기소/처벌 비율을 높인다거나 재범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들, 그리고 성차별 해소와 성교육을 통한 성폭력 예방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을 쓰던 중에 최근에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나 살인을 매우 엄중하게 처벌하는 게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아동 성폭력의 80% 이상이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는, 다른 여타의 성폭력이 그렇듯이, 단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상당히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아동에 대한 성폭력만을 특별취급하지 말고 성폭력 그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아동에 대한 성폭력만 특별 취급하겠다는 것은 ‘아동기의 신화’를 무조건 수용하고 단지 ‘여론’만을 쫓아가려는 고민 없는 자세인 것 같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처벌 수위만 높이는 것에 과연 얼마만큼의 실효성이 있을지도 다소 의문을 느낀다.


(2) 성교육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 자체로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성에 대해 정보를 추구하고 접수하고,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권리 또한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성교육의 내용은 단지 난자가 어떻고 정자가 어떻고 어떻게 임신이 되고 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당장 생각나는 것부터 열거하자면, 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관계맺음에 대한 교육, 몸 자체에 대한 교육, 성적인 행위의 기술에 대한 좀 더 많이 행복해지기 위한 교육, 성병 예방 교육, 피임 교육, 기타 등등이 성교육의 내용일 것이다.
  성교육의 기본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존감, 자기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방식, 대화, 관계 맺기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도 잘 못하는 일이지만, 성은 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자존감이라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관계 맺음 등을 가르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성교육에서 성병 예방이나 피임법 등등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성병이나 성 행위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필요한 정보는 전달해야 한다. 특히 구체적으로 피임법이나 피임기구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그 장단점,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냥 남성 성기에 씌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콘돔조차도 사용할 때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공기를 빼고 끼운다거나 하는 약간의 사용법이라거나 기술 같은 게 필요하고, 유통기한 같은 것도 꼭 확인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청소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임신중절이 많은 거다. -_- 나는 개인적으로는 임신중절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지만(태아의 생명권과 더불어, 여성의 몸에 주는 악영향이 크다.), 도덕적 문제니 성적 문란이니 범죄니 떠들기 전에 이 사회가 과연 양육하기 좋은 조건인지와 피임 교육 등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성이 평등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해야 한다. 성적 자유를 이유로 폭력이나 차별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평등 교육은 성차별을 예방하고 남성중심주의나 차별적 성별분업 등을 예방하는 교육인 동시에, 성은 상호적이고 평등한 것이어야 하고 구체적 성 행위와 관계 맺음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 또,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차별하는 이성애중심주의를 벗어난 차별 없는 교육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따라서 적절한 상담과 교육이 지원되어야 하며, 성평등 교육은 그 자체로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교육이어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육은, 관계 자체에 대한 교육과 성적인 ‘기술’에 대한 교육이다. 관계 맺음에 서툴러서 폭력이 발생하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므로, 우리는 관계 맺음 그 자체를 포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성관계를 낯설어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한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성적인 것과 관련된 기술들을 배우는 곳은, 폭력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야동들이나 야한 만화들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는 성적인 기술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툴거나 경험이 부족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좀 더 행복하기 위한 여러 노하우(?)들을 아는 것은 성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 은근 중요하다.

  사실은 이미 여러 사회단체들에서 대안적 성교육, 좀 더 와 닿는 성교육, 여성주의적 성교육 등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다만 그런 내용들이 널리 보급되거나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08년에 국가청소년위원회에서 “청소년성문화센터”라는 걸 만들어서 직접적 체험 위주의 성교육을 하겠다고 하던데, 그런 시도들도 성교육의 보급에 어느 정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예를 들면, 네덜란드는 “성에 대한 책임을 청소년 스스로가 느끼게 하는 권한”을 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성교육 정책으로 RAP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RAP이란 청소년은 섹스할 권리(Right)를 가지며, 이를 인정(Accept)해야 하고, 청소년들이 참여(Participate)하고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안적 성교육의 모든 것이라거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는 참고할 거리가 되어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가 보장될 수 없는 조건과 이성애중심주의가 득세하는 현실에선, 아무리 좋은 성교육이라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건전한 이성교제’와 그 건전한 이성교제를 위한 방법 정도에만 머물 것이다. 좀 더 대안적인 동시에 저항적인 성교육은 불가능할까?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교육하고 그 권리를 얻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그런 성교육 말이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